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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도'국제시장'의 눈물을 나누며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5-01-09 17:20

카톡이 왔다.  화요일의 영화모임의 이번주 관람영화가'국제시장'이란다.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의 한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영화'명량'을 보고 실망한 기억이 있지만,  단체 관람으로 멤버들과 새해 인사도 겸할 겸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보면서 점점  젖어오는'그세대, 그시절'…  10년 정도 선배되는 홍박사는 두번째 보는 영화이면서도  또 연신 눈물을 흠친다.  부산출신이신 그는'국제시장'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얘기이고, 자신의 얘기란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국민학교'(우리는'초등학교' 세대가 아니다)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살던 영등포의 한 국민학교를 다니던  우리 국민학교 학생들은 그날  모두단체로  영등포 로타리로 집합했다.
“자유 통일 위하여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그날 베트남으로 파병되는 맹호부대'용사'(사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들이 군트럭에 잔뜩 탄 채 영등포 로타리를 지날 때 길가에 늘어선  우리 국민학생들이 조그만  주먹을 휘두르며 부른'환송'노래이다.  아직도 가사와 멜로디가 입에서 생생하게 맴돈다.  어떤 할머니는  군인들이 탄 트럭에  흰 손수건을 흔들며 연신 눈물지었다.  해병'청룡부대'가 파병(제일 먼저 파병됐던 부대로 기억)될 때도 우리는  동원되어 조그만 주먹을 흔들며  영등포 로타리에서  환송노래를  합창했었다. '귀신잡는 해병'이란 말을 알게 된 것도 그때이다.

우리 어린 국민학생들은 그때 이런 행사에 자주 동원됐지만 지금 생각해도'잘 동원됐다'고 여겨진다.  그후 많은 베트남 파병 장병들의 용맹스러운 전투소식과  함께 전사소식들도 전해지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베트남 파병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글도 읽게 됐다.

베트남파병으로 한국이 경제부흥의 첫 모멘텀을 가진 것을 필자는 확신한다.  당시 대학교를 다니던 한 삼촌은 현역사병 복무중 베트남을 자원해 갔으며 제대할 때 쯤에는 사업자금을 마련해서 돌아왔다. 

보급부대에 있었던 그는 미군이 전쟁에서 푸는 달러, 속칭'눈먼 돈'을 엄청 챙길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전쟁 무용담보다는'차떼기(보급차량 통째로)', '배떼기(보급선박 통째로)'로 미군의 물자를 현지나 한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넘쳐나는 재물의 현장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3년 목숨을 건 댓가로 많은 한국인들은 조상대대로 물려받던'찢어지게 가난한'저주에서 탈출하는 개인 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경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정을 확보했다.  삼촌은 베트남에서의 경험과 자본으로 큰 회사를 일구었다.  이 과정에서의 부정부패 얘기는 또 다른 시각에서의 얘기이다.  

이곳 로스엔젤레스 한 대형교회의 장로님은 그 당시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다.  그도 60년대 박정희 정권때  가족들을  그 지겨운 가난에서 건지기 위해 독일의 탄광으로 갔다.  독일인들이 하지 않는 위험한 석탄 채굴일에 박정권이  직접 나서서 한국인들을  용역 취업으로 보낸 것이다.  그들도 그곳 새까만  탄광 속에 몸을 던져,'한 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들이 쓰지 않고 먹지 않은 피와 땀과 눈물의 돈은 고국으로 송금돼  그 가족들은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었고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독일 탄광에서 목돈을 마련한 이 장로님도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체를 일구었고 지금은 3대가 사업을 이어가며 로스엔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끔직한 독재자로 낙인 찍힌 박정희대통령의  저돌적인 추진으로 이루어진 한 시대의'인고'의 모습이었다.  당시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대통령이  일부러 그 탄광촌을 찾아가  파견된 한국광부들과 눈물을 흘리며 만나는 모습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맹호부대, 청룡부대(백마부대도 파병됐었다), 독일탄광의 시대가 끝날 즈음, 필자의 형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뜨거운 사막의 나라 사우디 아라비아로 갈 결심을 한다.  어떤 전환점이 없으면 홀어머니가 지탱해온 가족을 일으킬 수가 없다는 사명감에서다.  이 역시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재벌들이 추진하면서 일어난  중동건설 붐을 타고 일어난 일이다.  형은 그곳에서  몇년을 고생하며 집으로 송금을 해오고,  그돈으로 우리 가족은 생전 처음 아파트라는'우리 집'을 마련하게 됐다.  

이런 모든 얘기들이(똑같지는 않지만)  영화'국제시장'에서 진행이 된다.  한국에서 개봉 16일만에 관객수가 7백만을 돌파하면서  어떤 이들은 또 이 영화에다가 보수, 진보의 잣대를 들이대며 폄하도 한다.  '변호인'영화는 욕하던 보수언론들이'국제시장'을  전폭적으로 띄운다고.   어느 시대나 '말하는(talk)'사람이 있고,  '사는(live)'사람이 있다.   '살려는'사람은 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공감이 가지만, '말하려는'사람에게는 기분나쁜 영화일 수 있다.

로스엔젤레스에서도 현재'국제시장'은 진행중이다.  영화로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이민 1세들은 힘겨운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고학력자들,  무경험자들, 생전 걸레질도 못해보던 사람들이   밤청소를  다니고,  말이 조경업이지  잔디깍고  나무치고,  말이 건축업이지 페인트하고, 지붕붙이고,  말이 요식업이지 식당에서 종업원하고…  이들  이민 1세대들의'피와 땀과 눈물과 수치'의   버팀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화려한  LA 코리아타운의 번영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한인2세, 3세들이 타운 고기집에서 백인, 히스패닉들과 영어로 쏼라대면서 자랑스럽게 술잔을 기울이는 광경도 없었을 것이다.

'말하면 공치사'이고,  그저 남자들 술자리 군대 얘기 정도로 취급받는 초기 이민자들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미국판'국제시장'으로 개봉이 됐으면.
LA통신  김인종  2015년 1월10일



김인종 밴쿠버조선일보 LA통신원
칼럼니스트:김인종| Email:vine777@gmail.com
  • 라디오 서울, KTAN 보도국장 역임
  • 한국일보 LA미주본사
  • 서울대 농생대 농업교육과 대학원 졸업
  • 서울대 농생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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