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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6-10-22 11:35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처음 밴쿠버에서 살다가 앨버타 북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이곳의 추위였습니다. 마른 체형에 항상 손발이 차서 마이너스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아직 10월 중순밖에 안됐는데 오늘도 하늘에선 부지런한 선녀님들이 하얀 눈꽃송이를 펑펑 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뒷마당에 차곡차곡 쌓이는 눈을 보면서도 여유 있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답니다. 내겐 아무리 혹독한 겨울왕국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영장 회원권이 있기 때문이지요. 수영을 잘 하냐고요? 아니요. 물에서 뜨지도 못하는데 무슨 수영을 하겠습니까? 수영장 회원권을 산 건 단지 그 안에 있는 작은 스팀룸에서 사우나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몸이 아파서 작년 겨울에 처음 가봤다가 이젠 우리 삶의 큰 즐거움이 된 곳입니다. 남편과 같이 스팀룸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추위로 움츠러든 몸을 데우다 보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그런지 몸이 얼마나 가볍고 따뜻해지는지, 이젠 겨울이 와도 전혀 무섭지가 않답니다.

     몸에 열이 많아선지 여기 캐나다인들은 스팀룸을 별로 애용하지 않더라고요. 들어와도 잠깐 있다 나가는 게 전부라서 아주 한가롭게 누웠다 앉았다 하며 내 전용인양 이용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가끔씩 남자들이 떼로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마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간 그 떼로 몰려온 남자들과 스팀룸에 함께 앉아 사우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스팀에 쪄지는 새우처럼 몸이 점점 벌게지는데도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누구 하나 먼저 일어나 나가려 하질 않았습니다. 저러다 죽겠는데~ 걱정스런 마음을 뒤로 하고 일어나 나오는데 남편이 뒤 따라 나오며, “그래~. 내가 졌다.”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뭔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남편은, “지금 쟤네들 누가 오래 버티나 경쟁하는 중이거든.” 남편 말에 웃음이 터진 난,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원래 수컷들은 한방에다가 모아 놓으면 서열정리를 하게 돼 있거든. 그냥 본능이야. 내가 포기했으니까 이제 곧 따라 나올 거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갛게 익은 남자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걸 보면서 왜 저런 쓸데없는 것에 경쟁심을 불태우나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때 웃을 때만 해도 내게도 그런 바보스런 경쟁심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얼마 전에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목이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목과 어깨 근육이 나쁜 줄은 알았는데 결국은 빨강신호등이 들어왔지요. 이대로 두면 근육이 점점 위축돼 돌처럼 굳어지겠다 싶어 저번 주엔 처음으로 요가 강습이란 걸 받으러 갔습니다. 목이 아프다, 무릎이 안 좋다는 등 소소한 불편함을 지닌 다섯 명의 여자들이 둥그렇게 앉았습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강사가 그러더군요. 이건 경쟁이 아니니 절대 안 되는 자세를 억지로 따라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그런데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억지로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곁눈질로 흘끗흘끗 옆 여자들을 체크해가며 저들이 하면 나도 한다는 불굴의 의지로 절대 밀리지 않는 한국 아줌마의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안 좋은 목을 열심히 돌려가며 한참을 따라했으니 결국 목에 무리가 가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게도 이런 바보스런 경쟁심이 있다는 걸. 남보다 잘해야 하고 최소한 남보다 못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경쟁의식이 그냥 본능처럼 내 속에 프로그램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삶을 경쟁이라고 가르쳤을까? 난 왜 그 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내 속에 새기고 살았지? 근육 좀 풀어보자고 시작한 요가인데 이러다간 이 미련한 경쟁심에 끝내는 경추디스크에 걸리고 말겠다 싶었습니다.

       이처럼 경쟁의식은 삶에 득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을 앞질러 가야한다는 생존경쟁의 강박관념이 삶의 많은 부분에 침투해 우리에게 이런 무의미한 도토리 키 재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가강습이 끝나갈 즈음에 편안한 숨을 뱉어내며 강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It is not competition. Go your own way. Do your own practice...to make a better world!” 갑자기 이 말이 요가뿐만 아니라 삶에도 똑 같이 적용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길을 가면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합니다. 그 일들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면 아주 잘 사는 게 아니었을까요? 지금까지 삶을 경쟁이라 믿고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내 속에 새겨진 그 경쟁심을 하나하나 찾아내 지워가며 살고 싶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도토리로 생을 마감할 순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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