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내가 살던 집 뒷마당엔 두 그루의 포도나무가 울타리를 타고 한가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화사한 여름 햇살에 알알이 영글어가는 포도송이를 지켜보노라면 청포도와 함께 스쳐버린 사연들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애국시인이자 독립투사인 이육사의 대표작이며 국민의 애송시였던 청포도의 첫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시는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과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방 땅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고향에 대해 그리움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청포도 사랑의 영화도 생각이 난다.
앙숙이었던 큰 회사의 사장 아들과 이웃에 사는 연탄장수 딸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양가의 관계를 화해시키고 결혼함으로써 연탄장수의 평생소원이었던 연탄공장을 차리게 된 장면들이 오르기도 한다.
1950년대 동족 상쟁이 던져준 피난살이의 애환을 담은 가요들이 한창인 무렵 당시 대구극장 노래경연대회를 통해 데뷔한 대형가수 도미 씨의 최고 히트곡인 “청포도 사랑”이란 노래가 있었다.
나의 스쳐버린 사연 중에는 청포도 사랑에 애태우던 친구 정식(正植)이에 대한 추억이 지금도 자리하고 있다. 전란의 와중에서 어렵사리 학업을 이어가느라 나보다 세 살이나 위인 정식은 중학
시절을 나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노래선수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수들의 흉내를 내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졸업과 함께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고, 세월이 한참 흘러간 어느 여름방학 내가 고향에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정식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30리가 넘는 길을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사연인즉 얼마 후에 있을 지방 노래자랑 출연을 위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준비한 곡이 바로 도미가 부른 “청포도 사랑” 이었다.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서…) 참으로 그는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타고난 목소리의소유자이면서도 박자에 다소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열심히 연습에 임했고, 노래자랑에서 나의 기타 반주와 함께 그는 마침내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더욱더 큰 소득은 이일로 인하여 정식이가 그렇게도 애 태워 하던 아름다운 처녀에게 장가를 들게 되었다.
청포도에 대한 추억은 이곳 이민의 삶에서도 계속되어왔다. 서두에서 언급한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포도나무는 나와 친분이 있는 한 친구가집을 팔고 이사하면서 건네준 우정이 담겨있는 선물이었다.
옮겨 심은 첫해에는 나무가 몸살을 하느라 수확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다음해는 몇 송이의 포도를 바라만 보는 즐거움으로 끝을 내고 말았다. 청포도는 수확의 시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포도 알들이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그만 추수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삼년이 지난 그 해 여름무터 정신을 차리고 가끔씩 포도 알이 영글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드디어 잘 익은 가장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나무의본래 주인에게 건네주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성경에서도 포도에 얽힌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게 됨을 본다.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남겨놓은 열매들로, 어떤 때는 번영과 평화와, 그리고 선택된 백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 생각한 말씀은 *요한복음* 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말씀에 담겨있는 교훈을 보면 믿음의 상징인 포도열매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루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다시 말해서 우리와 절대자와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교훈이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도 조화 있게 적용되기를 소원해 본다. 한동안 잊어왔던 나와 정식이와의 우정이 지속될 때 그 속에 담겨있는 기쁨의 추억을 공유 할 수가 있었으며, 친구가 준 포도나무의 우정 속에서 포도가 익어가는 이 계절에 소담한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관계의 소득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오한복음 15:5)>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애국시인이자 독립투사인 이육사의 대표작이며 국민의 애송시였던 청포도의 첫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시는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과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방 땅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고향에 대해 그리움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청포도 사랑의 영화도 생각이 난다.
앙숙이었던 큰 회사의 사장 아들과 이웃에 사는 연탄장수 딸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양가의 관계를 화해시키고 결혼함으로써 연탄장수의 평생소원이었던 연탄공장을 차리게 된 장면들이 오르기도 한다.
1950년대 동족 상쟁이 던져준 피난살이의 애환을 담은 가요들이 한창인 무렵 당시 대구극장 노래경연대회를 통해 데뷔한 대형가수 도미 씨의 최고 히트곡인 “청포도 사랑”이란 노래가 있었다.
나의 스쳐버린 사연 중에는 청포도 사랑에 애태우던 친구 정식(正植)이에 대한 추억이 지금도 자리하고 있다. 전란의 와중에서 어렵사리 학업을 이어가느라 나보다 세 살이나 위인 정식은 중학
시절을 나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노래선수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수들의 흉내를 내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졸업과 함께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고, 세월이 한참 흘러간 어느 여름방학 내가 고향에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정식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30리가 넘는 길을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사연인즉 얼마 후에 있을 지방 노래자랑 출연을 위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준비한 곡이 바로 도미가 부른 “청포도 사랑” 이었다.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서…) 참으로 그는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타고난 목소리의소유자이면서도 박자에 다소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열심히 연습에 임했고, 노래자랑에서 나의 기타 반주와 함께 그는 마침내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더욱더 큰 소득은 이일로 인하여 정식이가 그렇게도 애 태워 하던 아름다운 처녀에게 장가를 들게 되었다.
청포도에 대한 추억은 이곳 이민의 삶에서도 계속되어왔다. 서두에서 언급한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포도나무는 나와 친분이 있는 한 친구가집을 팔고 이사하면서 건네준 우정이 담겨있는 선물이었다.
옮겨 심은 첫해에는 나무가 몸살을 하느라 수확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다음해는 몇 송이의 포도를 바라만 보는 즐거움으로 끝을 내고 말았다. 청포도는 수확의 시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포도 알들이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그만 추수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삼년이 지난 그 해 여름무터 정신을 차리고 가끔씩 포도 알이 영글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드디어 잘 익은 가장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나무의본래 주인에게 건네주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성경에서도 포도에 얽힌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게 됨을 본다.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남겨놓은 열매들로, 어떤 때는 번영과 평화와, 그리고 선택된 백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 생각한 말씀은 *요한복음* 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말씀에 담겨있는 교훈을 보면 믿음의 상징인 포도열매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루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다시 말해서 우리와 절대자와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교훈이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도 조화 있게 적용되기를 소원해 본다. 한동안 잊어왔던 나와 정식이와의 우정이 지속될 때 그 속에 담겨있는 기쁨의 추억을 공유 할 수가 있었으며, 친구가 준 포도나무의 우정 속에서 포도가 익어가는 이 계절에 소담한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관계의 소득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오한복음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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