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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네 번째 이야기 – 멋쟁이 신사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4-22 19:2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기꾼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1919년 영국의 1심 법원 (King’s Bench) 에서 판결한 Phillips v. Brooks Ltd. 라는 재판은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18년 4월 15일 필립스 (Phillips) 라는 사람이 운영하던 보석상에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조지 불로우 경 (Sir George Bullough) 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당시 조지 불로우 경은 영국에서 꽤 잘 알려진 이름이었는데요. 그의 할아버지인 제임스 불로우 (James Bullough) 는 1851년 영국 북서부의 애크링턴 (Accrington) 이라는 도시에서 “하워드 앤 불로우” (Howard & Bullough) 라는 면직물 제조용 기계설비 제조회사를 차렸고 이 회사는 당시 영국의 섬유산업 호황에 힘입어 52에이커 규모의 공장에 6,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조지 불로우 경은 이복동생인 아이언 불로우 (Ian Bullough) 와 함께 각각 하워드 앤 불로우 지분의 50%를 상속받아 당시 영국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 되었지요. 


자신을 조지 불로우 경이라고 소개한 신사는 그 유명세에 걸맞게 무려 3,000파운드어치의 진주장신구와 반지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수표를 써주었습니다. 


당시 필립스 씨는 조지 불로우 경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얼굴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요즘처럼 방송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니 그럴 만도 하지요. 신사는 자신이 조지 불로우 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 런던 최고의 부촌인 세인트 제임스 광장 (St. James Square) 에 위치한 자신의 주소를 주었습니다. 전화번호를 뒤져 그 주소에 조지 불로우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필립스 씨는 신사의 말을 믿고 수표를 받았습니다. 


수표로 계산한 신사는 매너 있게 구매한 물건들을 다음에 가져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지만은 그 다음 날이 아내의 생일이라 어쩔 수 없이 당장 가져가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는데요. 큰 부자를 고객으로 만들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요? 필립스 씨는 흔쾌히 승낙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예상하시겠지만, 이 신사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반지를 가지고 나간 그는 곧바로 브룩스 사 (Brooks Ltd.) 라는 전당포에 들려 반지를 맡기고 350파운드를 받아 도망갔지요. 


수표가 부도 처리되자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필립스 씨는 브룩스 사에게 자신의 반지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 근거는 자신이 반지를 판 사람은 조지 불로우 경이기 때문에 그 신사의 신원이 거짓인 이상 계약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지의 소유권은 아직 필립스 씨에게 있다는 것이었지요. 


법원은 이러한 필립스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필립스 씨가 계약을 한 사람은 조지 불로우 경이 아니라 그 신사였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이러한 법원 판결에는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필립스 씨가 물건을 판 사람은 “자신이 조지 불로우 경이라고 주장하는 잘 차려입은 신사”였을 뿐 실제 조지 불로우 경이 아니었으니까요.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이후에도 많이 발생하였고 적용되는 법도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법보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아닐까요?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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