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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속에 감춰진 ‘배려’의 또 다른 얼굴

섬별 줄리아 헤븐 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2-18 09:32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그 시절에는 외삼촌댁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양 발에 무명 실타래를 걸어 놓고 실을 감고 계시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때때로 나는 할머니의 양 발에 걸렸던 실타래를 나의 두 손에 걸어 놓고 할머니를 돕기도 했고, 그것이 무료해질 때쯤이면 실타래를 할머니의 두 손에 걸어 놓고 내가 실을 감아 나가기도 했다. 할머니와 내가 서로 호흡을 맞춰 양손과 어깨를 들썩이며 움직여 실을 감아 나갈 때는 엉키는 일없이 두툼했던 실타래는 빠른 속도로 잘 풀려 나갔다. 물론, 호기심이 한창 물오른 나도 할머니처럼 나의 두 발에 실타래를 걸어 놓고 실을 감아 봤지만, 여덟 살 어린 소녀가 하기엔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 방바닥에 내팽개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바닥에 너 부러진 실 뭉치가 제 멋대로 뭉치고 엉켜 외할머니의 당황한 탄식을 들어야 했지만, 할머닌 내게 야단 한번 안치고 엉켜 붙어버린 실을 조심스럽게 풀어 나가신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않은 실 뭉치가 실패에 감기는 것이 내 눈엔 할머니의 신기한 마술처럼 보였다.

난 가끔 우리네의 삶이 뭐라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선들로 엉켜있는 실타래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모양새 조차도 이해 관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네 모습과 비슷하다. 제풀에 지쳐 처음부터 풀어낼 엄두도 내지 못해 싹둑 잘라 내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끄트머리 가닥을 찾아 엉켜있는 뭉치 속으로 집어넣고 빼가며 포기하지 않고 풀어 나가는 것 역시, 닮았다.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 얽히고 섞이어 녹아있는 것들 중에는 ‘배려’라는 아름다운 행실도 들어 있다. 그 것은 기쁨과 즐거움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우리들의 삶의 질이 더 풍성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스치고 지나간 무수히 많은 배려 중에도 ‘내가 남을 위해 베푼 배려’와 ‘남이 나를 위해 내게 베푼 베려’, 즉, 입장이 다른 두 종류의 배려로 인해, 난 ‘배려’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십 오륙 년 전, 불혹을 넘기고 삼십여 년 만에 만나게 된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담배를 즐기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담배 피우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았기에 나는 불편하게 화장실에서 피지 말고, 편하게 자리에서 하라고 권했다가 몇 해가 지나가도록 그 친구로부터 원망을 들었다. 그 당시에 우리들의 자녀들은 이미 대학을 들어 갔거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라 새파랗게 젊은 사람도 아닌데 굳이 화장실을 찾아 숨어 피다시피 하나 싶었다. 내 딴에는 그 친구에 대한 나의 배려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만 칠 년 전에 나는 친정어머님의 병환으로 간병을 하기 위해 한국에 칠 개월 여 머무른 적이 있다. 어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어머님 또래의 권사님 친구들이 어머니 곁에는 생겼다. 함께 구역 예배도 드리며 만남을 이어 가던 중, 엄마와 내가 동거를 시작하고 서너 달 지나, 첫 구정인 설을 맞았다. 딱히, 명절이라고 별다를 게 없는 우린 구정 전날, 밤새 TV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야식도 먹고, 느즈막히 동이 틀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헌데, 아침 일곱 시 넘어 울리는 전화 벨 소리.
가까이 사시는 권사님 한 분이 떡국을 같이 먹자고 건너 오라는 전화였다.
“죄송합니다. 엄마랑 제가 새벽 다섯 시쯤에야 침대로 들어 왔어요. 어머닌 지금 주무셔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십분 간격으로 두 번 더 전화가 와서, “내 맘이 편치가 않아서 그래. 수저 두 개만 얹으면 되니까 어서 빨리 건너와요. 우리 아들 내외도 지금 막 왔어.” 은근 역정을 내시는 권사님. 그럼에도 코를 골며 주무시는 엄마를 깨울 수는 없었고, 나 또한 이제 막 꿈나라 여행길에 들어섰던 지라, 눈도 떠지지 않아 정말 부담을 듬뿍 안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절을 했다.  엄마와 내게 필요한 건 떡국이 아니라, 쏟아지는 달콤한 꿀 잠이었으니…… .

세 차례의 전화에 세 번의 거절을 하고 나니, 뭔지 모를 답답함이 나를 짓누른다. 짜증 섞인 불쾌함이 피곤을 가중시키고 애써 잠을 청하려던 그 순간, 내가 즐겨 ‘배려’라고 생각하며 베풀던? 나의 친절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난처하고, 때론 당혹스럽고,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구나……친절한 권사님의 ‘배려’로 그 동안 생각조차 하지 못한 기억 속의 배려 하나가 떠올랐다. 일 테면, 십 수년 전의 마흔 살 넘어 만났던 초등학교 동창의 마음을…… 아니, 나를, 나의 ‘배려’를 돌아보게 된 거다.

창문 하나 없는 여자화장실에서 그 친구가 담배를 피우고 난 뒤에 화장실을 사용하면, 내 몸에도 담배냄새가 배여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친구가 청결치 않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권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몸에 배는 유쾌하지 않은 냄새에 내 딴에는 그 것이 그녀에 대한 배려라고 착각하고 권했던 건 아니었는지……  친구 역시, 우리 모두가 다 안다고 한 들, 버젓이 드러내놓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비로소 나를 향해 지나치게 도전적이던 친구의 상처받았을 마음에 미안함이 덧입혀져, 날이 훤히 밝아버린 정월 초하루의 아침,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권사님 또한, 내가 몇 차례나 갈 수 없음을 설명 했음에도, 모녀가 명절에 둘이 있는 게 안쓰러워 아침 한끼라도 베풀고자 하는 배려였지만, 정작, 거절해야만 하는 나는 어르신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까지 짊어져야 했다. 떡국 한 그릇 같이 먹고 보내면 본인은 마음이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엄마와 내가 한 시간 여, 자다 말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남의 집에 명절 아침부터 가고 싶겠나…… 더 더욱이 그 당시, 우리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져서 수술 받고, 연세도 많아 의사도 포기한 상태에서,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으로 일어나 비록, 어눌하지만 말하고 걸으며,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부터 ‘배려’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조심을 한다. 나의 ‘의’가 드러나는 일인가? 내 맘 편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상대방을 위한 일인가? 가끔 혼동이 될 때가 있다. 내 맘이 편하고자 하는 ‘배려’에 상대방은 본의 아니게 상처도 받을 수 있고,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분별력을 가져야 되는데 그 것 또한 나 혼자서는 힘들다.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의 행동과 동기가 깨끗한 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판가름하신다는 뜻이다. 나의 ‘의’와 ‘공치사’가 아닌, 온전한 ‘의로움’이 하늘로부터 와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어찌되었든, ‘배려’는 좋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베푼 당신의 작은 배려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기쁨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일이 있겠나.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실 타래가 잘 풀려 나가고, 감기는 것이 원활하게 되듯이, 처음부터 시작과 끝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 실타래처럼, 그렇게 우리네 인생도 좋은 ‘배려’와 ‘사랑’으로 이어가고 풀어 나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엉킨 실타래를 묵묵히 풀어 나가시던 외할머니의 마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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