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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진리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5-08 00:00

그러면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 진술, 주장, 관념, 범주 등은 무조건 쓸데없는 것인가? 이 물음의 답으로 나가르주나의 '두 가지 진리'라는 가르침이 등장한다. 한문으로는 '진속이제(眞俗二諦)’라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param?rtha-satya와 sa?v?ti-satya'라 번역하고, 요즘말로 고치면 '궁극적 진리(ultimate truth)와 일상적 진리(conventional truth)’라 할 수 있다.

나가르주나의 가르침을 보자. 우리가 책상을 보고 '반질반질하다'고 하는 진술은 궁극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 아니다.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우리는 절대로 '반질반질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가? 울퉁불퉁한 책상과 비교해서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책상을 만지면서, "아, 정말 반질반질하구나!” 하고 말하는 것은 무명에서 나온 어리석은 진술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으로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나가르주나는 이 경우에 한 "반질반질하다"는 말은, '일상적 진리'에 해당하며 일상사라는 구체적인 맥락에서 구체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방편(方便)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 진리가 진리의 전부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일상적 진리는 궁극적 진리로 인도하기 위한 전 단계여야 한다. 나가르주나는 말했다. "일상적 진리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궁극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고, 궁극 진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MK, XXIV, 10)

누가 석양을 보며 "아, 이제 해가 떨어지는구나!” 하는 소리를 했다고 우리는 그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며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지구가 해의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거야." 하면서 그를 나무라지는 않는다. 비록 석양이 해가 떨어지는 것과 상관없이 오로지 지구의 자전에 의해 생길 뿐이라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일상사에서 "해가 떨어진다"는 말은 시간을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 석양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표현으로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고, 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이 "해가 떨어진다"는 말을 쓰는 것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문자적 절대성을 고집하며 그 말을 쓰는 것은 천양지차다. 지구의 자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해가 떨어짐' 자체를 궁극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물에 대해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의 입장으로 보면 절대적 타당성을 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일상적인 표현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기며, 거기에 집착하는 일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르주나는 말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의 가르침은 두 가지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일상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진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의 바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일상적 지혜의 말'과 '성령의 말'을 구별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에 속한 궁극적인 일들은 성령의 말에 의해 촉발된 영적 안목으로만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2:13-14)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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