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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05-27 10:01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단편 소설
화가가 걷는다. 녹슨 철길 뜯고 아스팔트 부어 만든 자전거 길을 성큼성큼 걷는다. 그리고 훠얼훨 걸으며 난다. 길 옆 가시 달린 연갈색 덤불들이 치맛바람에 밀리듯이. 파란하늘에 새하얀 목화송이구름이 솟아오르듯이. 야생베리나무 다가오면 배리따러 나선듯이. 까마귀 까악깍 대면 길 옆 어느 큰 집 앞 키 큰 나무에 둥지를 튼 텃새에 쫓기듯이.
 
그녀는 긴 세월을 두 세상에서 살아왔다. 인식할 수 없어 슬프지만 아름답게 비춰지는 젊은 날과 긍정으로 채워졌지만 슬프게 보이는 지금의 날이었다. 두 세계에서의 삶은 살아남아야 지금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과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살아 남아 있으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삶을 두 세계로 이끈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탈이 아니었다. 하나의 물줄기를 선택해야 하는 강에 스스로 내 맡긴 삶이었다. 뚜렷이 일탈을 택한 것도 아니지만 저절로 흘러가는 삶의 강물에 자신을 던졌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젊음이 타오르기 전 새로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영혼이 사랑에 빠져들기 전 몸은 이미 저절로 던져진 시간에 내 맡겨져 있었다.
 
다른 세상이 지금이 되고 나니 먼저 살아온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가 여기가 되고 흘러간 시간이 지금이 되었다. 지금 여기에, 거듭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와 있던 것은 아니다. 뒤바뀐 세상의 태양이라 해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끼리 생각은 여기나 저기나 다르고 어느 길이 옳은 길이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선택의 길도 같지도 않고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세월의 강이 흐르면 인생이란 소우주쯤은 이해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각자의 담장으로 가로막힌 공간이었다. 극단으로 대립된 세상이 완강기도 갖추지 않은 철웅성들을 지어놓았다. 중용과 조화를 위해 뛰어 내릴 틈도 없었다.
 
여기나 거기나 통하는 것이 있었다. 동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은 장벽이 무용지물이었다. 젊은이들의 생각에 반대적인 늙은이들도 그들끼리는 잘 통했다. 그녀는 젊음과 늙음 경계선에 서 있었다. 철길이 뜯기기 전 평행선으로 달리던 긴 쇠심줄을 떠올렸다. 철길을 단단하게 이어주는 목침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성큼성큼 걸었다. 아장아장 걸어도 목침과 목침사이의 간격만큼 띄어 걷기가 어려웠다. 레일바이크를 여럿이 함께 앉아 힘차게 구르며 증기기차보다는 빠르게 날 듯 달리는 젊은이의 왼편 철길을 보았다. 레일바이크가 쓰러질까 성큼성큼 구르며 걷는 것보다 느리게 달리는 늙은이의 우측 철길을 보았다.
 
철길 목책이 연결하는 두 길 가운데에 서서 왼 팔과 오른 팔을 두 철길에 묶어 서 있는 자신은 능지처참에 처해진 역적죄인이었다. 양 팔이 뜯겨 쓰러지고 그녀가 새로 찾아 나선 것이 자연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그녀의 적막함은 젊음과 늙음 사이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청소년 시절 자연과 함께 피어난 사랑 속에 빠져 들었다. 그때의 자연은 반복학습이나 내면의 절실한 요구에 의해 태어난 인공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있는지도 모르게 온 몸을 감싸고 있었던 옷과 집과 친구이자 부모 같았던 삶의 전부였다. 이전에 경험한 두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의 인식이었다.
 
만지면 묻어 날 듯 파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포플러 나무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곳이 기억에 있는 곳임을 깨달았다. 사춘기가 채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이웃 마을에 새로 부임한 구세군교회 목사님을 떠올렸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그녀는 자주 그 마을을 찾았다. 두 마을의 등교 길이 서로 달랐지만 그녀는 빙 돌아서 그 마을을 지나다녔다. 지금 서 있는 길에서도 공교롭게 어느 작은 교회의 십자가가 보인다. 시골마을 작은 구세군교회나 여기 작은 교회나 십자가는 같은데 자신은 어느새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서 머리 반백의 중장년으로 변한 게 새삼 비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는 비참함을 한 순간에 빛을 발하는 꽃잎을 그리는 감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날도 그녀는 갑작스런 비감이 사라지기 전에 가시덤불아래 큰 돌덩이에 걸터앉아 이내 한 편의 꽃 그림 파스텔화로 지워버렸다.
 
