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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번째 이야기 – 플레잉 카드를 파는데 허가를?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6-03 15:25

흔히 트럼프라고 부르는 플레잉 카드 (playing card) 는 도박성 놀이에 이용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즐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 도구 중 하나입니다. 


플레잉 카드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요.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9세기 당나라 왕실에서 이미 비슷한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가 흔히 서양 놀이라고 생각하는 카드의 기원이 중국이었다니 흥미롭습니다.


플레잉 카드가 유럽으로 전파된 것은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인데요. 원정을 나갔던 십자군 또는 유랑하던 집시가 아라비아의 사라센인을 통해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유럽에 전파된 카드는 꽤 큰 인기를 끈 모양인데요. 처음에는 손으로 한장 한장 그렸지만, 나중에는 목판 인쇄와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대량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서 많이 만들어진 카드는 영국으로 대량 수출되었는데 이 때문에 영국은 한때 카드 수입을 금지하기도 하고 높은 관세를 매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카드놀이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영국 최고의 전성기를 일군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사람들이 카드놀이에 빠져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카드놀이를 규제하기 위해 허락 없이 카드를 수입, 생산,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한 사람에게 카드무역에 관한 독점권을 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독점금지법 (antitrust law) 과 경쟁법 (competition law) 분야에 가장 고전이 된 Darcy v. Allein 이라는 판례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599년 영국의 카드무역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에드워드 다시 (Edward Darcy) 였는데 그는 이 권리를 위해 해마다 요즘 돈으로 $16,000에 해당하는 100 마크를 왕실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 카드를 파는 사람을 발견하고 소송을 걸었는데요. 바로 토마스 알레인 (Thomas Allein) 이라는 바느질도구 판매상이었습니다. 


다시의 허락 없이 180 그로스 (1그로스는 12다스, 즉 144개) 의 카드를 거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알레인은 오히려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정한 독점법이 부당하다고 맞섰습니다. 그는 독점은 상인을 게으르게 할 뿐 아니라 상품의 가격을 올리고 품질을 조악하게 만드는 나쁜 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알레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부여한 독점권은 무효라고 판결했지요. 


이 판례는 독점에 관한 심도 있는 법적 토론 때문에 법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훌륭한 교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혹자로부터는 당시 영국 왕실과 법원, 그리고 의회의 권력다툼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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