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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방송이란 무엇인가?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6-06 00:00

새로 글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시작할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하고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캐나다하고도 밴쿠버에 사는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과연 방송이란 무엇일까?

방송이라 하면 크게 TV와 라디오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대체로 TV를 말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텔레비전을 얼마나 보시는지 궁금하군요. 한국방송을 주로 보시는지 아니면 캐나다 방송을 주로 보시는지는 더 궁금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방송이나 캐나다 방송이나 둘 다 참으로 해괴한 방송이라는 것입니다. 한국방송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캐나다 방송도 해괴하기가 만만치 않더군요. 물론 그 해괴함의 종류가 다르기는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방송을 전혀 보시지 않는 분들에게 한국방송 이야기를 아무리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테고, 캐나다 방송을 보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캐나다 방송 이야기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저 방송, 특히 텔레비전이란 대체 어떤 물건인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 같나요? 전 그런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오래 보면 바보가 됩니다. 요즘 사람치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테고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어느 만큼은 모두 바보입니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를 뿐이지요.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아침이 되면 각자 할 일을 찾아 나갔다가 해가 지면 모두 집에 모입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이 다음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저녁을 먹고, 그 다음은 텔레비전을 봅니다. 물론 최근에는 이 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서 저녁을 먹고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하지요. 컴퓨터, 특히 인터넷은 이제 모든 것을 빨아먹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하튼,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저녁을 먹고 무언가 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던 간에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와 비교를 해보면, 분명한 것은 더 생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가족끼리 모여서 이야기라도 했겠지요. <하다못해>가 아니라 그 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텔레비전이 없는 생활에 대한 많은 실험이 있습니다. 대체로 몇몇 가구를 대상으로 한동안 텔레비전이 없이 생활하게 하고는 그 결과를 보는 것이지요. 많은 실험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대체로 일치합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가족사이의 관계가 훨씬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아무래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훨씬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장 오늘부터 텔레비전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하다못해 책이라도 보겠지요. 아니면 영화구경을 하거나 음악회라도 가게 되겠지요. 어느 하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보다 더 나쁜 일은 없습니다. 매일 저녁 나가서 술을 마시기 전에는 말이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오히려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남들은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나쁜 것은 알지만 하는 수 없이 해야 하는 많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하기야 세상사, 뭐 그렇게 유별나게 살면서 피곤해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방송국 밥을 먹던 때에도 지금 했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미친놈 취급을 하더군요. 제 밥줄 떨어지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고요. 그러나 제가 텔레비전이 가져다 주는 해악을 말한다고 해서 세상에 텔레비전이 없어질 리는 만무하고, 전 그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텔레비전을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가려서 보자는 거지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뭐 이런 소리가 있는데 텔레비전을 아예 안 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그나마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 보자는 겁니다. 물론 좋은 프로그램은 아주 많습니다. 찾아보면 말이지요.  그걸 찾으셔야 합니다. 그걸 찾기 조차 귀찮으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여하튼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을 줄이십시오. 인터넷을 하는 시간도 줄이십시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에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쉬운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세요. 텔레비전을 줄이고 인터넷을 줄이면 무엇을 할까?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사는 일, 그리고 방송 혹은 영화
글쓴이 배인수는 1959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칼럼니스트: 배인수 | Tel:604-430-2992 | Email: bains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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