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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꽃 가슴에 달고....

김춘희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11-12 11:43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올 해 도 어김없이 양귀비꽃과 함께 11월은 찾아왔다. 나는 어느 해 부터인가 11월이 오면 그 꽃잎을 사서 가슴에 달고 다닌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꽃잎을 달면 누군가로부터 너도 달았구나! 너도 뭔가 위령의 뜻을 알고 있구나! 하는 말을 들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달고 다닌다.

10월 마지막 날 잡귀들이 판치는 할로윈이 끝나면 다음 날부터 양귀비꽃이 제 철을 맞는다. 11월은 가톨릭교회에서는 위령의 달이라고 한다. 11월 첫째 날은 모든 성인의 날로 큰 축제를 지낸다. 내가 1964년부터 약 5년간 빠리에서 유학 생활을 했을 때는 11월 1일을 뚜쌩(Tous Saints) 공휴일로 큰 축제일로 지냈었다. 지금도 뚜쌩을 크게 지내는지는 모르겠다. 원래의 뜻은 지상에서 순교로 신앙을 지킨 후 사후에 천국에서 하느님 곁에서 영광스럽게 사는 모든 성인들의 날이라는 뜻이다. 이날은 지상에 사는 우리들은 그들의 영광스러운 삶을 기리며 또한 우리들을 보살펴 주시라는 뜻에서 모든 성인의 날은 기쁘고 즐거워야하는 큰 축일이다. 다음 날 2일은 성인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착하게 잘 살았던 영혼들과 또는 조금은 잘 살지 못하여 아직도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날로 전통적으로 묘지 방문을 하여 기도 하는 위령의 날이다. 그래서 11월은 한 달 내내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며 기도 하는 위령의 달로 정하고 한 달 동안 죽은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한다.
그리고 11일은 캐나다 현충일이다. 1차, 2차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 등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사가 여기저기에서 행해진다. 그리고 해마다 11월이 되면 빨간 양귀비꽃을 판다. 캐나다 재향 군인회의 활동이다. 빨간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고 다니며 나라를 위하여 아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꽃잎처럼 사라져 간 젊은 군인들의 영을 기린다.

그러나 내가 더욱 그 꽃잎을 사는 이유는 나 스스로 어떤 위로라도 되는 것 같아서 사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는 속속들이 군인이었던 사람이다. 그가 마치 바이블처럼 지니고 읽기 좋아했던 책도 ‘지휘관’ 이라는 일본어 책으로 그 책안에 군인의 정신과 철학이 다 들어 있다고 늘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 살 때 어지간히 복이 없었다. 복이라! 세상이 말하는 복이다. 1934년 만주 하르빈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유치원은 러시아 계,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일본학교, 해방 후에는 평양 제1고보를 다녔다. 그가 아직 평고에 다니던 1950년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전쟁터로 끌려 나가 인민군이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들은 강제 징집된 후 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험악하기로 유명했던 낙동강 전선 근방에 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유엔군에 포로가 되어 마산 포로수용소에서 꽃다운 3년을 보냈다.

그 후 고 이승만 대통령의 포로 석방 덕에 풀려 나왔으나 갈 곳이 없어 이번에는 대한민국 군에 자진 입대하여 인민군에서 국군이 되었다. 휴전 협정이 성립 된 후 꼭 20일 후에 국군이 된 것이다. 국군이 된 후 공병에서 23년간의 청춘을 다 보내고 살았다. 결혼 하여 아이가 생기면서 무슨 바람인지 캐나다로 이민을 단행하고 나왔다. 전쟁으로 찌들고 가난했던 조국을 등지고서...

1974년에 퀘백으로 이민 가서 정확히 36년을 살다가 지병으로 겨우 72세를 살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그는 23년간의 군 연금을 4년치만 받고 떠났다. 당시의 연금의 액수가 지금과 같은 큰 액수로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중령으로 제대를 했으니 한국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적어도 캐나다 정부 연봉보다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는 회사원으로 그럭저럭 살았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지인들은 유가족도 육이오 참전 용사의 배우자 혜택을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참전 용사 유가족 혜택 신청을 하라는 권유에 따라 신청했으나 그가 휴전 협정 후에 군에 들어 간 것이 걸렸다. 엄격히 말해 20일이 모자라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억울하면 변호사를 사서 법적으로 한번 싸워서 해 보란다.

나는 포기했다. 그 사람의 복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정부 혜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이로닉컬 하게 그는 지금 몬트리올에 캐나다 군인 묘지에 안치 되어 있다. 캐나다 재향군인 묘지를 한국 재향 군인회에서 분양할 때 사놓았던 것이다. 그 묘지는 캐나다 국군묘지로 고속도로에도 헤리테이지 사이트(Heritage site)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에게 어울리는 것은 금전이 아니라 오로지 영광스러운 군인정신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빨간 양귀비꽃 하나 챙겨 가슴에 달고 나간다.
(2016년 Remembrance Day Po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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