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6-11-05 11:41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올해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게 단풍이 들었지만, 유난히 더 선명하고 깨끗하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런데 온갖 색채로 세상을 물들여 아름답게 만드는 단풍에도 자연에 순응하는 법칙이 숨어 있다고 한다.

  모든 생물체는 주변 환경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데, 온대 낙엽수림은 봄에 싹이 돋고,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변하며, 가을에는 그 잎이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낙엽이 지는 등 계절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각양각색으로 채색 된 가을의 낙엽수림은 한껏 매력 발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는 나무의 몸부림이라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안토사이안이 만들어 지는데, 그 과정에서 나뭇잎은 다양한 색으로 변하게 되고, 우리는 이것을 단풍이 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노란색, 갈색의 색소 성분이 양적으로 다르기 때문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가뭄이 길수록, 기온이 급강하 할수록, 일교차가 심할수록 단풍의 색은 선명하고 짙어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도 이젠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나의 겉모습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거울을 볼 때면,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더 선명하게 보기 시작한다. 새까맣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옆 머리를 시작으로 희게 물들어 가고 있고, 유난히 좁던 이마는 이제 훤칠한 정도를 넘어, 시원할 만큼 넓어지고 있다. 허리띠 구멍 수는 점점 늘어나고, 바지 길이는 짧아진다. 한 때는 중후함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좀 더 젊어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중얼거리게 된다.

  생각하는 내용도, 방법도 달라졌다.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발이 먼저 앞서던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일까?” 머뭇거리게 된다. 꿈과 비전을 위해서라면 앞 뒤 가리지 않고, 위험부담을 무릅쓰며 도전하던 내가, 이제는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면 여름나무라고 우기기에는 너무 지나친 욕심 아닐까 싶다.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태양 빛은 약해지고, 기온이 내려가게 된다. 낙엽수는 그 변화를 감지하고 앱시스산이라는 호르몬을 발산하는데, 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잎자루와 가지가 붙어 있는 부분에 떨켜라는 특별한 조직이 생겨나서 잎이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낙엽이 진다”고 말한다고 한다.
요즘, 고만고만했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가는 세월이라도 붙잡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결혼할 생각으로 들떠 있는 아이, 앞으로의 꿈을 찾아 고민하는 아이, 십대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막연한 자유를 그리워하는 아이, 부모보다 또래 친구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하는 아이… 마치 나무에 떨켜가 생겨서 나뭇잎이 가지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부모로부터 아이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렇게 되었는가?” 아쉬움이 앞선다. 어쩌면 떠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을의 스산함을, 아니, 다가올 겨울의 황량함을 미리 예감하기라도 하듯, 나는 떨어지는 낙엽과 어느새 하나가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가을에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 나무에게서 큰 이치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낙엽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낙엽수는 늦가을에 떨켜를 만들어 일제히 잎을 자발적으로 떨어뜨리는 반면, 밤나무나 떡갈나무는 떨켜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에 겨울이 되어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바싹 마를 때까지 가지에 붙어 있다가, 겨울의 강풍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종류이다. 난 떨켜를 만드는 나무이고 싶다.

  떨어질 낙엽 아쉬워 떨켜를 만들지 않는다 한들, 겨울에 불어오는 강풍조차 견딜 수 있을까? 어차피 말라서 떨어지는 것이 낙엽의 운명인 것을… 멀어져 가는 것들 아쉬워 움켜잡으려고 한들, 제 발로 걸어나가는 것 조차 막을 수 있을까? 그것이 조물주의 섭리인 것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담쟁이 덩굴도 잎에 떨켜를 만들지 않는 식물이라는데, 결국에는 다 떨어져버리지 않았던가!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는 결국 떨켜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환경에 반응하면서, 떨어지는 낙엽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며, 여름 내내 수고한 열매가 무르익을 수 있도록 필요 없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 한층 더 성숙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국 가을 단풍은 다가올 “봄”을 위한 "수고"와 "희생"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었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가을이기 보다는, 내년의 봄, 다음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읊조려 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2-1926.12)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실존주의 시인으로, 20세기 최고의 독일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