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7-03-11 08:35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밴쿠버에 이민을 와 16년을 넘게 사는 동안 금년 겨울처럼 많은 눈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공교롭게 주말을 끼고 폭설이 내린 날이 많아, 매 주일마다 작은 교회에서는 심지어 예배인원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로 이상 폭설이 지속되었다. 시절은 어느새 3월로 접어들어 우수, 경칩을 지나 바야흐로 새순과 어린 싹이 고울 시절에 그야말로 ‘춘래 불사춘’인 셈이다
 
 
  이번 겨울이 일기(日氣)만 그러했던가? 바다건너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더욱 스산한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특검이 마무리되었지만, 대통령의 조사는 불발이 되고... 이제 마지막 헌재의 결정이 남아있다지만, 그마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 것을 보면서 많은 주위사람들이 벌써부터 한국 뉴스를 안보고 지낸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래 차라리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일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비단 탄핵이나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는 모습이 그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가 이혼을 결심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없이 과묵하고 말없이 배려해주는 게 좋아 결혼한 커플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도저히 살 수 없어 헤어지는 경우나, 재미있게 들려주는 달콤했던 이야기가 견딜 수 없는 잔소리로 다가와 갈라선다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요즈음 유행하는 줄임말로 쉽게 표현해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어 결혼했던 ‘볼매’가 살다보니 볼수록 매를 부르는 경우도 있겠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만났던 ‘성자’가 살다보니 성질 더러운 자식이었다는 하소연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사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봄이 봄 같지 않지만 그러나 곧 봄은 다시 오리라... 진정한 봄이 오는 순간까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고 정죄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이 봄,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샀던 자석 ‘나침반’처럼, 미세하게 떨면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으려 온몸으로 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그 떨림이 누군가에게는 기도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선율과 채색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업의 현장이 되겠지만, 그 떨림이 있기에 살아있음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 가운데 “떨리는
나침반“을 소개한다.
 

떨리는 나침반    (신영복)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평생 현역 2024.01.02 (화)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난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라앉는 기분이지만 천운을 어찌하겠는가!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대학 선배님이 최근에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 달여 전에도 카톡 통신을 주고받았는데, 그때 코비드 감염으로 몸이 몹시 아프다고 했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실 줄은 생각 못 했다. 사인은 코비드 보다 갑작스러운 췌장암 진단에 의한 충격에 혈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하니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김진양
낙엽이 되어 2024.01.02 (화)
낙엽이 되어길을 떠나기로 했다내려앉은 하늘머리에 무겁게 이고혼자 걸어가는 길세상은 고요한데길 위에 놓인 시간은 늘천둥 번개가 몰아친다떠나기로 작정할 때어렴풋이 그려진 그림처럼뭇 발길에 밟히고이리저리 걷어 차이고자꾸 끌려 다닌다낙엽이 되어길을 떠난다는 것은한 몸 오롯이 던지고 던져형체도 없고 마음도 없는나를 마저 버리는 일낙엽이 되어길을 떠나기로 했다
강은소
달걀 2023.12.27 (수)
달걀에는 생명이 있었다어미 닭이 품으면 어김없이삐악삐악하며 뛰노는노란 병아리가 나왔다 닭은 이제 알을 품을 자유도 권리도 없다그저 달걀을 낳아야 할 뿐이고모이를 준 대가로 주인은달걀을 모조리 빼앗는다 품어도 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 알을닭은 하루에 두 번 온 힘을 쏟아 빚어낸다닭은 자기가 낳은 그 많은 알이어디서 무엇이 되는지 모른다 새 둥지까지 기어올라 새알을 훔치는 뱀사뿐사뿐 다가가 새를 덮치는 고양이도...
송무석
10월 단상(斷想) 2023.12.27 (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햇살 좋은 날 더없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인가 이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40여 년 전 내가 한국을 떠나올 무렵 한창 인기몰이하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매년 10월이면 모든 방송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라서 한국에서는 ‘잊혀진 계절’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이용은, 이 노래로 MBC 10대 가수...
권순욱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되기 전 USSR 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전 세계를 미국이 이끄는 민주, 자유,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서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던 시절이었다. 이 때의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최초의 달 탐험, 대륙간 탄도 유도탄, 100메가톤급 핵 폭탄 실험 등등으로 미국을 주눅들게 하기도 했으며 또 쿠바위기를 조성해...
정관일
기차 여행 2023.12.27 (수)
얼마만인가 이 설레임은번호표를 확인하고 기차에 오른다자리를 앉다 보니 역방향이다역방향이건 정 방향이건 무슨 상관이랴잠시 서울을 비워 두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게 중요한 일이다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산 나무 구름 바람 숲 속의 외딴집벽돌색 지붕위에 햇살이 눈부시다  딸아이가 삶아온 계란에소금을 꾹꾹 찍어 먹으면서 그 옛날 소풍 갈 때나 운동회 날 계란을 쩌 주신 어머니가 생각 나눈시울이 붉어져 창가로 고개를...
김희숙
소중한 그대 2023.12.18 (월)
그대를 보면 마음이 즐겁습니다눈빛만 보아도 편하며그대는 내 삶의 모두입니다멀리 있어도 그립고 생각만으로마음이 따뜻해집니다만나면 헤어지기를 영원으로 미루고항상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그대와 함께 앉아대화을 나누면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습니다두 손 꼭 잡고함께 걷고 싶습니다 보면 언제나 즐겁고 그대는 멋지고 진지하고 배려하는애처가입니다내 일생에 있어난 그대가내 곁에 있어 기쁨을 비하할 곳이 없습니다나의 소중한...
로터스 정
  8월말부터 9월 한 달간을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마음먹고 출타하는 김에 마침 올해 환갑을 맞는 여동생을 축하할 겸 베트남 패키지여행과 그리고 몇 차례 일본 방문을 하면서도 유독 큐슈 지방은 기회가 없어서, 부산 일정 뒤로 후쿠오카 자유여행까지 조금 과장하면 연암의 ‘열하일기’에 버금가는 대장정을 펼치고 돌아왔다. 가격대가 저렴한 베트남 다낭 패키지 여행은 사실 아무런 기대없이 가격이 워낙 좋은 이유로, 그리고 하도...
민완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