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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비빌 언덕’은 어디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9-05-30 00:00

캐나다의 이민제도는 점수식이어서 영주권신청이 다 통과되고 나면 마치 대단한 시험에라도 합격한 듯 뿌듯함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뿌듯함도 잠시, 이민자로 생활하다보면 이민자는 역시 이민자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민자가 되면서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쌓아온 자신의 인맥과 평판이다. 이민이란 과거의 삶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이민자는 상실감을 안고 산다. 나의 소중한 일부를 완전히 과거 속에 묻어야만 하는 상실감 말이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부모로서 자식에게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줄만한 것이 많았다. 누구누구네 자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줄 수도 있었다. 대학생활과 취업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생활 등 아이들이 겪을 미래에 대해 손바닥보듯이 훤히 안다. 그러나 이민자가 된 후로는 그렇지가 않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국에서의 삶,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이 사회, 이런 면에서 이민 1세대인 우리들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한국 부모들의 영향력은 대학진학에 성공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성적을 관리해주는 것, 거기까지 뿐이다.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학벌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 학벌이란 한 사람이 갖출 수 있는 많은 조건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좋은 학벌이 좋은 미래를 보장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학벌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것이 인맥이다. 북미대륙에서도 인맥이 중요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곳에서는 인맥이라는 말 대신에 고상하게 네트워크(network)라고 부른다. 네트워킹에서 밀리면 교수가 된 다음에도 프로젝트팀을 구성할 때 밀리게 되고, 좋은 학벌과 실력을 가지고서도 승진에서 밀린다.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을 가지더라도 자기들만의 네트워킹을 통해 공유되는 고급정보들에서 뒤쳐진다.


밴쿠버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한국사람 귀한 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가장 편하게 비빌 언덕은 결국 이 한국 사람들 안에서 만들어져 나와야 한다. 얼마전 북미 한인 과학기술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수학과학 경시대회 시상식에 참관한 적이 있다. 그 경시대회는 공부잘하는 아이를 상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대회를 통해  북미전역의 재능있는 아이들이 한인 과학기술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하기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 사회를 먼저 살아나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건강한 교류의 장이었다.


지난 5월부터 석세스에서는 한인청소년들과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1.5세 혹은 2세 직업인들이 서로 대화하며 진로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 ‘청소년 진로탐색 그룹’을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씩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다. 한인 1.5세 2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C3 Society에서도 YouthCanLead라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홍보에 들어갔다. 한인청소년들이 각 분야의 직업인들과 일찍부터 연결되어 자신의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낯선 이국 땅에서 비빌 언덕이라고는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없이 소중한 네트워킹의 기회라고 할 것이다.


지난 5월 초에 첫 진로탐색 그룹을 했는데 부모그룹을 통해 홍보가 잘 되어 스무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참가했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의 자발적 의지 보다는 부모들이 강권해서 온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별로 적극적으로 그룹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또 다른 학원 프로그램에 오는 심정으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진로탐색 그룹을 왔다.


이것이 한국 아이들의 현주소다. 성적은 좋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힘으로 알아보고 계획하려 하지 않는 타율적인 자세. 우리는 이제 여기서 시작한다. 이 그룹을 통해 현재 9학년 10학년인 아이들이 대학생과 청년 직업인으로 자라면서 독립적인 한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후배들을 끌어줄 수 있는 성숙한 코리언 캐네디언으로 성숙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필자 조은숙
석세스에서 가족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가족학 박사,  BC주 Registered Clinical Counsellor, Univ. of Wisconsin정신과 연구원 역임


심리상담은 개인적, 가족적 문제를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밀이 보장되는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받으세요. 저소득층에게는 저렴한 상담비가 적용됩니다(상담신청 604-468-6100). 석세스 아동가족부에서는 한인 가족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녀의 돈관리 교육(6월2일), 청소년 진로탐색 자조그룹 6월모임 (6월2일  6:30pm 코퀴틀람 Poirier Library, 초대손님: 현직 약사들), 세컨더리 학부모 길라잡이(6월8일). 문의 및 등록전화 (604-468-6100), 자세한 내용은 밴조선 웹사이트 ‘커뮤너티 캘린더’를  참고하세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칼럼니스트:조은숙
  • 석세스의 가족지원 및 심리상담프로그램 담당자
  • 김은주/써니윤
  • 영유아발달 프로그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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