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는 유럽보다도 더 크고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45배 이상이나 되는 큰 나라다. 이렇게 덩치 큰 나라에 우리는 1974년 하필이면 퀘백주의 몬트리올로 이민 가서 40년을 거기서만 말뚝을 박고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나 독거로 살다가 아들이 있는 밴쿠버로 살림을 합쳐 산다. 돈 들여 여행도 하는데 나는 돈 들이지 않고 동부와 서부를 몸으로 살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황혼이다.
몬트리올 이야기다. 겨울이 6개월이나 되는 그 곳의 봄은 그야말로 부활 그대로다. 4월을 지나면서 봄기운이 거리를 휩쓸면 5월이 들어서기 무섭게 꽃들은 앞을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라일락이 골목마다 향수를 뿌리는 어머니날을 앞뒤로 즉시 산나물 철로 접어든다. 5월은 고비나물, 참 나물 6월은 활 나물, 고사리.. 철마다 나물을 따서 저장했다가 일 년 내내 무슨 파티가 있으면 나물로 상을 화려하게 차려 낸다. 나물 중에도 고비나물은 정말 놀랄만하다. 키는 내 무릎까지 굵기는 내 약지 손가락만큼이나 실하다. 얕은 강가, 개울 물 주변에 지천으로 난다.
그러나 이 곳 밴쿠버는 고비가 아니라 고사리다. 몬트리올도 고사리가 많이 나지만 여기처럼 그렇게 실하지도 못하고, 물론 한국 고사리보다는 실하지만, 아무데나 나지도 않는다. 나는 도시에서만 살아서 나물에 대한 지식이 전연 없었고 고작 아는 것이라야 고사리 와 산나물 정도였는데 이민 와서 터득한 나물 지식은 상식 이상이다. 내가 밴쿠버 고사리를 처음 본 것은 강아지 산책 길에서였다. 산책길 옆으로 이끼길, 잡풀을 누르고 자랑스레 쭉 뻗은 고사리 대, 마치 퀘백의 고비 대 만큼 실하고 통통한 모습이 신기 해, 한 대를 꺾어 사진으로 찍어보니 영락없는 귀부인의 옥비녀다. 한 대를 손뼘 정도로 넷으로 자르면 서너 대만 꺾어도 한 끼 밥반찬이다.
몇 대를 꺾어 들고 온 고사리를 가지런히 같은 길이로 잘라 끓는 물에 데치고 깨끗이 헹구고 햇볕에 말려 한 움큼씩 묵은 것 두어 개를 한국에 사시는 언니에게 선물을 했다. 마치 귀한 약초나 되듯 내 정성을 다 들여 곱게 포장하여 보냈는데, 8순이 넘으신 형부가 좋아 하신다고 더 보내 달라신다. 인터넷에서는 고사리가 암을 유발한다고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르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먹고 살아온 나물이고 또 우리는 80을 살았으니 수를 다 누리고 산 셈이라, 지금부터 사는 것은 덤으로 주신 생명을 사는 것이니 즐길 만큼 즐기고 살자는 생각이다.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은 하느님 소관이니 죽음은 아무 때나 오시라 하고 고사리든 고비든 가리지 말고 즐기자. 황혼의 노을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잃을 것이 없는 시간을 살기 때문이니 젊음을 잃었다 말고 늙어감이 나를 풍요롭게 해 준다고 생각하며 새털처럼 가벼운 맘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종달새처럼 하늘을 날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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