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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불안 록키에 가니 사라졌다

김유식 m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10 09:45

설렘과 기쁨 록키에 가니 생기더라

록키산행기
                                          
“진실을 말해주세요.” 이른바 근자의 인터넷상에서 횡횡하는 타인에 대한 진실요구 행위다. “타진요,’ ‘티진요’ 등등 왜들 이리도 타인의 진실이 궁금한 것인지… 그러나 그 요구가 잉태하는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도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결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너무도 쉬이 넘나드는 작금의 세태가 적이 불안하다.

다행히도 이런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작년 초 찰나의 인연이 있었던 “토요산우회” 주최의 8월 6일 부터 11일까지 5박 6일간의 록키산행에 동참할 수있는 행운을 잡았는데, 특히나 Lake Louise를 중심으로 하는 산행이 세차례나 잡혀 있는 일정표만으로도 최근 몇일간의 그 우울한 기운을 쫓아내기에 충분하다.



첫째날


8월 6일 새벽 5시 20분 벤쿠버를 떠나 박병준 대장님을 위시한 29명 전원 회동의 장소인 Banff로 가는 길은 예상치 못했던 교통체증으로 평소 운전시간보다 두시간 이상이나 지체되었고, 이미 아홉시 반을 넘긴 시간에야 겨우 저녁상을 마주한다.

하지만 식사시간 내내 산우회원분들의 얼굴에선 다음날 부터 마주할 기연에 대한 흥분만 감지될 뿐 이미 긴시간의 운전에서 드러날 법한 피로의 기색은 찾아 볼 수 없다. 모르긴해도 이분들께선 이번 산행이 기획되었던 지난 4월 부터 설레임을 안고 오래도록 이길을 달려오셨으리라. 그 기다림과 설레임이 이제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으니 어찌 육신의 고단함이 일순간이나마 자리할 수 있으랴.



둘째날

산행 첫째날인 오늘, 조식 후 약 40여분 간의 운전으로 루이스호에 도착하여 마침내 Mount Victoria를 중심으로하는 Plain of six glaciers를 만나러 출발한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러니까 trail course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view point까지는 호수로 부터 약 6킬로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늘상 호수 이쪽 가장자리에서, 저 멀리 고운, 새하얀 분칠을 한 Mount Victoria의 얼굴만 보아 왔었는데, 드디어 오늘, 감히 그 품에 안길 수는 있는 거리, 그 숨결을 만질 수 있는, 분칠아래 숨겨둔 속살을 볼 수 있는 지척까지 갈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호흡이 가빠진다.

약속된 점심식사 지점에서 한국의 산야에서 보아 왔던 연갈색바탕의 몸통에 운치있는 검정 줄무니를 가진 참한 다람쥐와 조우한다. 먹이를 구하는 듯이 보이는 이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먹이를 던져 주고픈 충동읗 불러 일으키는데, 만약 등반대장님의 엄격(?)한 훈시가 없었다면 충분히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애써 그 충동을 억누르고 있는 터에 맘 한쪽 켠에서 밀쳐두었던 “티진요”에 대한 생각이, 그 어두운 기운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일어난다. 정도를 넘어선 인간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하여 이 다람쥐는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고 말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동료들과는 동떨어진 삶의 패턴으로 살아갈 수 밖애 없는 운명이 되었구나 싶으니 어째 좀 슬퍼진다. 아뭏든 이 다람쥐에게는 어떤 방식의 삶이 좋은지는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삶의 방식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풀과 조약돌과 시냇물이 조화로운 쉼터를 뒤로한지 약 30여분, 마침내 풀한포기 자라지 않는 너털길이 나타나고, 거대한 빙하가 다가온다. 늘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이로만 여겨졌던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 갈 수록 여럿이 모여 마치 하나같은 조화를 이루어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Mount Lefroy는 처음엔 병풍속의 그림처럼 하나의 평면으로 다가 왔으나 가까이 찾아 준 손님을 위해 거대한 입방체인 그의 진면목을 자랑스레 드러낸다. 그 뒤에 참으로 웅장하기 그지없는 Victoria가 너무나도 태무심한 얼굴로, 단 한번의 눈깜빡임도 없이 초연히 서 있다. 이리도 가까운 곳에서, 그 얼굴의 주름 한가닥 한가닥을 셀 수 있는 곳에서 그를 대할 수 있음에 가슴이 더욱 벅차오른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의문이 인다. “어찌하여 이곳엔 식물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곳은 이른바 Tree line을 넘어선 고도이라지만, 어찌 수풀은 아무런 강제가 없음에도 자신들이 넘어선 안될 선을 절대로 넘지 않을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모르긴해도 인간 보다는 자연이 저들의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더 강한 모양이다. 또한 저들의 욕구를 절제할 요령도 터득한 모양이고.



