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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7-01-28 10:5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소설가 조양희씨가 쓴 <<도시락 편지>>라는 책이 한동안 인기 도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저자가 아이들 도시락을 싸면서 함께 적어 넣은 쪽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끈 까닭은 도시락과 함께 담은 엄마의 마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누구나 부모나 다른 식구가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내가 어릴 때는 가장 흔한 도시락 반찬이 아이들이 '염소 똥'이라고 장난치고는 했던 콩장과 멸치 볶음, 김치나 김치 찌개 등이었다. 나중에 시장에서 '덴푸라'라고 하던 어묵을 만들어 팔기 시작 했고 요즘 서양 소시지에 비하면 우리 아들 말대로 '어육'으로 만든 소시지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소시지나 어묵은 꽤 귀한 반찬이었다. 가끔 계란을 부쳐서 밥 위에 얹은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계란이 귀한 시절이라 계란만으로 만든 게 아니라 계란 한 개에 밀가루를 듬뿍 넣어 커다란 직사각형 도시락을 덮을 만큼 크게 만들었다.

겨울에는 알루미늄 도시락에 담은 밥이 너무 차가워서 먹기가 나쁘니까 아이들은 교실 난로에 도시락을 올려 놓아 데워 먹었다. 그런데 난로에 직접 닿으면 밥이 타거나 눌러 붙고 너무 위에 놓으면 잘 데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서로 되도록 중간의 좋은 데에 도시락을 놓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김치 같은 국물이 흐르고 냄새가 나는 반찬을 가지고 다니니 가끔은 국물이 새어 나와 가방에 묻고 냄새가 배어나 창피해 했던 기억은 나만의 추억이 아닐 것이다. 점심 후 교실에 온통 음식 냄새가 진동해 식사 바로 다음 시간에 수업을 맡으신 선생님께서는 환기를 안 시켰다고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시기도 했다.

나와 도시락의 인연은 학교를 마친 이후에도 계속 됐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한 20년 가까운 세월 거의 매일 점심, 저녁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학창 시절처럼 실내 온도로 식어 버린 도시락이 아니라 아내가 바로 해 도시락으로 싸온 따끈한 음식이거나 아니면 출근할 때 보온 도시락에 담아준 따뜻한 밥이었다. 내가 워낙 짠 식당 음식 보다 집에서 한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건강에 좋은 음식을 직접 해 줘야 한다는 아내의 정성 어린 마음 덕분에 이렇게 따끈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는 밖으로 소풍 갈 때가 아니면 더 이상 도시락을 먹지 않지만 여전히 아내는 아이들 도시락을 싼다. 아이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하니 김치가 들어 가는 음식 대신 빵도 싸고 볶은밥도 싸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김밥을 아이들 도시락으로 싸 주는 아내의 정성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일까.

도시락은 이제 진화(?)하여 특정 상표를 달고 편의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효자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 보지 않아 얼마나 맛이 좋은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 어머니께서 또는 아내가 싸 주던 그런 맛을 편의점 도시락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리는 정성이요 애정이다. 반찬 거리가 없어서 행여나 국물이 샐까 걱정하면서 시장에서 빈 이유식 병을 사다 김치 찌개를 싸 주며 자식이 끼니를 거를까 염려하던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도시락이 그렇게 고맙고 맛있었을까?

 
혼자 사는 이는 대개 요리를 자주 하지 않고 제대로 식탁에 음식을 차려 먹지도 않는다. 나는 요리는 타인, 특히 가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변변치 못한 식재료를 이용해서 가족을 위해서 도시락을 싸던 그 시절에는 외식은 정말 드문 행사였다.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조리 기구도 그 이름과 용도를 다 모를 만큼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예쁘게 잘 꾸민 부엌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이에 걸맞게 식구를 위해 요리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먹는 횟수 만큼이나 외식을 자주 하는 시대이니. 현대의 우리는 어머니가 아내가 하던 요리를 음식점 음식으로 대신하면서 경제 성장(소득 증가)을 이루고 편리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런 과정에서 가족을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던 그 애정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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