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바로 지금!

섬별 줄리아헤븐 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7-15 11:31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어서 내리지 못하니?”
재차, 채근을 받고 나서야 주춤거리던 아들녀석은 사뭇 긴장된 모습으로 긴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내 쉬곤, 길 건너 반대 방향의 언덕길로 황급히 뛰어 올라 갔다. 나는 차 안에 앉아 물끄러미 자동차 양 옆의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들녀석의 뒷모습을 지켜 보았다.
 
나와 아들은 장을 보고 집 동네 어귀에 접어 들어 내리막길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내가 진행하는 차선의 반대 편 보도에는 휠체어에 앉은 젊은이가 두 손으로 바삐 의자의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그 곳은 도로가 제법 경사 진 곳이라 평소에 운동 삼아 산책을 돌 때도 산행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던 곳이다. 달리던 차를 급하게 도로 가에 세우고, 아들녀석에게 휠체어를 밀어 주고 오라고 말을 했던 것인데, 웬일인지 아들녀석이 선뜻 내리지를 않는다. 아들녀석의 알 수 없는 난처한 얼굴색이 노랗게 물들어 갈수록 길 건너 언덕길에 들어 선 휠체어는 정차하고 있는 내 차의 곁을 지나쳐 가고 있다.
“안 내리고 뭐해?”
“엄마, 쑥스러워서 내리고 싶지 않아.”
숫기가 없는 아들녀석인지라 아들 딴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 시야에서 사라진 휠체어는 힘에 겨운 자그마한 모습으로 자동차 양 옆의 거울에 다시 나타났다.
“얼마나 힘들겠니……  너도 평소에 자전거 타고 올라 가기도 힘들다고 엄마에게 말했잖아.”
“엄마,…. 그냥 가면 안돼? ……” 아들아이의 볼멘 듯이 내뱉는 말에,
“그럼, 엄마가 다녀 올게.” 말을 마치자 마자, 바로 즉시, 안전벨트를 풀고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데, 아들녀석이 내 팔을 붙든다.
“어서 내리지 못하니?”
날카롭게 올라간 나의 말 꼬리가 아들녀석의 등 짝을 후려쳤는지 후다닥 단거리 선수마냥 아들녀석은 달려 나갔다.
곧이어, 두툼한 엉덩이로 쏟아지는 힘을 받치고, 휠체어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들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넓게 벌어진 아들녀석의 두 다리가 육안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분명, 후들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작은 개미처럼 거울 안에서 겨우 움직임만 보일 무렵,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아들녀석.  
‘왜? 오는 거지? 언덕 위, 정상까지 밀어주고 와야 할 것 아냐…… ?’ 궁금하기도 했지만, 달음박질치 듯 달려 내려오는 아들녀석에게 은근히 부아부터 치밀었다. 잔뜩 찌푸린 양미간의 선명한 주름으로 내 마음을 표출하려는데,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을 가득 붙여 놓은 아들녀석의 해맑은 얼굴이 차 안으로 쑤욱 들어온다.
송글송글 올라앉은 아들녀석의 땀방울이 아침햇살을 먹은 푸른 이파리 위의 이슬처럼 상큼하게 느껴졌다.

