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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아메리칸 시네마(New American Cinema)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7-03 00:00

1960년 후반이 되면서 미국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물론 월남전이었습니다. 64년에 시작된 월남전은 끝나기는커녕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 되고 젊은이들은 큰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마약에 빠지고 또 어떤 이들은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피가 되어 기존의 모든 가치와 질서를 우습게 여깁니다. 거리에 몰려나와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과격해집니다. 그리고 <케네디>가 죽고, <마틴 루터 킹>이 죽고, <바비>마저 죽게 됩니다.
영화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한 때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시장은 TV가 나타나고 미국인의 생활패턴이 바뀜에 따라 내리막 길에 접어든지 오래고, 관객들도 대형 영화사들이 벽돌 찍듯 찍어내는 공장영화에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상태, 무언가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뉴 아메리칸 시네마>였던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미국 영화는 대량생산의 분업화가 잘 이루어진 공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각 분야를 잘게 나누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 자기 일을 해서 조각을 만들면 그 조각을 잘 맞추어 영화가 나오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른바 메이저 영화사의 직원이었고 모두 전속계약을 하고 일을 했습니다. 무슨 영화를, 누가 만드는지는 오직 영화사 사장의 결정사항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스튜디오 시스템이라고 부르는데 영화사들이 한참 잘 나갔던 1940년대, 메이저 영화사 중에 하나였던 파라마운트 영화사에는 감독 13명, 배우 131명, 카메라맨 52명, 전기 기술자 283명, 음악연주자 103명, 정원사 3명, 미용사 27명 등 모두 3000여명의 종업원이 있었다고 하니 공장 치고도 꽤 큰 규모의 공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일련의 젊은 감독들이 이러한 영화제작 패턴에 반기를 들고 영화사 사장이 아니라 감독이 중심이 된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배경에는 영화학교도 한 몫 합니다. 1960대 미국에는 로스앤젤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영화학교가 생기게 되는데 그 영화학교를 졸업한 젊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영화시장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이들은 그저 관객의 흥미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가 있고, 생각과 사상이 들어있는, 그리고 그 전개방법도 나름대로 독특한, 그런 영화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는 조금 어려워지고, 심각해지고, 또 조금은 지겨워집니다.


또한 배우들도 그저 미남 미녀가 아닌 이른바 성격파 배우가 나오면서 실제 우리 삶과 비슷한 모습을 영화 안에서도 보여줍니다. 이 전까지의 배우들은 한번 배역이 정해지면 거의 배우 생활을 그만둘 때까지 그 이미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신성일은 죽을 때까지 신성일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새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영화마다 다른 전혀 다른 사람을 연기했고 때문에 겉 모습 보다는 내면의 연기가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 때 나온 배우가 바로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 <피터 폰다>등이 있습니다.


그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우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졸업>,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five easy pieces> 등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원래 제목은 <Bonnie and Clyde>라는 실존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인데 일본에서 개봉하면서 붙인 제목을 우리도 그대로 쓰면서 영 엉뚱한 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일은 아주 많습니다.


이 영화들이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저는 이 영화들은 한 묶음으로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영화들은 10초짜리 액션 씬 하나에 몇 십억씩 쏟아 붇고 있는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와는 전혀 다르며, 그렇다고 감독 말고는 아무도, 심지어는 출연하는 배우조차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예술영화와도 전혀 다릅니다. 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전통은 계속 이어지다가 마침내 <스티븐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을 장악하면서 그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뭐 더 복잡한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 같구요, 시간이 나는 대로 위에 말씀 드린 영화들을 하나씩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들은 그저 한번 보고 마는 영화가 아니니 제 소개가 나가기 전에 미리 예습을 해두시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미리 한번 보시고, 제 별 볼일 없는 설명 들으시고 한 번 더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과연 이 영화들이 비디오 가게에 있을까 그게 의심스럽군요. 뭐 뒤지면 나오겠지요. 그럼 이번 주 무책임한 소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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