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귀여우신 우리 엄마

김난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12-31 11:42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우리 엄마는 참 귀엽다. 구십 다 되신 노인이 어떻게 귀여우시냐고? 우리를 다 키우고 난 뒤 다시 아기가 되셨다. 백일 된 아기처럼 이도 없고 말 배우는 아기처럼 천천히 말씀하시니 다음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기다려진다. 종이 인형처럼 가느다란 팔목으로 벽을 짚으신다. 발바닥을 떼지 않고 끌면서 걸으신다. 무섭던 우리 엄마가 아기가 되셨다.
 
 내 어릴 적 어머니는 홀벌이 아버지의 경제력으로 일곱이나 되는 자녀를 키우기 위하여 무척 알뜰하셨다. 인절미를 하기 위한 찹쌀이 비싸니 밀가루 떡을 만들어 콩가루에 굴려 주셨고, 쌀이 비싸니 콩 넣은 빵을 쪄서 민들레 꽃으로 장식하여 분식 장려하는 학교로 배달을 해 주셨다. 보리밥에 질린 아이들은 낯선 빵을 먹는 우리 형제들을 부러워했었다.
 
 서울이 친정인 어머니는 친정 곁에 방 한 칸을 얻어 큰언니부터 차례로 유학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한참을 걸어가셨다. 시골 읍내에 피아노 한 대 귀하게 있던 시절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이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드디어 나의 중간 실력이 보이는 기회가 왔다. 교내 합창 경연대회가 열린 것이다. 나는 우리 반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읍내에 있는 극장에 전교생이 모이는 큰 행사였다. 우리 반 차례가 되어 단상에 올라가니 너무나 떨려 까만 건 머리요, 하얀 건 교복이란 것밖에 인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모래밭 속의 거북이 등처럼 우리 엄마의 얼굴이 객석 어디선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극성스런 우리 엄마. 학부모는 초청하지 않았는데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경연대회의 긴장감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더 무서웠다. 반주를 했는지 떨기만 했는지 경연은 끝났고 우리 반은 2등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두려운 마음으로 집에 가니 어머니는 이제 피아노가 하기 싫으면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다. 엄마 죄송해요. 그동안 피아노 연습을 간다고 집을 나와 근처의 친구 집에 가서 뛰어놀거나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따주거나 이 친구 저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동안 어머니는 새벽에 사과장사를 하셨다.
 
 모두에게 다정하고 인자한 어머니였건만 내게 무서웠던 이유는 떳떳하지 못한 나의 비행으로 시작된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하고 늘 어머니를 무서워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동생만 이뻐한다고 샘내고 어머니의 속을 지지리도 긁은 나였다. 나의 비행을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듯하다.
 
 오랜만에 뵈온 어머니는 더는 무서운 엄마가 아니었다. 안으면 부서질 듯 같아 안을 수가 없다. 만지면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아 만질 수가 없다. 오랜만에 딸이 왔다고 웃으시고는 곤히 주무신다.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걸 보니 힘겨우신 것 같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쏟아내시고는 먼저 보낸 자식, 아직도 어머니의 부양가족인 장애인 자식을 꿈에서조차 품고 계신가보다. 주무시는 엄마의 손을 만지작거려 본다. 굵은 마디는 어느새 막대기처럼 메마르고 거친 손바닥 마저 다 닳아 단지, 비닐장갑을 덮은 것 같다.
 
 엄마와 딸의 인연으로 만나 엄마 곁에 산 건 오직 십오 년. 내 자식을 기르는 동안 작아진 내 마음속 엄마의 방에 엄마는 늘 기다리는 사랑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자주 하지도 못하는 안부이지만 "엄마? 여기 캐나다". 하기가 무섭게 엄마의 노래는 시작된다. "사우 잘 있냐? 큰 손자, 작은 손자 잘 있냐? 너 건강하냐? ". 이민 온 지 십오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노래이다. 엄마의 방은 온통 손자 손녀들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삼 년 전 드디어 엄마는 첫 증손자를 보셨다. 요즈음 엄마의 즐거움은 증손자들 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 한다.
 