남자와는 누구든 두 눈 마주치기를 쑥스러워하던 그녀가 그날은 달랐다. 목사님이 바뀐 사실도 몰랐다. 백인인지 황인인지 희고 갸름한 얼굴에 코는 오똑하고 머리는 검은지 노란지 구분이 안되는 호리호리한 신사가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담임 선생님을 만난 듯 꾸벅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고 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도 검은지 파란지 구분이 안되었다. 표정 감춘 얼굴로 바라본 그는 새로 온 목사님이 분명했다. 희면서도 꽃잎 광채가 나는 그 중년의 목사에게서는 산신령 같이 거드름피는 마을의 남자 어른들과는 분명 달랐다. 볼을 찔러오는 듯한 강렬한 눈 빛이 까닭 모르게 그녀를 한 남자에게 포박시켰다.
 
“나는 새로 부임한 목사요. 주일날 친구들이랑 한 번 오세요.” 목소리는 크지 않고 물 흐르듯 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날로 하여금 푸른 풀 밭에 있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유년시절 크리스마스때 배워 불렀던 찬송가 한 대목이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 “잔잔한 물가와 꽃 밭의 교회가 되었네요.” 그녀가 잔잔한 바람소리처럼 내면의 소리를 내었다. “그래, 저 앞마을에 사는 학생 같은데. 이름이 뭔가, 춘부장은 누구신가?”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 손길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현재 상황처럼 느끼게 한다. 남자의 손이 억세지 않고 그렇게 비단같이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손도 목소리도 태도도 다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기를 십 수번을 반복했어도 그녀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마음은 온통 그 목사님에게 가있었지만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다. 친구들이 함께 가준다면 용기를 낼 수 있었는데 어느 친구도 자신과 함께 교회에 갈 수 없었다. 집안일과 학교생활과 동생들 보살피느라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 소녀들 같으면 잘생긴 K-Pop 남자 가수가 왔다고 하면 열일 마다하고 달려들텐데. TV가 없던 그 시절 그녀에겐 지금의 그 어 떤 배우나 가수보다 깨끗하고 잘 생긴 새 목사님은 우상 같은 것이었으나 나이차이라는 벽보다 교회라는 장벽이 인간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해 겨울 눈이 허리춤까지 쌓인 아침, 부모님이 어디 다니러 가시고 그녀가 동생들을 보살피고 있던 날이었다. 남 동생 하나 있는 것이 갑자기 눈깔을 하얗게 뒤집어 쓰고 죽어가고 있었다. 음식을 잘 못 먹고 체했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세 살 때 마른 오징어 다리 한 점 베어먹고 체해서 죽다 살아난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곱 살이나 먹은 동생을 업고 뛰었다. 눈이 깊이 쌓여 막힌 길을 뚫고 달리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날이 좋아도 뛰어서 10분도 더 걸리는 거리였다. 집안의 대들보인 남동생의 숨이 멎어 버릴 것 같은 생각에 어떻게 달린지 모르게 달려 아마 한 10여분 만에 교회에 도착했던 것 같다. 체내는 할머니 집이 마을 어디쯤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체되면 겨우 숨을 헐떡거리는 동생의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아서였다.
 
업고 달리면서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이 동생을 살려주시면 교회에 꼭 나가겠다.’고 되뇌고 싶었지만 입술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 같아서였다. 혹시 교회에 못나가게 될 경우가 있을 것도 같았다. “목사님, 동생을 살려주세요.”  교회 옆 목사님 사택문을 두드리기 쑥스러웠던 그녀는 사택 창을 바라보고 크지 않게 소리쳤다. 이른 아침이라 잠을 깨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옥희 학생이구나, 어서 들어와 어떻게 된 거니?” 목사님이 놀래서 허겁지겁 잠 옷 바람으로 맨 발로 눈 밭에 나와 동생을 안고 그녀를 안으로 이끌며 물으셨다. 동생은 숨이 거의 멎어가는 듯 했지만 아직 붙어 있었다. 사모님께 침을 갖다 달라고 하고는 동생을 편히 뉘고 발바닥과 손바닥을 지압 했다. 이어 옷핀보다 가는 수지침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땄다.
 