“엄마, 처음에 내가 밀어 준다니까 괜찮다고 거절했어. 그리고는 혼자 낑낑거리는 거야. 내가 살짝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더니, 됐다고 화를 내면서 또 거절을 해서 내가 그랬어. 힘들 때 도움 받는 거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넌 지금 힘들 때고, 나도 너의 무게가 무거워서 힘들다 구 하면서 휠체어를 밀었어. 그랬더니, 좋아, 그럼, 밀어줘 하면서 자기 이름도 알려주고, 내 이름도 묻고, 나도 말해줬어. 엄마, 고마워.” 대뜸, 말 끄트머리에 생뚱맞게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아들녀석의 밝은 표정은 묻고 싶은 말도 궁금증도 모두 사그라지게 만든다.
“언덕 끝으로 올라가기 바로 전에, 오른쪽의 좁은 골목 안에 그 사람 집이 있대. 거기 골목 입구까지만 밀어주면 혼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 마음 편하게 원하는 데까지만 밀어 주고 왔어. 나, 잘했지?” 내 달에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한글을 떼고 캐나다에 왔던 터라 아들아이의 한국어의 어휘 구사력은 썩 훌륭하지 않았어도 순수함이 흠뻑 묻어나는 아들녀석의 솔직함은 엄마의 칭찬을 기대하는 아들녀석의 들뜬 마음만큼 나도 그 순간 기쁘고 행복했다.
“엄마, 내가 밀어 준다고 하는데도 싫다고 하는 건,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남이 도와주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그런걸 거야. 그렇지?” 마치, 큰 일을 성취하고 돌아 온 개선장군의 모습 같은 아들아이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엄마가 차에서 내려서까지 도와주고 오라고 할 때에는 처음엔 싫었고, 망설였던 이유는 뭔지 창피하고, 좋은 일인 줄은 알지만 쑥스럽고, 내키지 않고…… 헌데, 돕고 나니까 너무 기분이 좋고, 뭐라고 이 기분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고 …… 연신 기쁨에 상기된 아들녀석의 무용담이 되어버리는 듯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다 조심스럽게 엄마의 생각을 아들에게 전했다.
“제임스, 어려운 일을 겪고 있던 사람을 도우니 기분이 좋지? 뿌듯하지?”
“응”
“엄마가, 그 사람을 발견하고 내려서 도와주고 오라고 말을 했을 때, 네가 만일, 내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정말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을 테지. 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서 보고서도 남을 돕지 않은 미안한 마음으로 인해, 네 자신은 부끄러웠을 거야. 제임스, 그 거 아니? 수 많은 여러 기억 중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보다 더 오랫동안 남는 기억이 뭔지? 그것은 ‘미안했던’기억이야. 특히, 내가 남을 도울 수 있었는데 나의 성격이나 창피함 때문에 망설이다 못해줘서 미안한 거. 상황에 따라 그게 트라 우마로 남게 되기도 하거든. 그러다 보면, 정말 남을 도와야 할 때마다 주저하게 된단다.”
아무 말없이 진중하게 귀 기울이는 아들녀석에게 부드럽고 좀 더 단호한 목소리로 한번 더 이야기를 했다.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 하면서.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거나, 도움을 줘야 할 때에는 ‘바로 그 순간’ 지체 없이 해야 해. ‘그 순간’을 놓치지 마. 네 도움의 손길이 정말 필요했던 사람에게 네가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는 사이, 더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거든. 반대로 막상 네가 뒤늦게 도움을 주려 할 때에 이미 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좌우간, 너도 엄마도 할 수 있음에도 우리 스스로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울 아들, 참 잘했어요. 에궁 이뽀~”
아들녀석에게 혀 짧은 소리로 애교의 칭찬을 해 대었더니 아들녀석의 선한 눈빛에 살짝 물기가 어린다.
“엄마, 고마워. 나를 도와 주라고 밀어내 줘서. 다음엔 내가 먼저 할게.”
나를 꼬옥 안아주는 아들녀석 덕분에 아니,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닐 언덕길에서 만난 휠체어의 젊은이 덕분에 나도 아들도 새로운 기쁨 하나를 또 얻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나서는 것에 쑥스러워 망설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스스로 민망해서 모르는 척 외면하는 사람도 종종 본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방관하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정작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 했을 때도 다를 바가 없다.
알고 보면, 남을 돕는 것도 습관이다. 한번 도움의 손길을 내 밀어 본 사람은 또 다시 손길을 내밀기가 쉽고, 그 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습관으로 몸에 배이게 된다.
행복이 어디 있는 지……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 지…… 미미하고, 흥미 없는 사소한 작은 일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담겨 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오늘’의 행복을 깨닫고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삶의 주인이 아닐까 문득 생각 해 본다.
‘한 손은 나를 위해 사용하고, 또 다른 한 손은 남을 돕기 위해 사용하라’고, 아들에게 가르친 영화배우 고 오드리 헵번의 말처럼, 내가 먼저 아들에게 좋은 엄마의 본이 되도록 나 또한 노력해야겠다.
누군 가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바로 지금!’ 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다짐을 또 시키시는 가 보다. 할렐루야!
“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언 3장 27절-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