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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07-01 08:59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사람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그중의 하나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이다. 나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왜 생기는지 그 원인이 궁금했다. 왼손과 오른손은 좌우 달린 위치가 다를 뿐 생김새도 구조도 똑같은데 왜 사람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일까? 나는 학창 시절 양손을 능숙하게 쓰는 사람이 부러워 종종 왼손으로 젓가락질도 해 보고 글씨도 써 보았다. 생각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물론 자꾸 할수록 차차 나아져서 이제 나는 왼손으로도 웬만큼 젓가락질할 수 있다. 칫솔질은 양손으로 이십 년 넘게 하다 보니 왼손으로도 오른손만큼 잘할 수 있다.

“성인 전체의 7~10퍼센트가량이 왼손잡이라고 한다. 물론 나머지 대부분 사람은 오른손잡이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른손잡이의 1/10밖에 안 되는 왼손잡이에게 불편하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있다. 필기하는 방향, 교통수단의 이용, 예절, 도구 등. 이렇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생기는 요인은 뇌의 비대칭성으로 우뇌가 우성일 경이며 이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 고 한다. 그리고 어쨌든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세상에서 소수자(minority)일 수밖에 없었다. 소수자는 인류 역사에서 늘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었다. 최근에는 일부 선진 사회에서 LGBT(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같은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선진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에서 소수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유전은 우리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준다.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듯 우리가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가 되는 것도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오른손만 주로 사용한 것도 오른손이 더 솜씨 좋고 재주가 있게 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고 본다. 반대로 우리는 왼손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왼손은 갈수록 오른손보다 힘이 약하고, 솜씨 없고, 서투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왼손 사용을 금기해 왔기에 서양인에 비교하면 현저히 왼손잡이가 적다. 이것은 오른손잡이가 많아진 문화적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오른손으로 사용해야 편리한 도구와 제도 역시 왼손잡이의 증가를 저해하는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오른손잡이라도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양손잡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오른손을 다쳐 왼손을 사용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결국 왼손만으로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팔이 없는 사람이 발을 손 대신 쓰기도 한다. 오토타케 히로타다나 닉 부이치치 같은 분들은 손발이 없어도 대부분의 생활을 혼자 할 수 있지 않은가?

평발의 박지성 선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의 하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단한 노력과 의지였다. 안 된다고 못 한다고 포기하면 이룰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 특정 직업이나 분야에 완벽하게 맞는 신체나 두뇌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타고난 재능만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없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천 번이 넘는 실패를 맛보았다고 했다. 그런 끈기와 노력이 에디슨을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비록 제대로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그였지만.

결국, 왼손을 능숙하게 쓰는지 아닌지는 상당 부분 우리의 끈기 있는 시도와 노력에 달려 있기도 한 셈이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가 왼손 같은 마음 자세로 사는가 또는 오른손 같은 자세로 사는가에 따라 당연히 삶의 성취도 발휘하는 능력도 달라진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왔나? 나는 지금까지 마치 왼손 같은 삶의 자세로 살아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오른손 같은 삶의 자세로 불굴의 의지로 끈기있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지 못하고 그저 한 발 뒤로 물러나 남의 성공만을 쳐다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한 셈이다. 나는 해외 유학 같은 힘들고 벅찬 일을 결정하는 순간이 오면 꽁무니를 빼고 편한 길, 안전한 길만을 택했다. 그러므로, 나는 결국 못 이룬 꿈을 아쉬워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나의 유능하고 도전적인 오른손보다 마치 재주 없고 수동적인 왼손처럼 살아왔다. 나의 시 '오른손에게'는 이런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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