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7-04-15 09:39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카나다는 유럽보다도 더 크고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45배 이상이나 되는 큰 나라다. 이렇게 덩치 큰 나라에 우리는 1974년 하필이면 퀘백주의 몬트리올로 이민 가서 40년을 거기서만 말뚝을 박고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나 독거로 살다가 아들이 있는 밴쿠버로 살림을 합쳐 산다. 돈 들여 여행도 하는데 나는 돈 들이지 않고 동부와 서부를 몸으로 살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황혼이다.

몬트리올 이야기다. 겨울이 6개월이나 되는 그 곳의 봄은 그야말로 부활 그대로다. 4월을 지나면서 봄기운이 거리를 휩쓸면 5월이 들어서기 무섭게 꽃들은 앞을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라일락이 골목마다 향수를 뿌리는 어머니날을 앞뒤로 즉시 산나물 철로 접어든다. 5월은 고비나물, 참 나물 6월은 활 나물, 고사리.. 철마다 나물을 따서 저장했다가 일 년 내내 무슨 파티가 있으면 나물로 상을 화려하게 차려 낸다. 나물 중에도 고비나물은 정말 놀랄만하다. 키는 내 무릎까지 굵기는 내 약지 손가락만큼이나 실하다. 얕은 강가, 개울 물 주변에 지천으로 난다.

그러나 이 곳 밴쿠버는 고비가 아니라 고사리다. 몬트리올도 고사리가 많이 나지만 여기처럼 그렇게 실하지도 못하고, 물론 한국 고사리보다는 실하지만, 아무데나 나지도 않는다. 나는 도시에서만 살아서 나물에 대한 지식이 전연 없었고 고작 아는 것이라야 고사리 와 산나물 정도였는데 이민 와서 터득한 나물 지식은 상식 이상이다. 내가 밴쿠버 고사리를 처음 본 것은 강아지 산책 길에서였다. 산책길 옆으로 이끼길, 잡풀을 누르고 자랑스레 쭉 뻗은 고사리 대, 마치 퀘백의 고비 대 만큼 실하고 통통한 모습이 신기 해, 한 대를 꺾어 사진으로 찍어보니 영락없는 귀부인의 옥비녀다. 한 대를 손뼘 정도로 넷으로 자르면 서너 대만 꺾어도 한 끼 밥반찬이다.

몇 대를 꺾어 들고 온 고사리를 가지런히 같은 길이로 잘라 끓는 물에 데치고 깨끗이 헹구고 햇볕에 말려 한 움큼씩 묵은 것 두어 개를 한국에 사시는 언니에게 선물을 했다. 마치 귀한 약초나 되듯 내 정성을 다 들여 곱게 포장하여 보냈는데, 8순이 넘으신 형부가 좋아 하신다고 더 보내 달라신다. 인터넷에서는 고사리가 암을 유발한다고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르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먹고 살아온 나물이고 또 우리는 80을 살았으니 수를 다 누리고 산 셈이라, 지금부터 사는 것은 덤으로 주신 생명을 사는 것이니 즐길 만큼 즐기고 살자는 생각이다.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은 하느님 소관이니 죽음은 아무 때나 오시라 하고 고사리든 고비든 가리지 말고 즐기자. 황혼의 노을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잃을 것이 없는 시간을 살기 때문이니 젊음을 잃었다 말고 늙어감이 나를 풍요롭게 해 준다고 생각하며 새털처럼 가벼운 맘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종달새처럼 하늘을 날을 수 있지 않은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왕궁의 후예 2024.01.15 (월)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박혜경
새해의 기도 2024.01.15 (월)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게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정호승
새해 기도 2024.01.08 (월)
겸허하게 하소서.내게 없는 것에 불만 하지 않고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늘 감사하게 하소서나 여기에 존재하므로저기에 하늘 땅 바다가 존재하며나 여기에 고른 숨쉬고 있음에온 우주가 맥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봄 여름 가을 겨울내 작은 발로 헤쳐갈 삶의 여로에서건네는 눈길마다, 마주 잡는 손길마다꽃잎 줍는 가슴처럼 따뜻하게 하소서덧칠 안 된 언어로 기도하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 인연이여세월에도 녹슬지 않는 영혼으로심장엔...
안봉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굼뜬 어둠을 밀고 알버타 대 평원에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빛甲辰年 큰 희망으로 새 아침을 달군다매듭 달 지는 해에 아쉬움 실려 보낸오늘은 엄동설한 눈 속에 서기로운섬광이 꽃으로 피어 희망을 섞고 있다세상의 기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자연에 봉헌하는 서정과 순수만이고단한 삶의 이력에 발자취로 남는 것주님, 평소 소원한 이웃과 가족들에게옹졸했던 마음 모아 용서를 청하오니새해엔 달 뜬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모진 설한의...
이상목
God, where are you? 2024.01.02 (화)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4시 30분쯤. 출근길에 bus shelter를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meless guy인 것 같았다. 살펴보니 흐트러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누워있는데 그는 얇은 천으로 된 검정 상의와 파란색 하의 그리고 흰색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의 허리와 발목은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상체를 비틀다가...
愚步 김토마스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