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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얼굴을 바꾸는 코리아타운 – 메트로 개발모델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5-02-12 16:05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 윌셔가.  고층건물들이  다운타운에서 산타모니카 바닷가 까지 이어지는  LA의 비즈니스 중심 거리이다. 이 윌셔가에서  로스엔젤레스 한국 총영사관과 마주하고 있는 건물.  오후  8시를 넘기면서 뒷쪽의 넓은 주차장으로  차들이 이어지고 백인에서 아시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젊은 선남선녀들이 발렛 파킹 의 서비스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다.  이건물안에 있는 럭셔리  노래방 손님들이다.

이 건물이 윌셔 갤러리아.  유서깊은 LA의  유적지 건물로서  건축가 마이론 헌트가  1940년대에 완성한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코리아타운 바깥의 유적지 건물들이 쇠락해 가고 있는 반면  코리아타운의 유적지 건물은 그 모습을 더욱 뽐내가고 있다.  유적지 건물들은 내부구조가  현대식  사용방식과  어울리지 않고 건물도 오래됐을 뿐 아니라  건물 보존에 에 따른 규제도  많아,  소유주는 건물 유지에 힘들어 하고  비즈니스는 입주를 꺼려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지역의 유적지 건물들은 대부분 빈 집으로 방치돼 있는 형편인데  ,  유독 코리아타운내에 있는 유적지 건물들은  잘 관리되고 그 안의 비즈니스들도 흥청흥청한다. 윌셔 갤러리아 건물도 원래  건축된 디자인대로 건물 바깥쪽 색을 그대로 (칙칙하게 보이지만) 유지해야 하고,  건물 내부의 조명도 파리 디자이너와 기술자들이 설치한 대로 간접조명을  원칙으로 한다. 여기 입주한 한인업소들과 한인들은 마이런 헌츠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비즈니스를 키워 나가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고풍스러운 갤러리아에  초현대식  나이트클럽이  입주해  밤마다  젊은이들이 붐비는 건물로 탈바꿈한 것은 코리아타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발전모델이라고  주류 언론들은  소개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고 철근과 번쩍거리는 유리로 된 고층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시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전진한다는 것이다.   다른  커뮤니티나 주민들이 포기하거나 잊어버리고있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개발해가면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무제한으로 뻗어가는 코리아타운 현상에 대해  LA시나 투자개발기업들이 경이로움을 표하고 있다.

코리아타운의  6가에 있는  채프맨 플라자(마켓)도  1928년 건축가 스타일즈 클레멘츠가 지은 유서깊은  스패니쉬  양식 건물이다.  용도폐기 상태에 있던 이 건물도 한인들이 접수하면서부터 현재  LA에서 가장 붐비는 식당,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스페인식 정원구조와 상가건물이 조화되면서  백인, 라틴계와 여러 동양인들이 몰려들어 소금구이에서 삼겹살,  스시롤과, 찻집, 소주타운이 엉켜진  붐타운을 형성했다.

LA시와  투자기업들은 코리아타운을  ‘제국의 전진’으로 표현하면서,  미래의  LA시 개발모델로 코리아타운을  연구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때려부수고 거대한 공룡 상가 건물을 지어나가는  개발이 아니고 ,  과거를 보존하면서 현대식으로 재생산된 개발이라는 것이다.  

로스엔젤레스 인구의  36%가  미국바깥에서 태어난 이민자들이다.  미국평균의  3배이다.  어린이들의  5%가  이민자이지만,  부모중 한사람이 이민자인 어린이들의 비율은 60%에 이른다.

와싱턴 DC등 미국정가가 이민정책으로 불법, 합법으로 치받고 싸우고 있는 가운데,  다른 주나 기업들은  한인등 이민자들이  세워가는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의  확장과 개발모델을 주시하고 있다.  LA타임즈 등 주요언론들은  이민자들로 구성되고  또 날로  다민족으로 인구구조가 변형돼가는 LA의 미래 발전모델을 찾는다면?  코리아타운을 보라는 것이다.  특히 코리아타운은 다운타운 다음으로 지하철 교통의  중심지역으로  떠오르면서  유동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LA 도시교통의 모델이기도 하다.  

19세기말 소수 장로교 한인들이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해 지금의 USC 캠퍼스 자리에서 터전을 잡으면서 코리아타운의 모태가 됐고,  1960년대 미국의 이민문호 개방과 함께 한인들의 대거 유입이 이루어 지면서  이지역의 확장이 계속됐다.  1980년대 한인사회가 당시  탐 브래들리 LA시장을 설득해  올림픽가  중심의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름을 커뮤니티에 걸게 되면서   코리아타운은  성장에 가속력이 붙었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인구구성은  라티노 52%,  한인 21%, 백인 7%, 흑인 5%의 비율이다.  백인 7%의 지역사회.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누가 이 지역에  관심이나  둘것인가.  개발기업들, 은행들, 정부, 투자자들은 헐리우드와 비치개발, 투자에만  열을 올렸었다.   그러나 코리아타운,  미국 주류인들이 버렸던  그 지역,   고색창연한 유적건물들을 보존,  발전기키면서  LA의 새로운 문화지대를  한인들이 일궈내고 있다.   많은 젊은 비즈니스 맨들, 대학생들이  코리아타운을 거주처로 삼아 유입되고 있고  떠났던 주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코리아타운은 이민 후세대,   탈교외거주 시대의 새로운 모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LA통신  2015년 2월 14일 김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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