 
 구십의 노인이 육십 된 장애인 아들의 약을 챙겨주며 하루하루 생존해 가시는 모습이 오늘도 눈에 선하다. 무심코 가을바람 불어 쓸쓸하네, 라고 혼잣말을 할 때 "너는 옆에 남편 있고 자식도 있는데 뭐가 쓸쓸하냐"라고 하신다. 나는 비로소 강하기만 해 보이는 엄마의 속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엄마의 일생 자체가 소설이고 삶 자체가 드라마인 것만 같아 내 속이 쓰리지만, 엄마는 늘 즐겁다. 구십 연세에도 곁에 있는 자식에게 김치를 담아놓고 가져가라 하신단다. 우리는 어머니 힘들까 봐 안 가져가기로 몰래 작전을 모았는데. 노인대학에 음식을 손수 만들어가 나누어 드시고 몇 정거장을 걸어 시장에 가신다며 운동도 되고 재밌다고 좋은 말씀만 하신다. 힘없는 노인의 초인적 모정과 중노인으로 접어든 장애인 아들과의 동거는 서로 돕고 사는 삶의 더하기 빼기이다. 희미한 셈법과 실명하여 한쪽 눈만으로 살아가시지만, 자식에 대한 마음은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눈으로 들여다보시는 것 같다. 모든 어머니의 삶은 자식에 대해 드라마이고 소설이다. 아무리 엄마의 즐거운 척하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해도 때때로 아픈 내 가슴은 죄송하기만 하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내년에도 엄마의 재밌는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벌거숭이 산 2023.12.04 (월)
캐나다 로키에는 세 자매 봉이 다정하게 솟아있습니다. 요정이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산입니다. 세 자매 봉에는 일 년 내내 하얀 눈이 덮여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세 자매 봉 꼭대기에는 더 이상 눈이 없습니다. 이제 세 자매 봉은 덩그러니 벌거벗은 바위산이 되어버렸습니다.“아이 추워! 언니들!”막내는 포근하던 눈옷이 벗겨지자 추웠습니다. 두꺼운 눈옷을 입고 있을 때는 춥지 않았습니다. 눈 속은 참 따뜻하고...
이정순
솔방울의 추억 2023.12.04 (월)
카톨릭을 국교로 하는 캐나다의 가장 큰 국경일은 당연히 크리스마스이다.다민족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에 따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 크리스마스보다만민의 신과 같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더스데이가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국민들이 기리는날이기는 하다.한 해를 마무리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국경일이라 크리스마스 트리 등 많은 조명,장식과 선물, 음식, 종교적 문화가 발전되어 온 글로벌 축일이다.솔방울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은세
자화상 2023.12.04 (월)
1 비춰보면스스로만 늘 추해 보이는모습이 있었다흰 여백으로 가득 찬언덕 위생명과 목숨이라는 두 인간이겹치듯 어른거렸고시작도 끝도 없는 기호들이표면에 기재되었다가물가물 아지랑이로피어나고 있었다 2 허기진 배물 채우듯냄새도 색깔도 없었다스스로에 대한 경고나결심 따위는 팽개치고오로지 자신에게만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는 그곳늘노릿한 바나나 향이 배어 있어서두통약을 찾다가결국 엉뚱한 소화제를 찾기도...
하태린
숨죽이고 2023.11.27 (월)
비는 내리고까맣게 어두움이 몰려왔을 때에도 나는불을 캐지 않으리창구멍 어디에도 머리카락 한 올을 보이지 않으리숨소리도 죽이고나는 꼭꼭 숨으리 그가 애타게 나를 찾고 찾아도그래도 나는 미동도 않으리 어느 날 그가 말하면몰랐다고 말하리정말 몰랐다고 말하리 당신도 애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리더 탈 것 없어 하얗게 재가 되게 그냥 두리눈 헐기며 앙탈도 하리 세월의 옷자락이 너풀거릴 때그때에야 말하리한없이...
강숙려
빨리빨리, 천천히 2023.11.27 (월)
   자동판매기 버튼을 눌렀다. 캔 음료가 나오기 전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여 음료수가 나오는 통로로 손을 내밀었다. 조금 기다리니 덜컹하며 내 손에 잡힌 음료가 갈증을 풀어주었다. 자동판매기 앞에서 난 매번 필요 없는 동작을 한다. 커피 자동판매기에서도 버튼을 누른 후 커피가 다 채워지기 전에 손을 먼저 넣어 뜨거운 커피가 손 등에 흘러 데인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습관은 공공기관 서비스 안내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안내 내용을...
정효봉
엄마의 힘 2023.11.27 (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거리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 외국어로 채워진 상가 외벽의 간판을 보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 인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메뷰(Jamais Vu), 즉 미시감(未視感) 현상을 말하는 걸까?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지 못하는 나는 공기 중에...
권은경
오로라 마주하기 2023.11.27 (월)
서막이 열리기 전 객석은 이미 만석반전 매력이 없는 공연은 싫다면서무대의 천정 끝에서 *스윙이 나타났다*오프닝 코러스로 별 똥이 지나간 뒤객석은 발아 되어 변주로 출렁이며수많은 빗살 무늬로 줄을 타는 아리아극한의 무대 위에 광량은 클라이 막스2막 3장 푸른 빛을 되감는 필름처럼오, 그대 다시 보고파 불러본다 *커튼 콜*스윙(Swing)-모든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역으로 주 배우의 이동 시 역할을 맡는 배우*오프닝 코러스(Opening Chorus)-서곡이...
이상목
가을날 2023.11.20 (월)
하늘빛 깊어져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심연에 묻힌 것들이명치끝에서 치오른다단풍빛 눈빛이며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말씨 곱던 그녀랑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다시 만난다면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나무 빛깔에 스며들며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임현숙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