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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미어캣

박병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7-31 16:41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동화
   수많은 별들이 달빛과 함께 바다를 이루어 하늘이 땅에, 바다가 하늘에 떠 있는  밤이었습니다. 어려서 고향 칼라하리에서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 타고 처음 보았던 밤하늘에 비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밤의 사막, 뚝 떨어진 체온의 혈관에서 미세한 맥박의 고동소리가 이어 나오게 하기에는 충분한 별빛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곧추선 나의 콧등을 숨결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아마도 달과 별이 전하는 사막의 신화 이야기 일거야” 라고 쉽게 단정 지어 버렸지만 그렇게 애매한 이야기를 땅 위에 남겨두고 곧장 가족이 기다리는 땅속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가버린 바람의 말을 잡기 위해 다시 기다리는 시공간엔 아직도 어른들로 인해 나의 작은 뇌에 박혀 있는 의심증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원수와 친구를 구분할 줄 안다고 골 백 번을 말했어도 듣지도 않던 서부 아프리카의 고향 어른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양심을 전하는 상대의 눈을 보고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먼저 의심을 하고 누군가를 대할 필요가 없는데도 10퍼센트의 적들 때문에 나머지 90퍼센트의 친구들까지 의심부터 하고 보라는 가르침이 못마땅했습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살만한 세상을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일교차가 큰 사막에서 살만큼 산 어른들이 아직 삶의 지혜를 다 배우지 못한 나보다 더 모르고 있다는 것도 싫었습니다.

  나와 내 작은 집단을 위해 큰 세상을 힘들게 만들면 결국 나와 내 집단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어른들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깜깜한 사막의 땅에 바람을 기다리며 마치 나의 가느다란 두 다리, 등뼈 그리고 목뼈가 한 그루   대나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빨리 오지 않듯이 한 참을 기다려도 바람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한 나의 걱정은 없었지만 엄마가 나를 걱정할 것 같은 걱정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게 내 의지를 꺾고 있었습니다. 내가 겁이 없게 된 것은 원래부터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캐나다 유일의 사막지대인 이곳은 어쩌다 한 번씩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기류를 타고 왔다 금 새 사라지곤 하는 흰 머리에 노란 부리, 갈색 깃털의 독수리 외에는 무서운 녀석들도 없어서 밤에 긴 시간을 땅 밖에 나와 있어도 불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한 줄기 바람이 사막의 모래알들을 한 알 한 알 말끔하게 씻어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가버린다 해도 한 낮에 찾아오는 바람은 밤에 떠올려도 시원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엄마가 땅굴에서 나와 나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이어서 집으로 따라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나의 엄숙한 수직 자태를 보고,“이제 엄마와 교대하고 그만 돌아가서 자지 않겠니?”라는 신화를 전하는 바람소리 같이 희미한 말을 남기고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람아, 내가 와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 선조 자이언트 낙타가 캐나다에서 베링대교를 건너 시베리아로 갔다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막지대로 숨어들었다고?” 기다리다 지친 내가 먼저 북극성을 쳐다보고 혼자 외쳤습니다.

 곧 이어 잠시의 틈도 없이 생각은 바삐 돌아 어김없이 또, 고향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깊은 슬픔 뒤 송알송알 밀려드는 그리움에 취해 이대로 동장군이 되어 죽어간다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된다. 비극처럼 사라진 낙타의 고향에 그들을 대신해 들어온 너는 너희 미어캣의 역사를 새로 써가야 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언제 왔는지 바람이 내 뱉고 나서 또 다시 곧장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 캐나다 미어캣의 역사는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의심이 믿음으로 불안이 안심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게다가 내 고향에는 아직 여기보다 훨씬 많은 미어캣이 살아 있습니다. 의심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긴 하지만... 인간들이 사막에 신도시를 지어대지만 않는다면 침입자들이 칼라하리로 진출한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무모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 그곳은 희극과 비극의 교대가 필요 없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지도 모릅니다. 믿음만 다시 돌아 온다면… 캐나다에 낙타가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이방인의 사막에 살아남았지만 우리 미어캣은 고향에도 살아남고 새로운 땅에도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고향보다 부족한 모래 때문에 땅 속 깊이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면 겨울 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 우리의 털이 더 두꺼워질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막에서, 똑똑한 녀석들은 누구나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집을 짓습니다. 자신을 지상에 드러냈다가는 뜨거운 햇볕에 태워지거나, 모래바람에 묻혀버리거나, 사나운 짐승에 잡아 먹히거나, 몇 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홍수에 휩쓸려버리거나... 아무거나 하나에 걸려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구름위로 솟는 초고층 빌딩을 짓거나 우주선을 만들어 하늘 높이 올라 세상을 내려다본다 해도 인간들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막의 하찮은 지하도시도 찾아 낼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드러난 외모만을 보고 황량하다느니 살 곳이 못 된다느니 하며 함부로 내뱉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약한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이 전부 인줄로 착각하는지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서...