샛노랗게 변해 있던 동생의 손과 발에 붉은 핏기가 돌았다. 체내는 할머니를 사모님이 모시러 갔다. 그러나 마을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어디로 간지 찾을 수 없다며 되돌아 왔다. 목사님은 체내는 할머니를 어제 저녁 보았다고 했다. 노인들 사는 집은 저녁에 둘러보는 습관이 있어 어젯밤 불켜진 할머니의 방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사모님께 어디어디에 가보라고 했다. 사모님이 다시 찾으러 나가고 목사님은 연신 동생 등을 두드려주고 배를 마사지 해주었다. 반 시간쯤 흘렀을까? 체네는 할머니가 사모님과 함께 들어와 체를 내렸다. 어젯밤 먹고 잔 고깃덩이 한 점이 깊은 바다에서 올려져 굳어진 아메바처럼 건져 올라왔다. 언제 아팠냐 싶게 동생은 명랑함을 되찾았고 목사님은 당신의 죽은 자식이 살아난 것만큼이나 기쁨에 취해 연신 “땡큐 땡큐!!” 하며 당신의 두 뺨을 동생의 두 뺨에 비벼댔다.
 
그날 목사님은 완벽했다. 외모, 성품, 위험상황하에서 침착성, 인간적 체취, 아빠로서의 다정함, 신실하신 능력. 같은 남자가 또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집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이 살아난 것을 보고 안심한 목사님이 먼저 바삐 일어났다. 회의 때문에 인근 도시에 가셔야 한다고 했다. 네다섯 살쯤 되는 딸이 그때 잠에서 깨어났다. 이름이 은혜라고 했다. 목사님은 사모님의 볼과 은혜 입술에 보드라운 키스를 하고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전율이 일었다. 은혜가 되었다. 목사님의 딸이고 싶었다. 은혜의 언니이고 싶었다. 아니면 은혜의 이모라도 되고 싶었다. 교회 사택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래도 주일에 교회에는 여전히 나가지 않았다. 대신 남동생에게 목사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려주며 교회학교에 가도록 했다. “일하지 않고 먹는자, 들에 나가 일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거두라?’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을 남자 어른들이 남학생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뜻으로 사용하는 이 말을 떠올려 그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다. “맞아, 오늘 같은 날 목사님이 일하러 간다고 일찍 집을 나섰더라면 내 동생은 죽었을 거야.” 동생이 죽었다면 우리 집은 모두 다 죽는 것, 그러니 오늘 목사님은 열명에 가까운 생명을 순식간에 살려 낸 거야.” “그럼 나는 어떻게 매우 필요한 사람으로 클 수 있을까?” 할머니처럼 베를 잘 짜는 것은 그 배로 남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보다 배를 짜느라 따뜻한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벼슬을 해 사람들을 돕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받는 녹이 더 클 것 같았다. 학문으로 후대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것은 학생들이 소중한 청소년시절을 바치는 시간 손실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렸다. “그림! 맞아, 그것은 최소한 강제로 남에게 빼앗는 것은 없어, 녹도, 시간도..” 그림을 못그려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감상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 마음이 움직여 그림을 사가지 않으면 강제로 세금을 거둬가듯 남의 돈을 거둬가지도 않는다. “그림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그림이 생산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을 먹고 입히기 충분한 만큼의 생산이 되는가?” “그건 덜 입고 덜 먹으면 어떨까, 그리고 잘 그리면 스스로를 잡초로 알고 있는 백성들에게까지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 보다 나은 미래의 세상을 위해.” 그림만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소리친다. “야호, 나도 이제부터 그림을 생산한다!” 꿈도 생산이 되고 기대도 생산이 된다. 수많은 종이를 필요로 하고 읽는데 몇 시간을 할애 해야 할 소설보다 한 화면에 다 표현할 수 있고 읽는데 몇 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그림이 좋았다. 그녀는 이후 화가라는 직업을 한번도 바꾸지 않는다. 그림을 통해 공포와 무력감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평화와 조화, 용기와 희망, 꿈과 믿음을 생산한다. 최소한 남의 시간과 돈을 빼앗는 도둑이 되지 않을 기본기는 이미 갖추고 태어난 듯 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와 남동생은 달음질 치지 않고 집에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해가 가고 다들 도시의 학교나 직장으로 빠져나가는 세상이 왔다. 친구들도 떠나갔다. 그녀와 자연만 남았다. 그 목사님도 그대로였다. 은혜는 여전히 사택에서 목사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충분한 생산성을 올리지도 못한 채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의 마음이 바빠졌다. 목사님이 도시의 교회로 전근 가면 따라가서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면 더 좋은 생산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 안에 목사님이 도시로 떠나가기를 기도했다. 유년부에서 잠깐 배운 기도가 힘이 되었다. 하나뿐인 남 동생이 숨이 넘어갈 때도 기도다운 기도가 나오지 않았는데 기도는 저절로 거리낌 없이 나온다는 것이 그녀에게 변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목사님을 처음 만난 날 떠올랐던 풍경을 그렸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인자한 목자, 잔잔한 개울, 그리고 교회와 목사님과 은혜를 그렸다. 희망의 초록색과 통합의 노랑색이 바탕을 이루게 색칠했다. 오랫동안 인류가 함께 해온 색들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생각했다. 중세 교회에 파랑이 색을 지배하다가 냉철한 이성과 조화를 요구하는 18세기 신고전주의 세상에는 하양이 지배하게 된 사실을 생각하며 파랑과 하양을 삽입했다. 목사님께 달려갔다. 제목을 부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는 그림이구나!” 하시며 어깨를 안아주셨다. 그러나 옛날과 달리 목사님의 세월도 지쳐 보였다. 그래서 그녀도 목사님의 지친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키가 커서 어깨를 안지 못했다. “목사님도 피곤하실 때가 있으시지요? 부르시면 제가 와서 어깨를 안아 드릴께요.” 우리는 한참 말이 없이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안고 있었다. 목사님의 목 매인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녀는 목사님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보다 훨씬 늙은 남자의 박동 소리가 한 창 나이의 그녀보다 심장이 두 배는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이 그림, 목사님 드리고 싶어요 “고맙구나. 모든 교인이 볼 수 있도록 교회에 붙여 놓고 싶구나 하지만 나는 안다. 그림이 그것도 첫 그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래서 목사님께 드리고 싶은 거예요.” “아니다, 이 그림을 집에 붙여 두고 내가 생각날 때마다 보거라, 주님이 생각날 때 보거라. 기도가 절로 나올 게다.” “다시 하나 그릴 수 있어요, 그러니 이 그림은 목사님 가지세요.” “아니다,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화가라 해도 두 번 다시 똑 같은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없는 거란다. 학생들이 보고 따라 그리게 해서 붙여 놓겠다.” “목사님이 그림이나 화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응, 내가 아마 목회를 하지 않았더라면 화가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 아마 청년시절 신앙이 지금 정도의 신앙심이었다면 신학을 하지 않고 미술을 공부 했을거야.” “네, 그렇군요” 목사님이 미술대학을 권했다. “그림을 보니 미술대학을 가는 것이 좋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목사님이 도시로 전근가시면 따라가서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 하나님이 만약 내 기도를 들어 주시면 그렇게 하자. 만약 안 들어주시면…” “괜찮아요, 산골에서 자연을 스승삼아 그리면 되요.” “그래, 이 그림도 누구에게 배워 그린 그림이 아닐텐데, 충분히 그래도 되겠구나.”
 
