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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의 비교 문제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5-09-12 00:00

종교간 대화를 위한 불교 이야기(2)

철수네 집은 밥 먹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음식에는 단백질이 얼마나 들어있고, 무슨 음식은 비타민이나 철분이 얼마고 하는 것을 계산하면서 건강을 위해 밥 먹기를 계속했다. 말하자면 철수는 "밥 먹기 = 영양섭취"라고 하는 공식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영이네 집에 초대되었다. 그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그 집의 밥 먹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양 섭취라기보다 화기애애한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날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각자 자기들의 생각을 서로 나누고, 서로에게 깊은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등, 말하자면 영이네 집의 기본 원칙은 "밥 먹기 = 사귐"이라는 공식이었다. 철수에게 이런 것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친 김에 철수는 영수네 집에도 가 보았다. 거기서는 밥을 먹는데, 자세를 바로 하라, 입에 밥을 넣고 이야기하지 말라, 언제나 남을 배려하며 밥을 먹으라는 등 식탁 예의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남에 대해 어떤 배려와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영수네 집은 "밥 먹기 = 예의범절"인 셈이었다. 이것도 철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 한참 있다가 순이네 집에도 갔다. 이 집은 좀 특별했다. 여기서는 밥 먹을 때 이 밥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도움을 준 하늘과 사람과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고마움을 느끼면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순이네 집의 경우 "밥 먹기 = 고마워하기"였다.

철수가 이런 집들을 방문하는 것은 이런 집에 양자로 들어가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집 아이들을 자기 집 양자로 데려 오려는 것도 아니다. 서로 누구의 밥 먹기가 더 훌륭하냐고 밥 먹기의 우열을 따지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서로간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아내고 분석하려는 것도 물론 그 주목적이 아니다. 이왕 한평생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삶에서 남이 밥 먹는 법에서 무언가 배워 나의 밥 먹는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영양에 관한 지식을 그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그들의 밥 먹기를 더욱 풍요롭게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철수가 영이나 영수 그리고 순이의 집을 보고 온 다음 혹시나 하고 자기 가문의 내력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오래 전에 자기 가문에도 밥 먹는 것을 사귐이나 예의범절 그리고 고마워함과 관계시켜 생각한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만 근자에 와서 그런 것을 보지 못하고 마치 밥 먹는 것은 오로지 영양을 위한 것 만이라 믿고 그렇게 주장해 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것도 생각지 못했던 수확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비교 종교학의 창시자 맥스 뮐러가 "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이웃 종교를 알아보는 것은 결국 내 종교를 더욱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여기 연재할 글에서는 독자들에게 불교인이 되거나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설득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두 종교 간의 진위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더더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교의 어느 점과 그리스도교의 어떤 점이 같다, 비슷하다, 혹은 다르다 만을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두 종교가 대화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을 들어주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불교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이 글을 혹시 불교인이 읽는다면 그들 역시 그리스도교의 거울에 비친 그들의 모습 일부를 볼 수 있게 되기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좀 거창한 용어로 말하면, 이웃 종교를 읽고 내 속에 있는 무엇을 촉발시키는 '환기식 독법'(evocative reading)으로 읽어보자는 것이다.

soft103@hotmail.com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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