   온 밤을 허허벌판에 곧추서있던 나는 새벽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진 추위에 배가 시리고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전갈처럼 모래 속에 숨은 자세를 취해보고, 뱀처럼 몸을 꽈리처럼 꽈 체온을 보존하려고 해도 선천적으로 꼿꼿한 나는 구덩이에 들어가 귀와 눈만 밖으로 내놓는 방법 외에는 추위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어느덧 별들이 밝은 빛을 일어갈 즈음 아주 멀리서 사람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 오고 있다는 감이 든 순간 나는 내 의지와 따로 노는 미어캣 본능으로 인해 집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잡으러 와?” 세상모르고 사랑스런 두 동생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다 눈을 뜬 엄마가 서둘러 들어온 나의 태도에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아니 별것 아니야. 하지만 사람들이 전갈을 미끼삼아 긴 땅굴 낚시 대를 여기까지 집어넣을지 모르니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준비는 하고 있어야겠어요.” 라고 차분한 음성으로 엄마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미끼는 아무리 군침이 돌아도 절대 안 물면 되는데, 우리의 보금자리에 숨을 못 쉬게 하는 지독한 연기를 뿜어 넣으면 어쩌지.” 평소 걱정이 많은 엄마가 점점 초조해하며 아이들이 못 듣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든 후 사람의 소리에 깨어난 나는 엄마와 동생들은 더 밑의 피난처로 내려가게 한 후 살금살금 땅 위로 올라갔습니다. “내가 신기루를 보았을까? 분명 망을 보는 미어캣의 머리였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내가 보초를 서던 곳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잘못 들었겠지. 내가 모르는 동물의 소리도 있으니까. 전갈이나 방울뱀처럼” 자세히 들어보니 전갈이나 방울뱀을 찾으러 온 아직 어린 소녀의 목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타고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라고 확실히 들려오는 말뜻으로 보아 야생 동물과 친구가 되려고 온 인간소녀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우리 미어캣과 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기도 했습니다. “맞아. 아무리 영특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꼭두새벽도 되기 전에 여자 어린이를 미끼로 앞세워 우리를 잡으러 그들이 보기에는 이 볼품없는 사막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야.” 라고 금방 나의 경계심은 호기심이라는 의지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땅 밖은 훤하게 밝아진 아침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소녀의 말이 들려 왔습니다. “아니야, 미어캣이 여기 있을 수가 없어. 아프리카 사막에 있어야 할 애들이 왜 여기에 있겠어. 괜히 앞만 보고 내달리다 억센 잡목 잎에 상처만 입었지 않아. 아침 식사하러 나온 지네나 찾아보자.” 우리를 포기하고 다른 동물의 집으로 가버릴 것 같은 소녀인간의 말에 초조해진 내가 재빨리 고개를 추켜 올린 순간, 나는 두 손을 합장하듯 가슴에 모으고 꼬리는 두 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땅에 내린 채 꼼짝 없이 소녀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우우~” 저렇게 예쁘고 선하게 생긴 인간을 미어캣 낚시꾼으로 의심해서 밤새 사서 고생했다는 생각에 머쓱해진 나는 멀리 있는 가족을 부를 때 내는 경고음을 냈습니다. 그러자 소녀로부터 “워 워 워 우어~” 더 긴 말로 금 새 반응이 왔습니다. “와 진짜 미어캣 맞구나, 세상에.” 라는 말로 우리의 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응, 내 이름은 방고라고 해.” 가슴에 모은 한 손을 내밀자 소녀도 반갑게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재인이라고 해. 다른 언어의 사람들보다 동물들과 더 유창하게 통할 수 있어.” 재인이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오며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듯 그녀의 다중소통능력을 자랑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움츠리는 나에게 “너를 해치지 않아. 그 미끈하게 잘 생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라고 재인이 말했습니다. “흥, 두 번 속지는 않아.” 인간들이란 처음부터 본색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내가 일부러 튕기는 말을 골라 했습니다. “뭐라고? 나는 처음이야. 아 전에 어떤 사람한테 속았나 보구나.” 의심하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재인이 태도를 바꿔 말했습니다. “내가 내 고향을 떠나게 된 것도 사람들 때문이라고.” 또 한 번의 튕기는 나의 말에 “방고, 나는 너와 대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내가 아니면 누가 네 편이겠니?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어.”마치 빛을 잃어가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재인이 말했습니다.