몇 달 후 목사님은 또 다른 산골로 전근 가셨다. 은혜의 이모도 은혜의 언니도 아닌 그녀는 사택에서 생활할 수도 없어서 따라가지 못했다. 대신 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반 나절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교회를 학생들의 그림으로 꾸몄다. 훗날 서로 각자의 도시로 떠나갈 때까지 계속했다.
 
곧 겨울이 오고 기상변화를 실감하듯이 눈이 도통 오지 않는 세상에 눈들이 수북이 내렸다. 눈 때문에 길이 끊기고 키 작은 집들은 두터운 눈 속에 파묻혔다. 눈 속을 동생 업고 뛰고 눈 밭에 잠옷바람으로 맨발로 뛰어 나온 목사님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녀는 여전히 걷는다. 여전히 생산한다. 꿈과 희망을 그려온 세상이 변했다 해도 그녀는 바뀌지 않고 똑 같은 희망과 꿈을 놓지 않는다. 나누어줄 꿈은 생각보다 원대하면서도 세밀했다. 작은 꽃도 크게 그려진 꽃 잎들은 역동적으로 춤 추고 각자의 화려한 색상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색상을 범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롭다. 그 목사님께 들이 댄 남자의 잣대를 낮게 내려놓고 싶지만 그것은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 남들은 슬프게 볼지라도 그녀는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아무튼 살아 남아야 한다. 그녀의 선택이 일탈이다 할 지라도 마지막 불꽃을 피울 무렵 아름다우면 성공한 길이니까. 오래지 않아 화가의 생산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록과 노랑과 파란 바탕색 위에 하얀 눈이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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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힘 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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