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잠을 자다 딸의 잠꼬대에 눈을 떴다. 너무 더운지 딸은 몸부림을 치더니 할머니 품으로 기어든 후에야 다시 잠이 든다. 난 모로 누워 잠정신에도 딸을 끌어다 토닥이며 자는 엄마와 그 옆에 누운 두 딸들을 바라본다. 딸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순환되는 여자 삼대가 그렇게 누워있는 상황이 새삼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엄마는 새근거리는 딸들에 비해 숨소리마저 탁하다. 가까이 보니 엄마의 얼굴빛은 불그레한 딸들과 비교해 칙칙한 저녁 빛이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들의 관계 속에서 난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불현 듯 사십대라는 내 나이가 딸과 엄마라는 아직 끝마치지 못한 두 개의 과업을 해결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 딸들에게 난 어떤 모습의 엄마로 보이고 있을까? 언니와 나에게 비친 엄마의 삶은 또 어떤 모습이었던가? 굳이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엄마 얼굴을 빈틈없이 메운 주름살을 보면 금방 떠오른다. 엄마 세대라면 누구나 공통분모로 가졌을 가난을 제외하고도 엄마는 평생을 아버지의 얼굴빛에 가슴을 졸이며 살았다. 손을 치켜든 아버지 밑에서 맞는 모습으로, 가난과 자식들을 십자가마냥 지고 가는 모습으로. 이것이 한쪽 구석으로 몰려 웅크리고 울던 내 눈에 각인된 영상이다. 언니와 내가 엄마를 한 여자로 인식하게 되었을 즈음, 우린 그렇게 참고 사는 엄마에게 분통을 터트리며 헤어지지 왜 그러고 사느냐는 차마 못할 소리를 했었다. 그때 엄마는 나도 헤어지려고 너희를 업고 하루를 걸어 친정까지 갔었는데, 친정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너희들 까만 눈을 바라보자니 차마 나 살겠다고 못 가겠더라. 그래서 그 밤길을 걸어 다시 되돌아왔다고. 우리의 까만 눈이 족쇄가 되어 평생을 참고 살았다는 엄마의 말이 그땐 변명처럼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두 딸의 엄마인 지금, 내 딸들의 까만 눈이 내 삶의 족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난 내 결혼이 철저히 엄마에 대한 부정으로 출발하였음을 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살았다. 나의 희생으로 지탱되는 위태로운 가정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의 일, 배움, 꿈을 지키며 살았다. 이 모두를 지키면서도 남편과 두 딸들에게 큰 불평 듣지 않고 사는 내 삶은 분명 엄마와는 다른 삶이었다. 엄마보다 좀 더 완벽한 나의 삶, 이렇게 사는 나를 보며 가끔 엄마는 네가 사는 걸 보면 내 한이 다 풀린다는 말을 한숨처럼 토해 내셨다. 그럴 때마다 난 큰 효도라도 하는 듯해 우쭐해졌고, 아내, 엄마, 일하는 여자, 공부하는 여자라는 내 타이틀에 크게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맞벌이 부부로 사느라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겨 키우던 시절, 집에 놀러 온 엄마 친구 분이, “빨리 늙으려고 손주를 봐? 손주 키워주는 일은 공도 없는 거야. 오죽하면 할머니들 사이에 다른 일 다 해도 손주 봐주는 일만은 하지 말란 말이 있잖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러고 살아?” 손녀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쏟아 놓는 소리였다. 그 분의 말에 엄마는, “그래. 애들을 키우다 보면 늙기야 늙지. 어쨌든 내가 늙든지 우리 딸이 늙든지 둘 중에 하나는 늙어야 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어차피 늙어가는 내가 늙는 게 더 낫지.” 난 그 말을 듣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 내 삶이 엄마 삶과 다르도록 만들어주는 밑바닥에는 또 다른 엄마의 희생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자가 결혼을 해 자식을 낳고 살다보면 자신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엄마는 잘 아셨던가 보다. 그래서 내 행복을 바라는 엄마는 대신 늙기로 결정하고 내가 해야 할 힘겨운 여자노릇을 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는 내 삶이 결국 엄마라는 보조기에 지탱한 기형적인 모습이었음을 난 가슴 아프게 느껴야 했다.
엄마와 내 딸들을 바라보는 지금도 난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내 존재가 매장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결혼과 육아의 긴 터널을 엄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하고 있으니, 분명 내 삶이 엄마보다는 나은 삶이 되리란 것이다. 그래서 딸들이 내 삶을 보았을 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삶은 아닐 거라고. 여하튼 난 내가 좋은 엄마가 되리라 믿는다. 바로 내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러나 아직까지는 난 ‘그냥 엄마’인 듯하다. 자식을 낳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엄마가 되어버린 그냥 엄마. 그러나 이젠 나도 엄마가 되어갈 것이다. 현재까지의 내 방식대로일지 아니면 엄마 방식을 끌어들일지 그건 모르지만 이젠 적어도 엄마 삶을 부정하지만은 않는다. 엄마의 희생이 바로 이렇게 웃으며 사는 삼대의 가정을 만든 열쇠이기에. 어쩌면 가족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인생은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엄마와 딸들의 얼굴을 보며 다짐한다. 내 하루가 엄마의 하루를 담보로 하고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 딸들에겐 좋은 엄마, 엄마에겐 좋은 딸이 되겠노라고. 이런 다짐을 새기며 난 오늘도 내 어머니의 늙음 위에서 ‘늙지 않는 여자’가 되어 살아간다.
