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6-11-25 14:0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딸아이의 넓은 뒷 뜰에는 민들레가 많았다.
작년 여름에 31도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그리도 땀흘리며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내려
애썼던 민들레가 이제는 시월의 쌀쌀한 바람에 한풀 꺾인 자세로 노오랗던 꽃 하나 없이
파란 잔디들 사이에 촘촘히 숨어 있었다. 비 온 뒤끝이라 땅이 부드러워 쏙쏙 캐내기가
수월했다. 약 한번 한적없으니 완전한 올개닉 식품이다. 하도 많아서 네 다섯시간 동안
캐낸것이 큰 함지박에 꾹꾹 눌러 담아도 자꾸만 밖으로 떨어졌다.
하나 하나 캐낼때 죽은 잎들과 잔 뿌리와 흙을 털어 깨끗하게 다듬어서 다시 손볼 일이
없었다. 살랑 살랑 부는 가을 바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잔디밭에 덜퍽 앉아 뽑아낼때
마다 은근히 나는 향긋한 민들레와 흙 냄새를 맡으며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들로 밭으로 헤집고 다니며 나물캐기를 좋아했던 나는 또래중에서 으뜸가는 나물꾼이었다.
쓴 맛을 없애기위해 몇번이나 꼼꼼하게 씻고 헹구어 옅은 소금물에 푹 잠기도록 무거운
돌로 눌러 놓았는데 이튿날 작은 뿌리 하나를 맛보니 쓴 맛이 그대로였다. 누르스름하게
우러났던 물을 버리고 다시 정갈하게 씻어 소금물에 사흘동안 잠궈두니 쓴 맛이 거의 가셨다.
민들레는 고들빼기의 사촌이라서 내 어머니가 담그신 고들빼기 김치를 연신 생각해내며
파, 마늘, 생강, 꿀과 설탕, 통깨와 밤, 멸치젓 그리고 찹쌀풀을 준비 하였다.
" 쪽파를 고들빼기 양 만큼 넣어야혀. 꿀 넣지 말고 조청을 넣고 깨는 금방 볶은것을 넣어야
제맛이 나는거여. 글고 젓은 푹삭힌 황새기젓을 푹푹 달여  많이 넣어야제. 고들빼기가 뭔
맛이 있다냐? 다 양념 맛이제." 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귓가에 쟁쟁했다.
쪽파와 황새기젓(조기새끼젓), 조청은 여기에서 구할 수 없었다. 커다란 밤 다섯개를 껍질
벗겨 허옇게 고운채를 썰어넣고 고춧가루를 위시한 모든 양념을 쏟아부은 후 정성스럽게
뻘건 고무장갑 낀 손으로 버무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번 맛본 민들레가 소태 맛이었다.
놀라서 살펴보니 설탕대신 소금을 넣은 것이었다. 칸칸이 붙어있는 양념통 앞에 븥여진 이름들
즉 sugar 와 salt를 언뜻 s 자만 보고 혼돈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글로 써 놓을 것이지.'
하고 불평을하다 생각하니 설탕과 소금도 ㅅ자가 공통이라 혼돈하기 쉬운건 마찬가지여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도 녹지않은 덩어리 진 하얀 소금을 수저로 떠내며 이제 이 김치는
다 틀렸다고 구시렁거리며 찬물을 부어 덜 짜게 하려고 애를 썼다. 몇번이나 맛을 보면서
자료가 달라도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고들빼기 맛과 비슷하기를 소망하면서 열심히 주무르며
뒤섞었다. 꾹꾹 눌러 담은 김치가 커다란 김치통에 가득차자 빨간 빛깔과 함께 속에 들어있는
김치가 울긋 불긋한 모습을 보이며 맛갈스럽게 시야에 들어왔다.
저녁 밥상에 차려진 민들레 김치를 딸이 먹기전에 " 야야, 내가 설탕대신 소금을 넣어 엄청 짜다."
