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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을 찍으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27 00:00

지난 주, 큰 아이의 ‘프롬’ (고교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파티)이 있는 날, 온 가족이 옷을 갖춰 입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늘 적자에 허덕이는 우리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스투디오 가족사진을 다양한 포즈를 잡으며 1시간 가량 찍었다. 온 가족이 사진 찍는 과정 그 자체를 즐겼다. 사진작가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부족한 ‘웃음’을 온 얼굴 가득 머금게 한 후 생동감 있는 사진을 만들어 냈다.


올해 큰아이가 떠나고, 내년에 둘째가 떠나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족이 함께 모여 사진찍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마련한 기회였다. 아마 큰 아이가 결혼을 할 무렵, 혹은 남편이 회갑을 기념할 즈음이라야 온 가족이 이런 사진을 또 찍게 되지 않을까. 이 사진들, 환하게 웃는 행복한 가족사진들을 아이의 유학길 사진첩에, 기숙사 책상 위에 놓을 액자에도 넣어줄 것이다. 세 아이가 나란히 예쁜 얼굴을 내민 사진 하나는 우리 자동차에 놓을 작은 액자에 넣고, 온 가족이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소곤대는 기분 좋은 사진은 열쇠고리에 넣을 작정이다. 외국 나간 딸의 얼굴에 생긴 기미를 보고 가슴이 아파 몇년째 좋은 한국산 화장품들을 보내주시는 친정엄마에게도 이 환하게 웃는 사진들을 한 세트 보내드릴 생각이다. 이 사진들은 무엇보다도 한창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편에게 웃을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사진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또 특정 사진을 보고 각 개인이 나타내는 반응은 한 사람의 심리의 반영이기도 하다. 어떤 사진을 어떻게 해석하며 그것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연상해내는지, 그리고 사진의 재구성이나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기도 한다. 사진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기도 하며, 사진이 사람의 마음 속에 든 여러가지 생각 속에서 한가지 방향의 생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금은 명랑하기 짝이 없는 큰 아이가 여드름이 난 자신의 검은 피부를 보기 싫어할 때 그 아이는 자신의 Go Card(학생증)에 나온 자기 사진을 검은 매직으로 까맣게 칠해 없애버렸었다. 어느날 빨래하다가 우연히 그 학생증을 발견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둘째는 아직도 사진찍히기를 싫어한다. 사진에 나온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 일이 거의 없다. 웃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을 힘들어 한다. 정면으로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 뒷모습이나 옆모습은 그리기가 쉽다.

어떤 사람은 여러사람이 있는 사진에서 자기 얼굴을 뜯어내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녹음기로 듣는 내 목소리 만큼이나 생경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에 안드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아가 건강한 사람이다.


사진을 통해 즐거운 기억 혹은 고마운 기억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매일매일 그저그런 나날의 연속인 가족 생활 중에서, 놀러갔다가 찍은 사진, 아이들이 재롱떨때 찍어놓은 사진들, 가족이 차려입고 찍은 가족사진, 온 가족이 깔깔대는 행복한 사진들은 우리에게 가족으로 인한 감사한 시간들을 기억나게 한다. 늘 부모의 사랑으로 목이 말라하는 심통꾸러기 아이에게는 부모와 함께한 그 아이의 어린시절 사진들을 가득담아 포스터를 꾸며 그 아이 방에 놓아줄 수 있다. 잠 안오는 심심한 시간에 포스터에 담긴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았구나’, ‘나 어릴 때는 꽤 귀여웠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조금씩 부모의 사랑을 향해 마음문을 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가족에게는 가족사진이 아픔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군가가 빠져버린 가족사진을 감추기 보다는 그 사진을 놓고 다른 이에게 나의 삶을 담담히 말해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가족의 상처를 딛고 성숙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리라. 부모자녀가 모두 포함된 가족사진이건, 그 중 누군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한 가족사진이건, 그 사진 한장이 있기 위해 수고해 온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감사하고 더 깊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지난 주에 찍은 우리 가족사진이 이제 곧 성인으로 독립해나갈 큰아이와 둘째아이의 삶에 큰 의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았던 십수년의 기억들에 힘입어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의 기억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자기의 자식을 낳고 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간다. 그래서 가끔은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가족사진을 찍어 가족 모두가 나눠가질 수 있으면 한다. 고단한 삶 가운데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사진 하나를.


필자 조은숙
석세스에서 가족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가족학 박사,  BC주 Registered Clinical Counsellor, Univ. of Wisconsin정신과 연구원 역임


심리상담은 개인적, 가족적 문제를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석세스에서는 비밀이 보장되는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며, 저소득층에게는 저렴한 상담비가 적용됩니다 (상담신청 604-468-6100).  청소년 진로탐색 그룹 7월모임에 관심있는 세컨더리 및 대학생 그리고 부모님들을 초대합니다 (7월2일  6:30pm 석세스 트라이시티 서비스 센터, 초대손님: 현직 엔지니어들) 문의 및 등록전화 (604-468-6100) 위 프로그램은 United Way, 한인신용조합과 한아름마트의 지원으로 운영됩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칼럼니스트:조은숙
  • 석세스의 가족지원 및 심리상담프로그램 담당자
  • 김은주/써니윤
  • 영유아발달 프로그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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