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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식한 미국놈들 믿지 마십시오”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4-12-23 11:19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된일이다. ‘인터뷰’가 개봉되지 않은 것은.

“이 무식한 미국놈들 믿지 마십시오” - 영화'인터뷰(Interview)', 북한의 소행으로 지목되는 사이버 공격으로 초토화된 소니 영화사의 웹사이트 인터뷰 포스터에 뜨는 자막이다. 이 포스터에는'전쟁은 시작될 것이다'라는 글귀도 나온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는 소니 영화사에 대한 사이버 공격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유산됐다. 인터뷰 영화를 개봉할 경우 개봉관들은 911식의 테러를 당할 것이라는 사이버 협박에 소니사가 두손을 번쩍들고 무조건 항복을 했다. 12월25일 개봉예정이었던 영화 인터뷰는 이세상에 없던 걸로 됐다.

소니사가 처음 사이버 공격을 받은 것은 지난 11월24일 이다. 소니 웹사이트 스크린 전면에 로스엔젤레스 소니회사건물을 배경으로 빨간색 번쩍이는 해골이 떴다. 3천8백만개의 소니사 서류파일이 해킹됐고, 제임즈 본드 영화등 5개 영화도 도난당했다. 사장단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직원들의 봉급내역, 개인신상정보도 모두 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정부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주 화요일 다시 해킹과 함께 협박이 들어왔다. “인터뷰 개봉관들은 테러를 각오하라” “영화관 근처 주민들은 대피를 준비하라”고. 겁먹은 소니사는'개봉취소'라는 전무후무의 결정을 내렸다. 법적으로 테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개봉을 한다면 만일의 사태에서 민사적 책임이 따를 수 있다. 총격위협 전화 한통에도 학교가 당장 휴교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헐리우드 영화계는 물론 미국민들이 왁자지껄하다. 사이버 허풍 공격에 미국기업이 놀아났다며, 소니의 줏대없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보수단체들은 헐리우드가 진주만 공격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며 사이버 공격도 전쟁행위로 간주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소니영화사가 일본기업인 줄 알았더니 미국기업이다). 협박 한마디에 헐리우드 영화사가 영화개봉을 취소한다면 앞으로도 전화한통이면 개봉영화들이 줄줄이 취소될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의 자랑,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위협이라며 여론이 부글부글한다.

인터뷰란 어떤 영화? 북한의 김정은을 인터뷰하러 갔던 미국기자와 프로듀서가 느닷없이 CIA에 포섭이 돼서 김정은 암살 공모에 끼어들게 되고 여기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엮어간 코미디이다. 영화는 웃길지 모른다(보지 않았으니 확실치 않지만). 그러나 북한은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과거 히틀러가 권력가로 떠오르기 시작할 때 그를 우화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와 비교하며 제작자의 용기를 격려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셋 로젠도 영화제작에 임한 소니 영화사의 담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 담력이 북한의 협박에 당할 수 있을까? 부자 몸조심 - '언론, 표현의 자유'같은 사치스런 말은 모두 제치고 하루아침에 꼬리를 내린 것이다.

더 놀란 것은 북한이란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사가 사이버 협박에 따라 영화개봉을 취소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해킹범죄 전문가들도 북한이 이번 사이버 공격에 연관되긴 했지만, 테러협박을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정부관계자도 미국민들에게 영화관을 갈 것을 권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정부당국은 북한이 외부전문가들을 고용해 이번 해킹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고, 북한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소득을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북한의 비슷한 위협은 많았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을 모두 폭파해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 “,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치 않을 경우 선제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등 북한 공영매체를 통한 구체적인 위협이 수시로 되풀이 됐지만 후속행동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위협은 북한이 공영매체를 통해 직접 언급하지 않고, 북한이 앞장세운 그룹들(가디언즈 오브 피스 Guardians of Peace)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약했었는데 헐리우드 영화사가 덜컥 무릎을 꿇은 것이다. 군사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본토에 대한 테러공격을 시도할 경우 당하게 될 엄청난 보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관 테러같은 것을 수행할 의사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쨋든, 다시 결론으로 돌아간다면 영화 인터뷰가 개봉 안된 것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다행이자 축복이다. 그 영화내용은 뻔하기 때문이다. 촌스럽고, 고집스럽고, 예절없고, 무지하고, 유치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한국인들(대부분의 동양인들은 미국영화에서 이렇게 묘사된다), 그리고 세련되고, 의로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미국인들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인이지만 그들도 같은 한민족이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들 볼품없는 동양인들을 놀려먹는 영화가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하는 동양인, 얼굴노란 한인으로서는 그들과 같이 앉아서 보기가 민망하다. 이곳의 한인 2세, 3세들은 이런 류의 영화를'동양인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차별적인 헐리웃 문화로 간주해 싫어한다.

미국대통령 오바마, 영국의 엘리지베스 여왕, 중국지도자 시진핑 등을 암살하는 내용으로 이런 코메디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교수의 지적대로 이 영화제작에는 미국인의'교만함과 무지함'이 깔려있다.

영화 인터뷰는 북한의 독재를 비난하자는, 의미있는 차원의 영화가 아니다.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힘없고 말못하는 한국인을 놀려먹는 영화이다. 그래서 개봉이 안된 것이 잘됐다.

LA통신 2014 년 12월 20일 김인종 LiveLA21@gmail.com


김인종 밴쿠버조선일보 LA통신원
칼럼니스트:김인종| Email:vine777@gmail.com
  • 라디오 서울, KTAN 보도국장 역임
  • 한국일보 LA미주본사
  • 서울대 농생대 농업교육과 대학원 졸업
  • 서울대 농생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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