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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이-각자내기

임인재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7-01 09:05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1952년 봄 어느 날 미 육군 포병학교에 유학중이던 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동료 미군 장교의 안내로 학교 근처 시내 음식점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위관 급 장교인 우리 다섯 사람은 한 중국음식점에서 면 종류 음식을 각자 한 가지씩 시켰다. 미국에서 시내 음식점에 처음 들어간 나는 음식을 먹으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음식 값을 어떻게 계산하지’ 그런데 식사가 끝나니 웨이트리스는 거침없이 첵(check)이라고 하는 전표를 각개인 별로 한 장 씩 끊어서 우리 에게 나누어준다. 그 시대의 우리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음식 값과 팁을 각자 지불하고 식당을 나오는데 나의 마음은 가뿐했다. 서로 부담 없이 이렇게 기분 상쾌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하고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더치페이(Dutch pay)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치페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각자 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1975년 나는 대령의 신분으로 미 육군 통신정비창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기 위한 방문을 하게 되었다. 부대에 도착하여 현역대령인 지휘관(창장)을 간략히 예방하고 두 명의 수행원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창장에게서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구내식당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같이하였고 식대는 각자 지불하였다. 우리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들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나는 예기치 않은 환대를 받은 것이 참으로 고맙고 흐뭇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좀 더 특이한 더치페이를 경험했다. 미 육군 유도무기 정비창에서 업무 협의를 마치고 나니 그 쪽에서 저녁 회식을 하자고 제의해왔다. 저녁 식대는 각자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경험한 일, 그저 고맙구나 생각하며 수락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십여 명의 인원이 우리 측 다섯 사람을 반갑게 영접했다. 먼저 간단한 칵테일을 그쪽에서 제공하였고 이어서 식사는 각자 부담으로 제공되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쪽 대표가 나와서 환영사를 하며 우리를 환영했다. 이어서 나는 예상하고 준비했던 답사로 응답했고 많은 환영을 받았다. 참으로 흐뭇한 밤이었다.

이 같이 식사 모임에서의 각자 내기는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서방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실행되고 있는 관행이다. 그러나 정이 많고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서로서는 각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한 턱 내지“ 하며 한 사람이 전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들 사이에서 ”각자내기“를 자연스럽데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밴쿠버 교민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형태의 각자내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 편의성과 실용성으로 더욱 널리 활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치페이(Dutch pay)라는 용어는 영어의 어법에 맞지 않는 한국식 영어로 이른바 콩글리시라고 하여 정식 외래어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립 국어원에서는 더치페이 대신 ‘각자내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많은 콩글리시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표준어가 된 아파트, 핸드폰으로부터 외국 사람이 들으면 황당해할 파이팅, 아이쇼핑, 스킨십까지 수많은 콩글리시가 이미 국어사전에 등재되어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복잡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영어를 아주 짧고 간편하게 만들어내는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싱글리시(싱가포르 식 영어)와 콩글리시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다소 비하하는 뜻으로 쓰였으나 이제는 외국인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방언 정도로 받아드리는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편리함과 편안함을 주는 더치페이 또는 각자내기 앞으로 더 많이 애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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