   “재인, 내가 전에 칼라하리에서 잡힐 때도 그랬어. 사람이 내 소리를 흉내 내서 친구인줄 알고 깜빡 속았다 낚였다고.”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봐. 방고, 나는 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착한 동물들과 통할 수 있어. 나는 사람만큼 똑똑한 동물들의 친구란 말이야. 사람들이 다 나쁘거나 거짓말만 하는 것은 아니야. 너희 미어캣 중에서도 망보기 싫거나 놀고먹으려고 진짜 엄마처럼 젖을 부풀리고 젖까지 흘려 새끼들에게 누가 진짜 엄마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나쁜 여자어른도 있듯이 말이야. 나는 미어캣을 처음 본다고. 그리고 나는 알아, 너희들도 개처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는 것을. 그러니 괜히 시침 떼지 말고 잠자코 있어봐. 잠깐이면 돼.”

   이렇게 해서 친해진 나와 재인은 사막의 동물들 이야기부터 서로 캐나다에 흘러 들어온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칼라하리사막에서 낚여 장사꾼에게 팔려 홍콩으로 가서 애완용 동물로 살다, 캐나다로 이민 오는 주인의 이삿짐과 함께 국경을 넘다가 걸려 ‘야생동물은 사막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동물검역소의 결정에 의해 오소유스에 오게 되었다는 것과 조기 다중 언어교육이라는 미끼에 걸려 싱가폴로 갔다가 다시 캐나다로 오게 된 재인의 여정이 비슷하다는 것에 끌려 우리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고향으로 보내준다는 재인의 말에 내가 “재인, 우리는 겨우 이제 여기 적응을 끝냈어. 여기서 태어나 살아남은 두 동생들도 있고, 맛있는 사막 독 방울뱀이 많아서 굶을 일도 없어. 안전하기도 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고향이 좋지 않니 방고?” “아빠,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 보고 싶고 그 속에서 함께 살고 싶기는 해. 우리는 대가족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젠 삼 년도 넘은 옛날이야. 몇몇 친구들 얼굴만 어렴풋하고 아빠 얼굴까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야.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도 안나 다시 데려다 놓아도 소용없을지 몰라. 망을 보다가 독수리를 발견하고도 일광욕에 정신을 빼앗겨 제대로 무리에게 알리지 않아 가족들을 죽게 만들 수도 있고. 안 갈 거야. 아니 못 가.” 라는 나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멀리서 덩치 큰 어른 인간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나의 본능은 또 다시 나를 우리의 보금자리로 이끌었습니다. 내 경고음에 내 엄마와 동생들은 땅 속 더 깊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알아. 나도 안다고 나를 뒤 따르는 다른 사람이 곧 여기 도착할 것 같다는 것을. 그런데 그 분은 우리 아빠야. 야생 동물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운동을 하는 동물 인권 운동가라고.” 라고 서둘러 말하는 재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엄마와 동생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칼라하리에서 내가 싫다는 데도 인간이 내민 미끼가 뭔지 받아 오라고 시킨 어리석은 어른들이 생각나 나는 절대 고집 센 무모한 어른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나와도 좋아. 그런데 겨울에 춥지는 않아?” 마치 나를 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고 계속 떠들어 댈 것처럼 재인이 쉬지 않고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버려 두면 더 큰 호기심을 갖고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되돌아 올 지도 모른다는 가족의 의견을 받아들여 우리 가족 모두 햇빛도 쐴 겸 밖으로 나왔습니다. “매우 춥지만 적응해야 살 수 있으니까 더 깊이 땅을 팠지.” 재인에게 대답을 하면서 밖으로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등장했더니 재인이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재인의 아빠도 진짜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뒤 따라온 재인의 동생과 엄마도 칼라하리 미어캣들 만큼 순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넷, 너희도 넷, 우리 여기서 던지기 시합을 하자.” 