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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자녀 가장의 죽음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5-03-20 17:26

김기철씨는 56살이다.  

대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칼스테이트 롱비치를 졸업한 후 방위산업체  노스롭에서 시니어  소프트 엔지니어로 일해왔다.  1984년  김영란씨와  결혼을 했다.  13년간 아이가 없었다.  그해  1997년 경남 김해의  방주원 보육원에서 당시  6살의 한나를 입양했다. 한나를 통해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고 부모의 역할과 부부의 신뢰를  되찾았다.  사랑의 맛을 본 김씨 부부는김해의 그 보육원에서   2002년 정민,  2005년 진영,  2006년 성근,  2010년 상훈,  재호를 입양해 정성으로 키웠다.  3년전에는  이곳에 입양됐으나 부모를 잃고 포스터 홈에 보내진  한인  레이첼양도 맡아  돌보고 있다.    모두 4남3녀를 둔 가장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보다 많은 아이들을 입양해 사랑을 주고 미국의 좋은 교육을 받게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세리토스에 있는 집을 계속  재융자를 통해 생활비를 메웠고 당연히 집 페이먼트가   올라가면서 일도 더 많이 했다.  오버타임을 자청해  몸에 많은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지난 3월14일   호주로 출장을 가서  4월4일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장 다음날인  15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갔다.  부인과  일곱자녀를  로스엔젤레스 세리토스에 남겨둔 채.

7자녀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소식에 모두 울음바다가 됐다.  대학 3학년의  큰 딸 한나는 슬픔속에서 동생들을 위로하고 있다.   10학년으로서 장남구실을 하는 상훈군은 아버지에게 못갚은 사랑과 그리움 때문에 넋을 잃고 있다. “부모님들처럼 우리도 결혼을 하게 되면 먼저 입양부터 하고 내 아이들을 낳을 것”이라며  “입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행복해 하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이다.   

로버트 오그번은  한국 미대사관 공보관이다.  한국명은 우창제.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위탁됐고  10개월될 때 미국으로 입양돼 미국동부에서 성장했다.  오그번은 입양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존스 홉킨즈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조지 워싱턴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도 복수전공을 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미국 국무부의 외교관 요직을 두루 거쳤고,  모국 한국에 공보관으로 부임해 일하고 있다.  지난주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가 칼로 피습을 당한 후 대사의 입이 되면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자신을 버린 나라를 위해 일하는 코리언 아메리칸이다.

로버트 레프스나이더.  1991년 3월26일생. 얼핏 미국이름이지만 한인이다.  서울에서 생후 5개월 만에  LA남쪽 라구나 힐즈의  미국부모에게 입양됐다.  독일계 아버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중학교,  고교시절에 야구리그에서 그는 줄곧 베스트 필더, 베스트 타자, 베스트 수비등의 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  로버트 레프스나이더를  호명할 때 그가 걸어 나오면  진행자들은 잠시 당황했다. 이름을 잘못 불렀나?  얼굴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에는 한국이 없고, 얼굴에는 한국이 없다.

그때마다 그는 큰소리로 답했다.  “Yes, it’s me!”  2015년 올해 양키즈 구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주 스프링 훈련을 마치고  양키즈 구장에서  팬들에게 선수들이 소개될 때 구장 어나운서와 팬들은 잠시 혼동됐다. 

메이저 리그 야구의 명문구단 양키즈에서 이번 시즌  세컨드 베이스맨으로 유력한  로버트 레프스나이더.  여섯살  때  평소부터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을  누나에게 물어봤단다. “우리는 왜  아빠, 엄마와 다르게 생겼지?”   3살 많은 누나는 동생에게 답해 주었다. “우리는 입양됐으니까.”  누나 엘리자베스도  로버트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양이 됐다.  로버트는 그의 본명이 김정태인 것도 알게 됐다.  그는 그때부터 미국인 부모들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그는 입양아  최초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로서 현재 수백만 미국 입양인들의 선망의 롤모델이다.   미국전체 입양인 가족의 대변인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나의 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고,  나도 그 선택에 따라 오늘에 이른 것을 감사한다.”

킴 페귤라.   1973년 5살때   서울의 한 길거리에 버려졌다.  한국에 있던 랄프 커, 메릴린 커 부부에게 발견이 돼  입양이 됐다.  로체스터, 버팔로 지역에서 양부모의 헌신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 호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1991년 천연가스 회사인 이스트 리소스 사에 입사하고 몇년 후 그녀를 면접했던 회사의  설립자 테리 페굴라와 결혼한다. 경제전문지 포브즈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억만장자중의 한사람이다.  테리 페굴라는 올해 메이저 풋볼 리그(NFL) 버팔로 빌즈를 구단 사상 최고 거래가격인  14억 달러에  인수했고 지난달 부인인 킴 페귤라를 공동 구단주로 영입했다.  NFL 구단 사상 최초의 여성 구단주.  한인 입양여성이다.   “그녀는 교양이 있으며,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다.”  주변사람들의 평이다. 그녀가 계속 서울의 길거리에서 컸다면?

미국 입양아들의 불행한 스토리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성공한 한인 입양아들, 그들을 키워주고 인정해준 미국인들이 대단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신음중인 로스엔젤스의  7명 입양한인들. 이제 대학과 고등학교, 초등학교, 중학교를 시작한 이들을 미국은 어떻게 키워낼까.  그리고 이 입양아들은 어떻게 시련을 이겨낼까.
김기철씨의 부인  김영란씨와  그 가족을 위해  기부 웹사이트가 마련됐다.  일단 5만달러 목표이다. 현재 약 2만달러가 모금됐다.  www.gofundme.com/kckim
LA통신 2015년 3월21일 김인종


김인종 밴쿠버조선일보 LA통신원
칼럼니스트:김인종| Email:vine777@gmail.com
  • 라디오 서울, KTAN 보도국장 역임
  • 한국일보 LA미주본사
  • 서울대 농생대 농업교육과 대학원 졸업
  • 서울대 농생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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