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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8-01 15:22

한 겨울, 미리 모아 둔 땔감이 다 떨어지면 급하게 중대 인원 모두가 투입되어 눈 덥힌 산야를 다 뒤져 소나무 땔감을 구하곤 했었다. 땔감용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베어두고 난 뒤 한 동안 말려 두어야 땔감나무로 사용할 수 있지만 소나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말리지 않고 불을 지피면 불도 잘 붙지 않을 뿐더러 연기만 자욱해진다. 그러나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다르다. 흔히 알고 있는 송진은 마치 나무에 휘발유를 부어 놓은 것 마냥 나무를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다른 나무의 수액은 불을 지피는데 방해가 되지만 소나무의 수액은 불을 더 타오르게 만든다.

나무 줄기 뿐 아니라 파란 솔잎을 태워도 마찬가지다. 불이 잘 붙는다. 그러니 소나무는 항상 준비되어있는 장작인 셈이다. 그래서 한겨울 눈 속에서도 방금 베어온 소나무는 잎, 줄기 할 것 없이 모두 장작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소나무의 특성 때문에 내가 근무하던 부대 인근 일대의 산야에는 땔감으로 사용할 만한 소나무가 귀했다. 소나무 뿐 아니라 땔감 될 만한 나무들은 이미 베어지고 없는 민둥산들이었다. (지금이야 최전방 부대들도 좋은 보급품에 난방을 잘 갖춘 내무반이 구비되어있지만 90년대 초반의 최전방만 해도 땔감으로 난방과 온수를 해결하는 곳이 제법 되었다.)

정원일을 하다 보면 소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간혹 있다. 솔잎이나 잔 가지들은 보관하기 귀찮고 화력도 높지 않아 리사이클 사이트에 가져다 버리지만 땔감 될 만한 크기의 나무들은 톱질 한번 더 해 다음 캠프파이어를 위해 한쪽에 꼭 쌓아둔다.

불만 잘 붙는 게 아니고 특유의 소나무 향도 무척 좋다. 솔잎 향이 나는 음료수의 독특한 향처럼 소나무가 타는 냄새 역시 독특한 소나무만의 향이 있다. 타는 소리도 좋다. 톡. 톡. 톡. 타오르는 불꽃은 그 독특한 소나무 향만큼이나 매력이 있다. 그래서 끈적끈적 달라붙는 송진이 손이나 옷에 묻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나는 땔감나무 중에는 소나무 땔감을 제일 좋아한다.

처음으로 커다란 소나무를 땔감으로 쓰기 위해 베어오라는 명령을 받은 이등병이었던 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내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나보다 수십 년은 그 자리에서 더 살아왔을 것 같은 소나무였다. 그것은 살생이었다.

지금은 소나무의 가지도 아무 미안함 없이 잘라낼 수 있고 불필요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가 있다면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지 않고도 베어낼 수 있다. 이렇듯 처음의 아팠던 마음도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며 단련이 된다.

쌓아둔 소나무 땔감을 쳐다보다 문득 감정에 굳은살을 쌓아가며 나이 들어가는 내가 보인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Andy's Landscape 대표
www.andyslandscape.ca

앤디의 조경 이야기

칼럼니스트:앤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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