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 – 헐가에 건진 대가(大家)의 그림?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3-18 16:14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이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로 주로 풍경화를 많이 그렸지요.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컨스터블도 살아있을 때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38살까지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고 52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왕립 아카데미 (Royal Academy) 정회원이 되었지요. 하지만 1837년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작품들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20세기가 되어서는 윌리엄 터너 (William Turner) 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의 대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컨스터블은 명성만큼이나 위작(僞作)이 많기로 유명한데요. 컨스터블의 위작에 관한 유명한 판례로 1950년 영국 항소법원에서 판결한 Leaf v. International Galleries 라는 재판이 있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원고인 리프 (Ernest Louis Leaf) 씨가 1944년 3월 8일 인터내셔널 갤러리 (International Galleries) 에서 솔즈베리 대성당 (Salisbury Cathedral) 이 그려진 그림 한 점을 구입한 일이었습니다. 갤러리 측은 이 작품이 컨스터블의 진품이라고 주장했고 리프 씨는 그림값으로 85파운드를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5년 후 이 그림을 팔기 위해 크리스티 경매 (Christie’s auction house) 를 찾은 리프 씨는 이 그림이 가짜라는 판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리프 씨는 인터내셔널 갤러리를 고소하고 계약의 해제와 환불을 요청하였지요. 


계약의 해제 (rescission) 란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을 되돌려 계약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리는 것으로 당사자의 합의나 법적으로 중요한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 소송의 판결을 맡은 데닝 판사 (Lord Denning) 는 인터내셔널 갤러리가 그림을 컨스터블의 진품이라고 주장한 행동에 악의가 없었다고 판단하고, 악의없는 부실표시 (innocent misrepresentation) 는 계약 해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리프 씨가 한 번도 그림이 진품인지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해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이 판례를 읽는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하는 것 중 하나는 어떻게 리프 씨가 85파운드를 내고 그림을 사면서 컨스터블의 진품이라고 믿을 수 있었는지 하는 것인데요. 당시 85파운드면 오늘날 2,900파운드 (약 CAD $4,500)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고 하니 그렇게 적은 돈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1944년이면 영국이 한창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을 때라 그림값이 떨어질 데로 떨어진 상태였지요. 아마 리프 씨는 그림을 사면서 대가의 작품을 헐값에 건졌다고 쾌재를 불렀을 텐데요. 그림이 가짜라고 밝혀졌을 때 리프 씨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