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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 캐나다 방송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19 00:00

지난 번에 잠깐 말씀 드린 대로 한국 방송은 굉장히 독특한 방송입니다. 독특하다는 표현은 너무 좋은 표현 같고 차라리 이상한 방송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이상한 점을 일일이 들자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사실, 독특하다는 것은 나쁠 것이 없지요. 그러나 그 독특함이 아무 근거도 없고, 또한 좋은 쪽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 그 것은 독특한 것이 아니라 해괴한 것이지요.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굴곡 속에서 이상하게 삐뚤어지고 엉클어진 방송이 제 자리를 잡을 기회를 노치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방송 전체적인 큰 구조에서부터 시작해서 각각의 방송국 안의 제작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방송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합니다.


MBC 같은 애매모호한 형태의 방송국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른바 PD라는 직책은 한국 방송 말고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PD라는 이름조차, 우리 만 쓰는 말입니다. 분명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있지도 않은 말이고, 그 말이 무엇의 줄임 말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몇 가지 추측 만이 있을 뿐입니다.
광고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 쓰는 돈의 절반이 넘는 공영방송은 지구상에  KBS 말고는 아무 데도 없으며, 한국방송처럼 드라마를 많이, 그리고 빨리 만들어내는 나라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하기는 드라마를 방송국이 직접 만드는 일 자체가 아주 드문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3년 전 캐나다에 와서 방송을 보니 뭐 이런 방송이 있나 싶고, 여기 희한한 방송이 하나 더 있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특별이 캐나다 방송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 캐나다 방송, 그러니까 TV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입니다.


일단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미국방송인지 캐나다방송인지 처음 보는 사람은 알 길이 없습니다. 캐나다 방송에서 틀어대는 미국방송의 비율이 대강 생각해도 반은 분명히 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미국 광고를 그냥 틀어댑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나라 방송을 틀어대는 무신경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자체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하루에 적어도 3번은 재방송을 합니다. 뉴스가 대표적이지요. 한 시간도 아니고 30분 간격으로 같은 뉴스를 계속 틀어댑니다. 정말 <와!>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기가 막힐 때 나오는 감탄사이지요. 거기에다가 방송사고는 얼마나 많은지….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나고, 담당자는 시말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징계를 받을 만한 방송사고가 수시로 터집니다. 그 방송사고가 나는 프로그램을 고치지도 않고 30분 간격으로 계속 틀어대는 강심장은 정말 대단합니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채널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입니다. 몇몇 채널은 하루에도 방송국이 몇 번 씩 바뀝니다. 금방 이 방송 프로그램을 했던 채널이 어느새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을 버젓이 틀어댑니다. 가끔씩이지만 채널 안내 프로그램과 실제 방송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입니다.

뭐 이건 굳이 방송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믿음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날씨채널의 일기예보는 점쟁이 수준보다 나을 것이 별반 없어 보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분명 어제 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 밖은 햇볕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 이 무슨…


처음에는 캐나다 방송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익숙지 않은 중간광고가 그 짜증에 계속 기름을 부어댔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봅니다. 그러니까 좀 편안해지는군요. 아마도 대부분 캐나다 사람들은 이미 다 포기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기대 같은 것을 안 했는지도 모르지요. 그것도 아니면, 아마도 방송이 어떤들 무슨 상관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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