세째날

오늘은 Mount Victoria의 측면과 Mount Temple을 마주할 수 있는 Sentinel Pass를 경험하는 날이다. 짙은 turquoise색조 아니 오히려 Cobalt blue에 더 가까운 Moraine Lake를 발아래 두고, Larch Valley를 통과할 즈음에 기어이 심상치않은 비바람과 우박을 만나고야 만다. 이로인해 미처 짖궂은 날씨에 대비를 못하신 일곱분이 발길을 뒤로 하였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한길로 걸어 왔기에 그 포기를 수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못내 아쉽다.

목적지로 가는 내내 이 비바람과 마주하였으나 이를 견디어 낸 댓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비경으로 되돌려 받는다. 억겁의 세월이 빗어낸 이 파노라마는 아무리 유능한 작가라 해도 그 기운을 담아 내기란 불가능할 둣이 보인다. 특히 Pass 바로 아래 자리한 Grand Sentinel이라는 이름의 바위는 이름 그대로 이 아름다운 산세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활을 능히 해낼 수 있을 만큼 그 기상이 매우 늠름하다. 과연 무엇으로 이 장엄함을 담아 그 일곱분의 동료들에게 나누어 드릴 수 있을까?

내려오는 길에 또한번의 기연을 만난다. Pass 바로 아랫자락에 V자 모양의 잔설이 호수에 비추이자 이내 선경을 노니는 한마리 학이되어 살아난다. 산에겐 호수가, 그리고 호수에겐 산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신을 낮추고 서로를 배려함으로서, 조화를 이루고 생명을 만들어 낸다. 혹, 창조주의 전지전능하심도 여기에 기초하신 것 아닌가 싶다.

하산길 맨 후미에서 몽환적 분위기의 다리를 보자 덜컥 겁이난다.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난 뒤 극장문을 열고 나올 적의 허무감을 느낄 것 같아 심히 두렵다. 만약 이 경험이 꿈이고 저 다리가 현실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리 이쪽켠에 남아 있으리라. 다시 한번, 비경을 접할 수있는 기회를 목전에 두고 포기를 결정하신 일곱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하산을 결정하신 지점에서는 바로 눈앞에 목표점이 보였기에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한 의욕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삼십분 이상 지속된, 고산지역에서의 세찬 비바람을 아무런 대비없이 마주섬은 쉽지 않았을 터이고, 만약 이분들께서 대장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판단을 하셨더라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한계선을 넘지 않으려 스스로를 절제하는 자연의 섭리를 이미 몸소 터득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는지
   


네째날

Fairview Mountain! 해발고도 2744meter 높이의 봉우리로 그 오른쪽 발아래 Lake Louise를 딛고 서서, 3,464meter 높이의 Mount Victoria의 매서운 눈빛을 전면에서 당당히 받아내고 있는 당찬 산의 이름이라는데, 오늘은 이곳을 간다. 더우기 공교롭게도 우리의 백두산과 같은 높이의 산이라 그런지 웬지 모를 정감이 생긴다.

앞선 이틀과는 달리 처음부터 가파르게 서 있는 산길이 오늘 산행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미리부터 귀뜸해 주는 둣 하다. 4Km 남짓의 산길을 끈기있게 오르니 마침내 탁트인 능선에 갈래길이 나온다 좌측은 Saddle peak. 말안장을 닮아 붙여진 이름. 우측 길이 Fairview로 가는 길인데 정말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가까이에서, 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Victoria와 조우할 수 있음을 생각하니 그 만만치 않음이 어쩌면 당연히 지불해야할 삵이라는 생각든다.

약 한시간의 고투 끝에 드디어 Fairview 정상. 그리고 그앞에 펼쳐진 Victoria! 그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뿐이다. Saddle peak이 그 형상에 기인한 이름이라면 Fairview는 필시 글자 그대로 눈앞의 fair view에서 기인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눈 앞에 펼쳐진, 이 티끌하나 없는 광경을 보여주는 이 봉우리를 어찌 다른 이름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눈으로 감상한 Fair view에서의 정경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나서 아쉽게도 발길을 돌린다. 가파르게 올라왔던 만큼 내려가는 길 또한 딱 그만큼 가파르다. 항상 무엇을 얻기위해서는 그 가치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인간사 이치도 이처럼 Fair하였으면 좋으련만…
아까의 그 갈림길에서 Saddle Peak으로 가셨던 분들과 만나 하산길로 접어 든다. 오늘은 웬지 내려가는 길이 많이 힘이 든다. 어찌된 셈인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로 들어선 기분이어서, “이렇게 많이 올라갔던가?”하는 의문마저 생길 정도이다. 그 엄청난 감흥 이후에 이런 지루함이 뒤따를 줄이야… 부끄럽게도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다섯째 날