라고 하니 한번 먹어본 딸이 "약간 짜네요. 그래도 파하고 같이 먹으니 맛있어요." 라고 격려해
주었다. 다행히 많이 넣은 파는 소금기가 없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담근 고들빼기 사촌 민들레 김치는 그런대로 딸아이와 나에게는 유별나게
새로운 반찬이었다. 다른 식구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품목이기도 했다. 며칠 후 프랑스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인 젊은 커플에게 이 김치를 나누어 주었더니 맛있었다고 하면서 자료가 무엇인지
물어서 '댄디라이온스'라고 했더니 아주 놀라워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내년에는 몸에 좋다는  민들레 김치를 잘 담글 수 있을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벌거숭이 산 2023.12.04 (월)
캐나다 로키에는 세 자매 봉이 다정하게 솟아있습니다. 요정이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산입니다. 세 자매 봉에는 일 년 내내 하얀 눈이 덮여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세 자매 봉 꼭대기에는 더 이상 눈이 없습니다. 이제 세 자매 봉은 덩그러니 벌거벗은 바위산이 되어버렸습니다.“아이 추워! 언니들!”막내는 포근하던 눈옷이 벗겨지자 추웠습니다. 두꺼운 눈옷을 입고 있을 때는 춥지 않았습니다. 눈 속은 참 따뜻하고...
이정순
솔방울의 추억 2023.12.04 (월)
카톨릭을 국교로 하는 캐나다의 가장 큰 국경일은 당연히 크리스마스이다.다민족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에 따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 크리스마스보다만민의 신과 같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더스데이가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국민들이 기리는날이기는 하다.한 해를 마무리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국경일이라 크리스마스 트리 등 많은 조명,장식과 선물, 음식, 종교적 문화가 발전되어 온 글로벌 축일이다.솔방울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은세
자화상 2023.12.04 (월)
1 비춰보면스스로만 늘 추해 보이는모습이 있었다흰 여백으로 가득 찬언덕 위생명과 목숨이라는 두 인간이겹치듯 어른거렸고시작도 끝도 없는 기호들이표면에 기재되었다가물가물 아지랑이로피어나고 있었다 2 허기진 배물 채우듯냄새도 색깔도 없었다스스로에 대한 경고나결심 따위는 팽개치고오로지 자신에게만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는 그곳늘노릿한 바나나 향이 배어 있어서두통약을 찾다가결국 엉뚱한 소화제를 찾기도...
하태린
숨죽이고 2023.11.27 (월)
비는 내리고까맣게 어두움이 몰려왔을 때에도 나는불을 캐지 않으리창구멍 어디에도 머리카락 한 올을 보이지 않으리숨소리도 죽이고나는 꼭꼭 숨으리 그가 애타게 나를 찾고 찾아도그래도 나는 미동도 않으리 어느 날 그가 말하면몰랐다고 말하리정말 몰랐다고 말하리 당신도 애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리더 탈 것 없어 하얗게 재가 되게 그냥 두리눈 헐기며 앙탈도 하리 세월의 옷자락이 너풀거릴 때그때에야 말하리한없이...
강숙려
빨리빨리, 천천히 2023.11.27 (월)
   자동판매기 버튼을 눌렀다. 캔 음료가 나오기 전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여 음료수가 나오는 통로로 손을 내밀었다. 조금 기다리니 덜컹하며 내 손에 잡힌 음료가 갈증을 풀어주었다. 자동판매기 앞에서 난 매번 필요 없는 동작을 한다. 커피 자동판매기에서도 버튼을 누른 후 커피가 다 채워지기 전에 손을 먼저 넣어 뜨거운 커피가 손 등에 흘러 데인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습관은 공공기관 서비스 안내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안내 내용을...
정효봉
엄마의 힘 2023.11.27 (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거리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 외국어로 채워진 상가 외벽의 간판을 보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 인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메뷰(Jamais Vu), 즉 미시감(未視感) 현상을 말하는 걸까?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지 못하는 나는 공기 중에...
권은경
오로라 마주하기 2023.11.27 (월)
서막이 열리기 전 객석은 이미 만석반전 매력이 없는 공연은 싫다면서무대의 천정 끝에서 *스윙이 나타났다*오프닝 코러스로 별 똥이 지나간 뒤객석은 발아 되어 변주로 출렁이며수많은 빗살 무늬로 줄을 타는 아리아극한의 무대 위에 광량은 클라이 막스2막 3장 푸른 빛을 되감는 필름처럼오, 그대 다시 보고파 불러본다 *커튼 콜*스윙(Swing)-모든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역으로 주 배우의 이동 시 역할을 맡는 배우*오프닝 코러스(Opening Chorus)-서곡이...
이상목
가을날 2023.11.20 (월)
하늘빛 깊어져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심연에 묻힌 것들이명치끝에서 치오른다단풍빛 눈빛이며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말씨 곱던 그녀랑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다시 만난다면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나무 빛깔에 스며들며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임현숙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