자기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칼라하리에 돌아가는 우리들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덧붙이며 재인이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 하는 운동 중 유일하게 원반던지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재인은 우리 미어캣보다 똑똑한 인간 같았습니다. 나의 팔이 좀 굽어 짧은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만큼 똑똑해 보이는 인간한테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리니 당장 탁구시합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사막에 별빛이 물러간 자리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는 핏빛 햇빛이 세상을 훤히 밝히고 있었고 사막의 맥박은 벌써 힘찬 고동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오소유스 호수의 아침 안개가 사막의 신기루 같은 햇빛에 물러나면서 만들어 놓고 간 둥근 탁자모양 아지랑이 속의 캑터스 선인장은 훌륭한 원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반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단한 솔방울 같은 봉오리 외에는 눈에 띄는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소프트볼만한 단단하고 큰 꽃봉오리로 탁구시합을 하려고 재인과 내가 원형탁자에 다가서는 순간 재인 아빠가 놀라 만류 했습니다.

 “저것은 탁구대로 쓸 수 없다고 어서 멈춰. 원형 탁자로 보이는 것은 햇빛이 비틀어지면서 만든 신기루일 뿐이야, 다가갈수록 아무것도 없다고. 내년에 아빠가 다시 와서 탁구대를 만들어 줄게 그때 하자 재인” 재인 아빠가 재인의 손을 붙들고 이제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재인이 “아빠, 방고와 딱 한 게임만 하고 갈게요”라고 내 손을 끌고 신기루에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탁자는 다가갈수록 멀어져 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재인이 몸을 날려 탁구대를 잡으려고 그 원형물체에 다이빙한 순간 그만 신기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뛰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 또한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재인을 찾으러 신기루에 몸을 날렸습니다. 곧이어 “꽈당” 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깨어난 나는 우리 보금자리 땅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뇌리에는 재인의 영상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찾으러 곧장 땅 밖으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재인, 어디 있어?” 바닥에 부딪친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못한 채 나는 “워 우어~”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재인도, 원형 탁자도, 재인 아빠도 모두  신기루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재인, 어떻게 되었어?” 아무리 외쳐 봤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재인을 모르는 바람뿐이었습니다. 한때는 열렬히 기다리던 그 바람에 코를 대고 냄새도 맡아 보았지만 재인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에 아빠가 만든 탁구대 갖고 꼭 돌아와 재인...”
작별인사도 못 나누고 헤어진 재인으로 인해 나는 태초의 빛이 만들어낸 걸작, 사막에 서서 의심을 기다리는 칼라하리 미어캣이 아니라 착한 동물과 악한 동물을 구별할 줄 알아 사람을 무조건 의심부터 할 필요가 없는 나를 닮은 한 인간을 기다리는 캐나다 미어캣이 되어 있었습니다. 희망을 기다리면서…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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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아내의 밥상 2018.05.30 (수)
가만히 받고 보면 내 심장이 한상이다창조의 질서가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상큼하게 양념쳐 있다 밤과 낮채소와 자연사람의 생기까지반찬 하나에우주를 버무렸구나.                  ~•~•~•~•~•~•~입만 즐겁고자 한다면 밥상을 받아들고 할 짓이 못된다. 하나의 나물에 버무려진 바람과 태양, 물과 시간, 그리고 여인의 사랑까지 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수저에 손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맛있는...
