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이민을 와 16년을 넘게 사는 동안 금년 겨울처럼 많은 눈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공교롭게 주말을 끼고 폭설이 내린 날이 많아, 매 주일마다 작은 교회에서는 심지어 예배인원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로 이상 폭설이 지속되었다. 시절은 어느새 3월로 접어들어 우수, 경칩을 지나 바야흐로 새순과 어린 싹이 고울 시절에 그야말로 ‘춘래 불사춘’인 셈이다
이번 겨울이 일기(日氣)만 그러했던가? 바다건너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더욱 스산한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특검이 마무리되었지만, 대통령의 조사는 불발이 되고... 이제 마지막 헌재의 결정이 남아있다지만, 그마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 것을 보면서 많은 주위사람들이 벌써부터 한국 뉴스를 안보고 지낸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래 차라리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일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비단 탄핵이나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는 모습이 그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가 이혼을 결심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없이 과묵하고 말없이 배려해주는 게 좋아 결혼한 커플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도저히 살 수 없어 헤어지는 경우나, 재미있게 들려주는 달콤했던 이야기가 견딜 수 없는 잔소리로 다가와 갈라선다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요즈음 유행하는 줄임말로 쉽게 표현해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어 결혼했던 ‘볼매’가 살다보니 볼수록 매를 부르는 경우도 있겠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만났던 ‘성자’가 살다보니 성질 더러운 자식이었다는 하소연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사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봄이 봄 같지 않지만 그러나 곧 봄은 다시 오리라... 진정한 봄이 오는 순간까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고 정죄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이 봄,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샀던 자석 ‘나침반’처럼, 미세하게 떨면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으려 온몸으로 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그 떨림이 누군가에게는 기도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선율과 채색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업의 현장이 되겠지만, 그 떨림이 있기에 살아있음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 가운데 “떨리는
나침반“을 소개한다.
떨리는 나침반 (신영복)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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