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이제 겨우 고요가 시작 되었다. 양로원의 저녁은 일찍 시작되지만 고요가 쉽게 찾아 오진 않는다. 너무 소란스러웠다 너무 고요 해 지니 그 고요함은 왠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이 자리에서 조금 전까지 예쁜 치매를 보이시던 노인이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다시 그리워 지는 것 처럼------.
하늘의 반달 하나, 창 가에 비친 또 하나의 반달 하나. 합치면 온전한 하나의 보름 달이 되지만 영영 합쳐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나보다. 그 녀의 안타까운 짝사랑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다 식어빠진 차 한잔을 아직도 두 손에 품고 그 녀는 울고 있었다. 오이 한 자루 만한 팔뚝과 젖가락 같은 손가락에 걸린 커피잔이 힘 겨워 보였다. 그런 그 녀가 눈 보다 더 큰 눈물 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외면 하려 했지만 그 녀가 나를 불렀다. “헬로우, 낸시. “ "하이, 제이시… 아직 창가에서 뭘 즐기고 있어요? " 하면서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 녀는 계속 말을 하였다. 자기는 지금 추위에 떨고 있고, 자신의 스웨터를 누군가가 가져갔다고 한다. 그 때, 천사가 다시 가져다 준다고 약속하였다고. 그 천사는 바로 자기의 아들이고, 자기는 그 아들이 오길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가 하찮게 들릴지 모르나 이 분들의 이야기는 그리움에 사무친 노인들의 절규이다.
백설공주처럼 하얀 피부에 지팡이처럼 깡 마른 이 노인은 참 사랑스럽다. 치매를 앓아도 예쁜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고, 안타까운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다. 늘 웃는 얼굴의 온화한 이 여인은 지나온 인생이 늘 따뜻했었나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다. 텔레비젼 속의 아나운서들과도 자주 만나며 나를 소개 시켜 주기도 한다. 텔레비젼을 보면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은 아주 곤란한 표정으로 괴로워 하였다. 자기는 오늘 아나운서와 만나기로 하였는데 잠을 자느라 약속을 못 지켰다고 한다. 텔레비젼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였다.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다. 나는 그냥 솔직히 사과하면 아나운서도 당신을 용서 할 것이라고 대답 해 주었다. 그럼 같이 텔레비젼 앞으로 가자고 하였다. 누가 이런 예쁜 노인의 청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지금 그녀에게 가장 큰 그리움은 아들을 보지 못하는 괴로운 시간들이다. 가끔 식사도 거른 채 핸드백에 구두까지 갖춰들고 문 앞에 서서 아들을 기다린다. 전화 좀 걸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다섯자리의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나갈수 있는 양로원 문은 언제나 열리려나. 일 하는 직원들도 나가고 들어 갈때 마다 문 앞의 노인들을 조심하라고 늘 교육 받는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이 노인 앞에 떨어진 폭풍같은 그리운 아들이 제발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랑스런 노인의 그리움을 덜어 줄 수 있을까. 다만 "울지 말아요, 제이시. 오늘 밤 당신이 편히 주무시면 내일 아침에 당신의 아들이 올거예요. 물론 당신을 따뜻하게 해 줄 스웨터도 가지고 올거예요"라고 위로 해 주었다. 안타까워서 해 본 말에도 고인 눈물을 그치고 행복 해 하였다. 내내 "정말 이지? “ 다시 묻던 제이시의 얼굴이 떠 올라 가슴을 저민다.
