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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수 있는 권리와 우울증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6-06-17 09:06

잘알고 지내던 지인이 10층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한동안 보지 못하고 지냈는데 죽음이라는 소식으로 전해져 왔다.  항상 밝고 명랑하고 유머가 많아 함께 모이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교회예배가 끝나면  그의 집에서 자주 모여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60대인 그는 은퇴를 한 후 장모를 돌봤었다. 치매에 걸려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는 장모를 자주 방문했었다. 2주전 장모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했다. 그의 소식이 전해진 후 '치매인 장모를 돌보는 것이 힘들었을 것''은퇴한 후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며 추측했지만 설득력있는 답은 그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본인이나 가족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치료를 하지 않았거나.

이 노인아파트에서는 지난 1년간 3명의 노인이 자살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11층에 살던 여성이 남편이 아침운동을 마치고 잠깐 잠든 사이 발코니에서 투신했다. 올해 2월에는 혼자 살던 노인여성이 역시 투신 자살했다. 마치 전염병처럼 자살이 이어졌다. 우울증은 병균으로 전염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전염되는 현대인의 전염병이다. 한인노인 3명중 1명은 우울증이라는 통계도 있다. 정신건강 전문의는 우울증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질병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독감이나 감기처럼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조기에 치료하지 않거나 방치할 경우 폐렴처럼 중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직장을 그만두거나, 배우자와 사별했을 때에 스트레스와 외로움등으로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며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이 악화되면 더욱 발생율이 높아진다. 문제는 우울증이 외관상으로는 전혀 병처럼 보이지 않고 실제로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정상인 사람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면서 주변에 그 심각성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부동산에이전트 일을 하며 건축노동자로도 일하던  남자가 공사장 높은 곳에서 투신자살했다. 이사람 역시 주변에서  성실하고 인생에 열심인 사람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입이 일정치가 않아 고민했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서의 자살률은 24%나 증가했다. 연방질병통제국은 이같은 증가는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2014년에는  42,773명에 이른다.  경제불황이 심화된 2006년부터는 자살증가율이 2배로 늘었다. 특히 알래스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살은 이기간 중  60% 가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45세에서 64세 사이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우울증은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도 빈발한다. 5살에서 15살 연령층 소녀들의 자살률은 3배나 증가했다.  이들 현대 젊은이들은 특히 인터넷 웹사이트나 게임에 중독되고 페이스북등의 소셜미디어에 빠지면서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젊은이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해방돼 방 밖으로 나오고, 옥외운동을 더욱 자주할 것을 예방책으로 강조하고 있다.

우울증에 고통받는 사람만큼 우울증을 이긴 사람들도 많다.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던 웬트워스 밀러(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의 인생반전은 모델케이스이다. 그는 수년전 자신을 손상된 상품으로 여기면서 우울증과 싸웠다. 그는 이 시기 동안 관계상실, 불면증, 박탈감 등으로 고통받으며 이를 잊기 위해 술, 약물, 섹스, 그리고 음식에 몰입했다. 그는 날씬한 젊은이에서 뚱뚱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이즈음 자신의 우울증을 공개하고 나서며 우울증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청년세대의 심각한 우울증 만연에 사회적인 관심과 대처를 캠페인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는 역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은 유명연예인들이 잇달아 동참하고 있다.  그만큼 청년 우울증은 심각하다.

연방 예방질병센터는 12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의 우울증 검진을 정례화하는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즉 12세 이상의 모든 미국인들은 슬픔과 분노가 계속될 때, 수면습관, 식욕등의 변화, 그리고 죄의식과 무가치함을 느낄 때는 즉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하며, 의사들이 진료 도중 이같은 상황을 발견하면 반드시 치료할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지난 6월9일부터는 캘리포니아의 안락사법이 발효되기 시작했다. 만성 불치병 환자들이 '품격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으로 의사, 환자, 가족이 합의해 스스로 고통없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다. 불치병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환자의 반이상이 고통을 줄이는 빠른 죽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품위있는 죽음의 선택권'이기도 하지만 의사와 환자가 공조하는 합법적인 '자살'이기도 하다.  이 '공조자살'에 대해 많은 의사들이 반대하거나 주저한다. 그들은 그동안 환자가 음식을  스스로 끊음으로서 편안하고 자연스런 죽음의 선택을  해왔다며,  의사가 돕는 자살공조가 과연 품위있는 죽음으로의 해결이 될지 의문시한다.  의사들은 자살 처방전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한다. 그들은 또 노년 우울증이 겹친 중증 환자들의 자살요구를 어떻게 의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있다.  병적인 자살요구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여 더 생존해야 할 생명을 합법적으로 중단시키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다.

 '품위있는 죽음'은 인간의 자살권을 법적으로 인정해 이제 그 시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울증,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은 현대의 새로운 전염병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환자들이나 가족, 의료단체들은 그 심각성에 대처하는 법제정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LA통신 2016년 6월  18일  김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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