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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니뇨 - ´아기 그리스도´의 비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6-01-11 16:36

엘 니뇨(El Nino) – 스패니쉬로 엘은 정관사 the, 니뇨는 어린아기 child 를 의미한다. 특별히 대문자로 쓰면  ´아기 그리스도´를 뜻한다.  19세기 말부터  그리스도의 생일이라는 12월25일 즈음에  미서부와 멕시코에서  중미에까지  나타나는 이 현상을  ´엘 니뇨´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크리스마스 차일드´가 드디어 캘리포니아의  하늘에 잿빛 카펫을 깔며 눈과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불어나서 말리부 해변가 부잣집들 발코니로  흰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대부분 해변들의  출입이  폐쇄됐다.  배수관을 통해 그동안 막혀있던 오물들이 모두 씻겨져 나올테니 당분간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보도 내려졌다.  패사디나 산중턱에 있는 수백만달러 저택의 기반들이 슬금슬금 무너지면서  집주민들이 대피했다(평탄한  땅바닥 서민 주택가 의 주민들은 그런 두려움은 없다). 

남가주 스키명소인 빅베어에는 지난 5일간 4피트가 넘는 눈이 쌓였다.  많은 스키어들이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눈에 덮인 차를 꺼내지 못했다.  주중 한때 스키촌에 전기가  끊기면서 수천가구가 고생을 했다.  항상 콘크리트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LA리버(강이라기 보다는 배수로)는 모처럼  물줄기가 콸콸대며 포효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의 산불로 나무들이 불에 탄 지역에는 산사태가 우려돼 인근 주민들이 대피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주요도로에  바위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길이 폐쇄됐다.
엘니뇨는 캘리포니아 뿐만 아니라 애리조나, 네바다에도 은총(?)을 베풀었다. 스키리조트인  리노에서 레이크 타호까지 16인치의 눈이 쌓였고,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은 19인치의 눈으로 흰색 골짜기의 장관으로 덮였다. 이 국립공원의 모든 셔틀버스가 운행을 중지했다. 그랜드캐년의 노스 림(북부 지역)은 이번 겨울동안 폐쇄된다. 아리조나 사막에는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이는 올봄 사막 선인장 꽃들의 만개를 예고한다).  북부 아리조나에는 시간당 최고 1인치의  눈이 내렸다.

1997년 수퍼 엘니뇨 이후 이같은 시원한 눈, 비를 볼 수 없었던 캘리포니안에게 지난 며칠간  밤새 내리는 빗소리는 위로와 안도였다(일부 피해자들에게는 다르겠지만).

여러가지 이유,  혹은 알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바다표면의 기온이 상승한다.  특별히 적도를 따라 태평양의 동쪽을 따라  6월까지 해면 온도가 상승한다.   수퍼 엘니뇨라 불리는 이 현상은  해수 온도표시 지도에서  태평양의 동쪽 적도를 선명한 붉은 띠로  물들게 한다.  해면의 높은 수온은  태평양 물의 흐름과  그 위에 있는 대기의  수분형성,  움직임을 바꾸고 북반구 아메리카 대륙의   늦가을 부터 겨울까지의 날씨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남부에서 캐롤라이나 주와 일부 북동부지역에  이르는 지역에  많은 비와 눈을 뿌린다.  미국 중부 오하이오 밸리와  5대호등의 지역은 바짝 마른다. 미국 남서부, 플로리다에서 텍사스까지, 그리고 대평원지대는 추워진다.   이번 겨울  뉴욕등 동부지역의 겨울날씨가 따뜻해 주민들이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은데 비해  로스엔젤레스는  추위를 피해 여행을 온  사람들이  오히려 추위에 떨며 불평해야 했다.  텍사스와  미드웨스트는 12월의  홍수로 강이 범람하며 50명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엘니뇨는 이번 주말까지 캘리포니아에  비,눈을 뿌리고  하루 이틀 쉬었다가  다음주에 다시 계속된다. LA다운타운의 경우 3.5인치 이상의  비가 내렸고, 산간지역은  20에서 30인치의 적설량을 보임으로써  다음주까지  비가 계속된다면  10년가뭄을 해소할 기미도 보인다.

비바람과 눈이 원망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LA카운티의 4만 4천여명의 노숙자들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도시, 연중  따뜻한 날씨로  미국 전역의 홈리스들이 몰려들며 해마다 12%의 홈리스 인구가 증가하는 로스엔젤레스.   현재 이들에 대한 수용능력은 13%에 불과하다.  지난 가을 LA시가 홈리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억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홈리스들을 돌보기로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라스베가스 홈리스들이 대거 LA로 나타났다.  라스베가스 시당국이  그도시의 홈리스들에게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원웨이 버스티켓을 사주며  내쫓았기 때문이다.  이번주 LA곳곳의 홈리스 텐트촌들은 폭격맞은 것처럼 텐트들과 홈리스 가구들이 흩어지고 널려있다.  LA리버와 샌가브리엘 리버의  곳곳의 다리 밑에  살림을 차렸던 이들은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면서 이재민들이 됐다.   LA당국이 이들을 위한 셀터를 마련했지만, 아직  2만 9천여명의 홈리스들은 보호처를 찾지 못한채  비를 피할 곳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많은 홈리스들은 셀터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있고,  정신질환 등으로 길거리에서 지내는 것을 고집한다. 

2016년 새해 첫 주 찾아온 수퍼 엘니뇨.   5백년 이래 최저 수준인 캘리포니아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적설량을 평년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상학자들이 기대하는 4가지  최적의  조건이 있다.  4월까지 우기가 지속돼야 한다.  그리고 산간지역,  호수지역등 적재적소에 와야 한다.  도시에 내리는 비는 그저 바다로 쓸려나가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또한 눈을 품은 산간지역은 눈이 쉽게  증발하지 않도록 영하의 기온으로 추워야 한다. 

도시 아스팔트에  내리지 않고, 홈리스 텐트촌에 쏟아지지 않고,  춥고 높은 산위에  내리는 눈과 비.   홈리스들도 이런 엘 니뇨 – ´아기 그리스도´를 원한다.

LA통신 2015년 1월9일 김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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