조만간 제이시의 아들이 찾아와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제이시의 아들과 다르지 않은 자식이고 보니 자책감이 든다. 이번 추석에 소홀 했던 나의 돌아가신아버님께도 기도로 인사 드려야 겠다. 귀가 안 들려 통화 하기도 힘든 어머니께도 들리던지 안 들리던지 전화 드려야 겠다. 밥 한 수저 뜨기 힘든 노인이 되어도 생생히 살아있는 자식에 대한그리움, 뇌가 잘못 되어 치매가 와도 병이 안드는 단 하나 자식사랑. 내가 훗 날 제이시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내 아이들이 어찌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제이시의 아들처럼------.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짝사랑하면서 속으로 애타며 울겠는가.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하늘의 반달 하나, 창 가에 비친 또 하나의 반달 하나. 합치면 온전한 하나의 보름 달이 되지만 영영 합쳐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나보다. 그 녀의 안타까운 짝사랑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다 식어빠진 차 한잔을 아직도 두 손에 품고 그 녀는 울고 있었다. 오이 한 자루 만한 팔뚝과 젖가락 같은 손가락에 걸린 커피잔이 힘 겨워 보였다. 그런 그 녀가 눈 보다 더 큰 눈물 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외면 하려 했지만 그 녀가 나를 불렀다. “헬로우, 낸시. “ "하이, 제이시… 아직 창가에서 뭘 즐기고 있어요? " 하면서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 녀는 계속 말을 하였다. 자기는 지금 추위에 떨고 있고, 자신의 스웨터를 누군가가 가져갔다고 한다. 그 때, 천사가 다시 가져다 준다고 약속하였다고. 그 천사는 바로 자기의 아들이고, 자기는 그 아들이 오길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가 하찮게 들릴지 모르나 이 분들의 이야기는 그리움에 사무친 노인들의 절규이다.
백설공주처럼 하얀 피부에 지팡이처럼 깡 마른 이 노인은 참 사랑스럽다. 치매를 앓아도 예쁜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고, 안타까운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다. 늘 웃는 얼굴의 온화한 이 여인은 지나온 인생이 늘 따뜻했었나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다. 텔레비젼 속의 아나운서들과도 자주 만나며 나를 소개 시켜 주기도 한다. 텔레비젼을 보면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은 아주 곤란한 표정으로 괴로워 하였다. 자기는 오늘 아나운서와 만나기로 하였는데 잠을 자느라 약속을 못 지켰다고 한다. 텔레비젼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였다.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다. 나는 그냥 솔직히 사과하면 아나운서도 당신을 용서 할 것이라고 대답 해 주었다. 그럼 같이 텔레비젼 앞으로 가자고 하였다. 누가 이런 예쁜 노인의 청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지금 그녀에게 가장 큰 그리움은 아들을 보지 못하는 괴로운 시간들이다. 가끔 식사도 거른 채 핸드백에 구두까지 갖춰들고 문 앞에 서서 아들을 기다린다. 전화 좀 걸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다섯자리의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나갈수 있는 양로원 문은 언제나 열리려나. 일 하는 직원들도 나가고 들어 갈때 마다 문 앞의 노인들을 조심하라고 늘 교육 받는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이 노인 앞에 떨어진 폭풍같은 그리운 아들이 제발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랑스런 노인의 그리움을 덜어 줄 수 있을까. 다만 "울지 말아요, 제이시. 오늘 밤 당신이 편히 주무시면 내일 아침에 당신의 아들이 올거예요. 물론 당신을 따뜻하게 해 줄 스웨터도 가지고 올거예요"라고 위로 해 주었다. 안타까워서 해 본 말에도 고인 눈물을 그치고 행복 해 하였다. 내내 "정말 이지? “ 다시 묻던 제이시의 얼굴이 떠 올라 가슴을 저민다.
조만간 제이시의 아들이 찾아와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제이시의 아들과 다르지 않은 자식이고 보니 자책감이 든다. 이번 추석에 소홀 했던 나의 돌아가신아버님께도 기도로 인사 드려야 겠다. 귀가 안 들려 통화 하기도 힘든 어머니께도 들리던지 안 들리던지 전화 드려야 겠다. 밥 한 수저 뜨기 힘든 노인이 되어도 생생히 살아있는 자식에 대한그리움, 뇌가 잘못 되어 치매가 와도 병이 안드는 단 하나 자식사랑. 내가 훗 날 제이시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내 아이들이 어찌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제이시의 아들처럼------.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짝사랑하면서 속으로 애타며 울겠는가.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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