Login

오늘, 이 순간을

송무석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8-22 17:17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 수필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평안히 쉬는 것이 사람을 제외한 동물의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이런 생리적 욕구에만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동물은 이런 삶을 살기에 수만 수백만 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 없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한다. 그런 꿈과 계획은 우리 인류가 우리 삶의 방식과 환경과 세계를 바꾸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는 똑같은 일상, 발전 없는 세상을 거부하면서 변화와 개선을 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명화된 세계를 이 지구상에 건설한 유일한 생명체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배우고,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준비한다. 다른 동물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국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뒤처지고 만다.

내가 살아온 20세기 후반의 한국은 사회 전체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구 선진사회를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친 시기였다. 그런 사회와 시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자세를 체득했다. 우리는 오늘 열심히 미래를 위해 살면 보다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20년가량을 일 년에 설과 추석 단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12시간 넘게 일에 매달렸다. 내 가족과 나의 행복하고 안정된 미래를 위해 오늘을 기꺼이 바치면서. 그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았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서 존재하고, 계속해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살았던 셈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나중으로 미루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내 아이들은 여유 있는 삶을 살기를 희망하며 캐나다로 이주해 왔다. 그 후 아이들을 차로 등하교시키는 등 뒷바라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매주 잔디 깎고 물 주는 등 정원 관리가 일과 중의 하나가 된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또, 이민자 봉사 단체 두 곳에도 들려 생애 처음으로 자원봉사도 하면서 캐나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며 살았다. 그러다 가족과 로키를 차로 다녀오게 되었다. 몇 시간 운전하다 보니 하반신이 저렸다. 그 후로도 바닥에 앉거나 쭈그리고 일을 하면 몇 분도 안 지나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 쩔쩔매게 되었다. 의사를 만나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자에 앉거나 누워도 통증 때문에 더 괴로워졌다. 그래서 3년이 지나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번에는 방사선 전문의가 골다공증이 있다면서 다른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밖에도 다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더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술, 담배는 물론 카페인 음료조차 마시지 않는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온 내가 이렇게 질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불만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저 내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은 급속히 늘어나 팔구십을 넘겨 사는 분들이 무척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만성 질환들을 가진 내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더는 미래를 위한 오늘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을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가족과도 더욱 뜻깊고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미루지 않고 하면서 기쁨과 충일감을 느껴야 한다. 오늘은 단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행복한 내일을 위한 볼모가 아니다. 물론 그냥 허비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살아 있기에 과거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 살아 존재할 수 있다. 그러기에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있지 못하면 나는 미래를 살 수 없다. 오직 내가 이 순간을 살고 있기에 내게 미래는 오고 미래를 꿈꾸고 누릴 수 있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사는 시간이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이 순간,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야 나의 삶이 가치가, 의미가 있다.

나는 “한 번뿐인 인생,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 1)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은 아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그래서, 미래를 염려하고 대비하느라 현재 이 순간을 보내지 말자는 그들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단지 그들처럼 나를 위해 현재를 즐기는 대신 내 가족과 내 꿈을 위해 살 수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오늘, 이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될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한 번뿐인 오늘,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낙타 세 마리 2024.03.08 (금)
박정은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복권이 윷놀이 상품으로 걸렸다. 구정을 맞아 주유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과 모여 윷놀이를 하는데, 남편이 복권을 상품으로 건 거였다. 주유소에서 복권을 팔기만 했지, 난 한 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다. 딱히 복권에 욕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왕에 하는 윷놀이 열심히 해보지 싶었다. 열성껏 윷을 던진 결과 결국 몇 장의 복권이 손에 들어왔고, 난 그걸...
박정은
그리움 2024.03.08 (금)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길 위에 멈추어 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이별의 모서리는 언제나 날카로워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베이지만 그녀라는 모퉁이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진한 눈썹, 둥근 이마, 상큼하면서도 허스키한 탄산수 음색이 생각나 아직도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린다 하였다....
최민자
밤의 날개 2024.03.08 (금)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수석고문고요가 조용히 날개를 펼칩니다팔랑이는 이파리처럼, 이파리의 날개처럼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산비둘기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내려와 잠드는 내 집 처마 끝에달빛을 비춰줍니다고요의 숨소리가 들립니다달빛도 긴 그림자의 그늘을 접고나뭇가지에 어깨를 걸치고 앉아고요가 잠든 집을 지켜줍니다 고요가 조용히 일어나 잠들려는 나를살짝 깨웁니다눈뜬 별들의 바다가 깊습니다나도 살짝...
이영춘
송년엽서 2024.03.04 (월)
1년의 폭은 365미터비껴 간 10년, 또 10년 우리 까마득히 멀어져보이지도 들리지도 눈을 감아요깊숙이 자목련 한 그루씩 심어요 먼 날자색 빛 노을 물드는 저녁 바다 이편에서바다 저편에서 목련 꽃비만후두둑 후두둑
백철현
2024년으로 끝자리 숫자 하나가 바뀌며 엄청나게 쏟아지던 카톡의 홍수가 사라질 무렵에 나는 재미있는 톡 하나를 받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새해 덕담으로 주고받는 톡이 아닌 새롭게 단장한 문인협회 산문 분과의 새 방장님이 쏘아 올린 첫 신호탄으로 그것은 푸른 용의 꿈틀거림처럼 잔잔하던 방안을 뒤흔들어 놓았다. ‘어린 왕자’의 여우 같은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신세대 방장님의 기발한 인사말과 함께 산문 방 한정 초미니 백일장을...
줄리아 헤븐 김
김밥 한 줄 2024.03.04 (월)
김밥 한 줄은 말줄임표(……)간단명료하다. 설명이나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말의 울림이다. 침묵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어 가슴 속에서만 숨 띄는 함축언어이다.김밥 한 줄은 가장 간소한 한 끼이다. 30초 만에 차려진다. 김 한 장을 펴고 밥을 담은 다음 준비해둔 당근, 부친계란, 볶은 햄, 우엉, 시금치. 단무지를 넣고 말아 올리면 된다. 은박지를 깐 접시 위에 놓인 검은 김밥 한 줄….김밥 토막들은 대열을 벗어나지 않고...
정목일
새해 소원 2024.03.04 (월)
인생은 세월 따라 흐른다천천히 지나도 지나고 보니그 세월은 순간이었다인생은 머물지 않지만지나간 시간과 함께한소중했던 순간힘 겨워했던 시간모두 추억의 공간에 곱게 새겨져내 인생의 그림자가 되었다 많이 아쉽기도 했던 기억들함께 했던 즐거움의 흔적들같이 했던 시간 속의 기쁨들때론 야속하기도 한 아픔의 그 세월여러분을 만나서 여러분과 함께해서참 멋지고 행복한 좋은 시간이었다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2024년 또 다른 나의...
나영표
습작의 고뇌 2024.02.26 (월)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다진통 끝에 나의 자궁에서 나온 글이 걸음마를 배운다안아달라고 칭얼댄다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그 글에 옷을 입혀 세상 밖으로 보내본다지나가는 이들이 내 글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잘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뒷얘기로 쑥덕거린다한 대 때리고 도망간다내 글이 운다내 마음이 차였다자랑스럽게 내보낸 나의 글은 그 흔한 목걸이 하나 없이누군가 길거리에 내던져 버린 옷을 걸쳐 입고 있었다그 글은 시체처럼 길거리...
김영선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