내 딸들에게 난 어떤 모습의 엄마로 보이고 있을까? 언니와 나에게 비친 엄마의 삶은 또 어떤 모습이었던가? 굳이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엄마 얼굴을 빈틈없이 메운 주름살을 보면 금방 떠오른다. 엄마 세대라면 누구나 공통분모로 가졌을 가난을 제외하고도 엄마는 평생을 아버지의 얼굴빛에 가슴을 졸이며 살았다. 손을 치켜든 아버지 밑에서 맞는 모습으로, 가난과 자식들을 십자가마냥 지고 가는 모습으로. 이것이 한쪽 구석으로 몰려 웅크리고 울던 내 눈에 각인된 영상이다. 언니와 내가 엄마를 한 여자로 인식하게 되었을 즈음, 우린 그렇게 참고 사는 엄마에게 분통을 터트리며 헤어지지 왜 그러고 사느냐는 차마 못할 소리를 했었다. 그때 엄마는 나도 헤어지려고 너희를 업고 하루를 걸어 친정까지 갔었는데, 친정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너희들 까만 눈을 바라보자니 차마 나 살겠다고 못 가겠더라. 그래서 그 밤길을 걸어 다시 되돌아왔다고. 우리의 까만 눈이 족쇄가 되어 평생을 참고 살았다는 엄마의 말이 그땐 변명처럼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두 딸의 엄마인 지금, 내 딸들의 까만 눈이 내 삶의 족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난 내 결혼이 철저히 엄마에 대한 부정으로 출발하였음을 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살았다. 나의 희생으로 지탱되는 위태로운 가정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의 일, 배움, 꿈을 지키며 살았다. 이 모두를 지키면서도 남편과 두 딸들에게 큰 불평 듣지 않고 사는 내 삶은 분명 엄마와는 다른 삶이었다. 엄마보다 좀 더 완벽한 나의 삶, 이렇게 사는 나를 보며 가끔 엄마는 네가 사는 걸 보면 내 한이 다 풀린다는 말을 한숨처럼 토해 내셨다. 그럴 때마다 난 큰 효도라도 하는 듯해 우쭐해졌고, 아내, 엄마, 일하는 여자, 공부하는 여자라는 내 타이틀에 크게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맞벌이 부부로 사느라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겨 키우던 시절, 집에 놀러 온 엄마 친구 분이, “빨리 늙으려고 손주를 봐? 손주 키워주는 일은 공도 없는 거야. 오죽하면 할머니들 사이에 다른 일 다 해도 손주 봐주는 일만은 하지 말란 말이 있잖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러고 살아?” 손녀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쏟아 놓는 소리였다. 그 분의 말에 엄마는, “그래. 애들을 키우다 보면 늙기야 늙지. 어쨌든 내가 늙든지 우리 딸이 늙든지 둘 중에 하나는 늙어야 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어차피 늙어가는 내가 늙는 게 더 낫지.” 난 그 말을 듣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 내 삶이 엄마 삶과 다르도록 만들어주는 밑바닥에는 또 다른 엄마의 희생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자가 결혼을 해 자식을 낳고 살다보면 자신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엄마는 잘 아셨던가 보다. 그래서 내 행복을 바라는 엄마는 대신 늙기로 결정하고 내가 해야 할 힘겨운 여자노릇을 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는 내 삶이 결국 엄마라는 보조기에 지탱한 기형적인 모습이었음을 난 가슴 아프게 느껴야 했다.
엄마와 내 딸들을 바라보는 지금도 난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내 존재가 매장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결혼과 육아의 긴 터널을 엄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하고 있으니, 분명 내 삶이 엄마보다는 나은 삶이 되리란 것이다. 그래서 딸들이 내 삶을 보았을 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삶은 아닐 거라고. 여하튼 난 내가 좋은 엄마가 되리라 믿는다. 바로 내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러나 아직까지는 난 ‘그냥 엄마’인 듯하다. 자식을 낳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엄마가 되어버린 그냥 엄마. 그러나 이젠 나도 엄마가 되어갈 것이다. 현재까지의 내 방식대로일지 아니면 엄마 방식을 끌어들일지 그건 모르지만 이젠 적어도 엄마 삶을 부정하지만은 않는다. 엄마의 희생이 바로 이렇게 웃으며 사는 삼대의 가정을 만든 열쇠이기에. 어쩌면 가족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인생은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엄마와 딸들의 얼굴을 보며 다짐한다. 내 하루가 엄마의 하루를 담보로 하고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 딸들에겐 좋은 엄마, 엄마에겐 좋은 딸이 되겠노라고. 이런 다짐을 새기며 난 오늘도 내 어머니의 늙음 위에서 ‘늙지 않는 여자’가 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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