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예순두 번째 이야기 – 천주교를 믿으면 캐나다의 원수가 될 수 없다?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6-18 02:12

2003년 온타리오 고등법원에 흥미로운 소장 하나가 들어왔는데요. 원고는 토론토 시의원을 지냈던 토니 오도노휴 (Tony O’Donohue) 씨였습니다. 그는 1701년 영국의회가 제정한 왕위계승법 (Act of Settlement) 이 캐나다의 인권자유헌장 (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 을 위반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법원의 확인판결 (Declaratory Judgment) 를 신청했습니다. 


도대체 왕위계승법이 무엇이길래 오도노휴씨는 이러한 소장을 제출한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입니다. 또한, 입헌군주제 (constitutional monarchy) 를 택하고 있지요. 캐나다 헌법을 이루는 많은 법 중 하나인 1867년 헌법 (The Constitutional Act, 1867) 의 서문을 보면 “캐나다의 주(州)들은 영국의 국왕 아래 하나의 자치령으로 연합하고자 한다” (“... to be federally united into One Dominion under the Crown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즉 캐나다의 원수 (head of state) 는 영국의 국왕이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사실은 1931년 영국의회가 웨스트민스터 헌장 (Statute of Westminster) 을 통해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의 국가에게 영국본토와 대등한 지위를 부여했음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캐나다의회는 1953년 Royal Style and Titles Act라는 법을 통해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캐나다의 여왕을 겸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지요. 


흥미로운 것은 1701년 영국의회가 제정한 왕위계승법에 따르면 영국의 국왕은 반드시 신교도 (Protestant) 여야 하며 특히 천주교를 믿거나 천주교도와 결혼을 한 사람은 제외된다는 것입니다.


1685년 영국의 왕이 된 제임스 2세는 천주교도로 신교도를 매우 박해했는데요. 영국의회는 1688년 그를 추방하고 당시 네덜란드 총독이던 윌리엄과 메리 부처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이 사건을 명예혁명 (Glorious Revolution) 이라고 하지요. 이때 영국의회는 새로 왕위에 오른 윌리엄과 메리에게 그 유명한 권리장전 (Bill of Rights) 을 승인받아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미래에 천주교도가 영국의 왕위에 올라 신교도를 박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위계승법을 제정하였지요.


문제는 이 법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인데요. 300년 전에 제정된 왕위계승법, 그리고 영국와 캐나다의 남다른 관계 때문에 법적으로 천주교도는 절대로 캐나다의 원수가 될 수 없다는 특이한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오도노휴씨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국의 왕위계승법이 평등권을 보장하는 캐나다의 인권자유헌장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2003년 온타리오 고등법원은 재판을 할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도노휴씨의 소송을 기각했고 온타리오 항소법원은 2005년 고등법원의 판결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항소법원은 캐나다의 헌법에 따르면 영국의 국왕이 곧 캐나다의 원수이기에 입헌군주제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영국의 왕위계승법이 캐나다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며 왕위계승법은 위헌 검토대상 (Charter scrutiny) 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오도노휴는 Citizens for a Canadian Republic 이라는 비영리 단체의 회원이었는데요. 이 단체는 영국 국왕이 아닌, 민주적으로 선출된 캐나다 시민이 캐나다의 군주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단체입니다. 즉 오도노휴씨의 소송도 이러한 주장의 일부였던 것이지요.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