아침 일찍 이번 여정의 주 숙소지였던 Tunnel Mountain Resort 인근 Bow강이 굽이쳐 흐르는 Bow Valley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Hoodoo view point에서 일출을 맞이하기로 한다. 이곳의 Hoodoos는 작년 여름 Cross Country를 마치고 우회의 길로 선택했던 미국 South Dakota의 Badland National Park의 그것과 아주 많이 흡사하다. 하지만 드넓은 사막한 가운데 엄청난 규모의 Badland Hoodoos 보다 숲으로 우거진 계곡과 표표히 흐르는 강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Hoodoos가 훨씬 안정되어 보임은 왜일까? 일출 대신 이른 아침까지 부지런하게 먹이를 찾아나선 서너마리의 사슴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오늘은 Banff를 떠나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방문지인 Idaho Peak이 자리하고 있는 New Denver란 도시로 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는 도중에 Nakusp이라는 이름의 마을에서 온천욕을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관건은 Upper Arrow Lake 선착장에서 전 구성원의 차량이 한대의 Ferry를 동시에 탈 수 있느냐 이다. 왜이리도 불길한 예상은 잘도 들어맞는지…

결국 일행 차량중 두대가 낙오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약 한시간 가량을 호수 이쪽과 저쪽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Ferry가 불어난 교통량으로 삽십분 간격으로 운행 시간을 단축해 주어서 일행 모두가 British Columbia주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따뜻한 Mineral 온천수에 몸을 담글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Nakusp의 Hot Spring은 참으로 아늑하여서 한 몇일을 이 곳에서만 소일하고픈 충동이 일 정도이다. 참으로 넓은 땅덩어리 요소요소에 온갖 진기한 보물들을 감추어 두고 있는 Canada라는 나라, 참으로 부럽다. 근 오천만의 인구가 오밀조밀 모여사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생각할 때는 질투가 난다.



마지막 날

새벽 5시 15분  Slocan Valley의 Idaho Peak으로 일출을 맞이하러 떠난다. 여태 멀쩡하던 애마가 기어이 위기를 맞는다. Overheating의 우려로 수차례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급기야 길 한쪽켠에 주차를 결정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무선라디오의 배터리 마저 없어서 앞서간 일행들과의 연결을 할 수 없다. 지나친 믿음으로 인한 귀결이랄까,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사이에 차는 이미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렸다.

연락이 두절된 맨 후미의 차량으로 인해 일행 모두의 잔치를 망칠지경에 이르렀다. 얼마간의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을 위로 향한다. 목적지에 가야만 되어서라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일행분들의 지척에 다가가야 할 것 같아서, 그러면 조금이라도 죄송스런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잠시 후 근심스런 얼굴의 대장님과 부대장님의 구원의 손길에 이끌려, 비록 예정되었던 일출은 놓쳤지만, 그 이상의 경험을 한다.

별천지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선경이라고 해야하나? 보고, 경험하는 것 외에는 어떤 필설로도 이 천혜의 꽃밭을 그려낼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산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서 이생에 이리도 호사를 누리는가? 몸을 감싼 형형색색의 꾳무늬로 수놓은 색동의 치마저고리가 그 덕의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게 한다. 이 가없는 아름다움, 이 천상의 조화는, 아마도 이전 삼일간의 산행에서 보았 듯이, 자연이 그들의 법칙을 준수하고, 자신의 지켜야할 선을 절대로 넘지않는 강한 절제의 산물이라고 이번 여정의 마지막 행선지인 Idaho Peak은 웅변 한다.




마무리

밤 열두시가 다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선다. 잠이 들기전 까지만 해도 지난 몇일간 경험했던 풍광들의 잔상이 아른거렸었는데, 다음날 아침엔 아득히 먼 일이었던 것처럼 기억조차 희미해 진다. 아마도 여행이란 우리 가슴 속 한켠에다 다녀올 적 마다 차곡이 쌓아두고 가끔씩 꺼내보는 것이어서, 이번 여행도 늘상 그래 왔듯이 이미 마음의 서랍 한켠에 자리한 모양이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는 것 하나가 있는데, 바로 Tree line이다. 왜 이리도 그 선에 집착하는가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아마도 청소년기에 읽었던 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나오는 “Big Brother” 때문인 듯 하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 이 인터넷이 바로 그 “Big Brother”이고, 소위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 수하들이 아닐런지. 그 때의 그 공포감이 오늘 되살아나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개인사에 지나친 관심 혹은 호기심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은 결단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것이고, 그 선을 넘어섬은 곧 욕심이며, 지나친 욕심은 곧 양측 모두의 불행을 초래한다. 이번 록키산행에서 자연은, 늘 그래왔듯이, 다시 한번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지켜야 할 선의 존재의 가치와, 동시에 그 선을 넘고 싶은 욕망의 절제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한 그 지킴의 결과가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잉태해 내고 있는지를!

사진=박병준, 글=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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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샘 임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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