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밴쿠버의 4월, 정말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계절이다. 시내 곳곳을 다녀봐도 정원과 같은 꽃길이 수없이 널려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내가 와서 살게 된 것은 운명인지 필연인지 잘 몰라도 나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5년 전 지금과 같은 봄날, 우리 가족은 유학생인 나를 따라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당시 나는 처음 본 꽃길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무척 황홀했었다. 밴쿠버 서쪽 끝 UBC 내에 있는 Regent College를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운 꽃길이다. 바닷가 옆길을 따라 펼쳐진 길과 49번 도로의 꽃들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 살면서 나는 이 모든 것 들을 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처음에는 영어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영어로 강의 듣기는 물론 책을 읽고 Report룰 써야 했으며 토론에 참석해서 무슨 말이든 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내 머릿속에 가득하였다. 심지어 입학 때 학장의 식사 초대를 알아듣지 못하여 그의 저녁 초대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즐거운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꽃길을 보아도 별로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5년여 동안 목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교회가 잘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늘 마음은 무겁고 생활의 어려움에 힘들었다. 물론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와 꽃은 또 피고 지고하였어도 나는 무덤덤하게 지내왔다.
그후 나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처음에는 커피 가게를 하였다. 다음으로 찿은 일은 택배 일이었다. 택배 일은 하루 종일 시내를 소형차로 운전하며 물건을 픽업하고 전달하는 일인데 정신없이 뛰어다니듯 하여야 수입이 생기는 일이라 계절의 변화를 볼 겨를조차 없었다.
다음으로 내가 찾은 일은 대형트럭 운전이다. 이 일은 트럭을 몰고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다니는 일이였다. 우리말에 있는 역마살이 내게 있는지는 몰라도 지난 15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구석 구석 돌아 다녔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 밴쿠버를 멀리하고 나는 미국의 노스캐롤나이나는 물론 택사스, 마이애미, 캘리포니아, 그리고 동쪽 끝 메인 주까지 다녔으며 캐나다는 대륙 횡단을 수없이 다녔다. 즉 북미주 넓은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그리고 24시간을 넘나들며 운전을 하는 동안 이제 내 나이가 노년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지난 겨울의 트럭을 세우고 이 밴쿠버에 봄이 오는것을 하루 하루 지켜보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내온 밴쿠버의 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온갖 꽃길이 동네마다 있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듯 푸르른 새순 들이 나무마다 솟아오르는 밴쿠버의 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한 폭의 파노라마 그 자체이다. 특히 꽃피는 4월, 북쪽 높은 산에는 흰눈이 덮혀있고, 서쪽은 푸르른 태평양 바다가 있으며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듯한 봄바람에 온갖 나무에서 꽃비가 내리는듯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그리고 장관 중의 장관은 스탠리 파크에 피어난 벚꽃이다. 화창한 봄날 이곳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밴쿠버에서 살면서 느끼는 큰 보람과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수없이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다녀봤어도 그 어느 곳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밴쿠버의 봄을 무엇과도 비유할 수 없어 그냥 예찬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 오고 싶어하는 캐나다, 특히 밴쿠버를 천당 밑 999당이라 말하는 곳에 사는 나는 운이 좋은가 보다. 그러나 태평양 밑 연어 마냥 내가 태어난 고국을 못잊어 문득 문득 가슴 저리게 그립고 가고 싶은 것은 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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