김경래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모교인 숙명여고 동창회로부터 그 해 여름에 별세하신...
김진양
마른 꽃 2018.05.30 (수)
마른 꽃 한 송이차마 너를 버리지 못하네서걱이는 바람 소리작은 손바닥에 울리면어머니의 몸처럼가벼운 너진달래 꽃으로 피어나던 너의 봄은지금 어디에뻐꾸기 울음을 삼키던너의 슬픔은 어디에가벼이 떠도는 새털 구름 오늘 아침에도 찾아오신마른 꽃 한 송이
신금재
얼마 전 스페인 여행 중에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이와는 대조를 이루는 당나귀 택시가 있는 미하스의 하얀 마을을 다녀왔다.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중에 “게르니카(Guernica)”라는 것이 있다. 이 그림 속에는 하나같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과 짐승들이 처참한 모습을 하고 공포에 질려 있다. 그림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억울하고 분에 북받친 듯한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까지 한다....
권순옥
어느 봄날 2018.05.24 (목)
어느 봄날열다섯 소녀들의 국어 시간선생님은 봄이 좋단다난 가을이 좋은데또 말씀하신다봄이 좋아지면 늙은 거라고몇 해전부터봄이면 개나리, 진달래빛 스웨터를 입은소녀들이 예뻐 보이고나는 또 병아리처럼양지바른 곳만 찾아든다봄내음 가득한냉이국, 달래 무침이 상에 오르고아이들에게 묻는다어느 계절이 좋으냐고가을이란다마흔 아홉난 봄이 좋은데.
오정 이봉란
암에 대한 상식 2018.05.24 (목)
스티브 잡스가 재발한 췌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링거액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쳐다보며 곧 죽게 되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돈은 가져갈 수 없고, 사랑에 대한 기억은 가져갈 수 있으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건강에 관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암을 알면 암을 이길 가능성이 크다. 최근 주위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지인들이 너무 많음을 목도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젊은...
尤善김명준
열대어 가게 안은 어둡고 촉촉한 습기가 가득했어요. 바닷속 같은 수족관에는 예쁜 열대어들이 수초 사이로 몰려다녔어요. 구석진 수족관에서 거북이들이 가게 안을 살필 때, 주인아저씨는 무언가를 망설였어요. “어쩔 수 없지, 작은 유리병을 사 올 때까지---.”열대어 가게에 팔려온 우리 베타 피시들은 한 수족관에 넣어졌어요. 그 전에 우리들은 작은 유리병에 혼자 살고 있었어요. 우리는 곧 서로 아름다운 꼬리를 뽐내며 자랑했어요. “잘...
조정
그 누구를 위해서일까그 무엇을 위해서일까 평생토록 하루도 거름 없이새벽을 깨우시는 우리 어머님 지난겨울 그 혹한 멀찍이 밀쳐낸 동구 밖어린 날 늘 내 귀가를 기다리시던우리 고향 마을 무릉도원 길 올해도 복사 꽃 흐드러져그 꽃불 미소환히 빛 밝히고 계시겠지 일제 치하 육이오 그 혹심했던 수난의 세월수선화보다 더 가냘팠던 어린 남매 데불고무명 잣기 명주 길쌈그 북채 실오라기 한 올 한 올 눈물 젖은 기도문들 촘촘히...
남윤성
최고의 밥상 2018.05.14 (월)
“천천히 마이 무라이, 거선 이런 거 묵기 힘들 낀데.” (천천히 많이 먹어라, 그곳에선 이런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을 건데.)팔순 할머니가 막내 아들에게 아침상을 차리며 건넨 한마디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가 쌀을 씻고, 딸그락 딸그락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아직 시차에 적응을 못한 탓인지 일찍 잠이 깨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 멀리서 “두부 사려~, 비지”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두부 파는 아줌마의 정겨운...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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