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둘러보면 공부 꽤나 한다는 한인 학생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흔하다.
그런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두고서도 일부 어른들은 걱정이 많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학생 수는 분명 눈에 띄게 늘었지만, 그 동안 기울인 노력에 걸맞는 종착지에 안착한 2세대들의 숫자는 기대치를 밑돌기 때문이다.
삶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이분법적 발상은 분명 유치한 구석이 있다 해도, ‘학벌’ 대비 버젓한 직장을 잡지 못하는 한인 2세대가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 걱정거리다.
이민자 봉사단체의 한 상담가는 “부모들이 공부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러니까 직장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스펙 쌓기’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스펙은 과연 무엇일까? BC주정부 경제개발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수경(그레이스 남)씨에게 던진 질문이다.

“명문대 졸업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수경씨는 중학 2학년 때 밴쿠버에 정착한 전형적인 이민 1·5세대다. 별 다른 준비 없이 캐나다로 건너 왔지만 남다른 노력 끝에 토론토대학 정치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는 별 탈이 없었다. 문제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후부터다. 명문대학 졸업장만으로는 견고하게 잠겨 있는 취업문을 열 수 없었다.
“졸업만 하면 원하는 곳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정부기관 인턴 채용에 수차례 도전해 보았지만 번번히 미끄러졌습니다.”
남수경씨는 짧게 절망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확실히 취업문을 열기 위해서는 졸업장 이외에도 또 다른 열쇠가 필요했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보다 제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제가 진정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지요.”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꿈을 알아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세상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적성을 새로 발견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UN 인턴십에 도전해 낯선 땅 파나마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후 코트라, 비영리 봉사단체인 석세스, 일반 사기업 등에서도 일했다.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남수경씨는 석세스에서 자신의 자아와 만나게 된다.
“이민자 봉사단체에서 일하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그리고 도울 수 있다는 게 제겐 큰 기쁨이고 보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석세스에서의 활동은 앞으로 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할 지 일깨워 주었지요.”
남수경씨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민자 봉사단체에서는 자신이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만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민자 관련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수혜자는 이민사회 전체가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꿈이 생겼다는 게 가슴 벅찰 만큼 즐거웠다. 남수경씨는 다시 학교로 눈을 돌렸다.
“목표에 접근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MBA 과정에 등록했지요. 이때 국제경영학도 공부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졸업 후 남수경씨는 칠레로 떠났다. 그곳 지방정부에서 국제개발 어드바이저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험은 그녀의 이력서에 차곡차곡 쌓이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남수경씨는 2008년 6월 BC주정부 경제개발부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심사관 사로잡는 맞춤형 이력서를 작성할 것”
캐나다는 한국처럼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고시’가 없다. 적절한 인재를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채용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채용공고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 BC주의 경우 채용정보는 홈페이지(www.gov.bc.c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수경씨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1차 관문은 서류심사였다. 이때 제출하는 서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전부다. 학교 성적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자, 그렇다면 이력서를 어떻게 꾸며야 심사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남수경씨가 공무원 채용에 응시하기 전까지 했던 숱한 경험이 정답에 대한 힌트다.
이력서는 언제 학교에 입학하고 언제 졸업했는지만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왜 적임자인지를 글을 통해 ‘선전’할 수 있는 기회다.
“우선 맞춤형 이력서를 작성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주정부 경제개발부에서 근무하기 위해 그 동안 나는 어떤 경험을 해 왔는지 상세히 작성해야 겠지요. 예를 들어 이민부의 경우 정책 분석력, 그 정책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고루 살펴보는 것 같습니다. 이력서에서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경험을 쌓으면 그만이다.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곧 나만의 장점”
2차 관문에서는 ‘필기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시험장은 일과 관련된 지식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확인하는 자리다. 시험이라는 게 누군가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기 때문에 쉬울 리는 없다.
평가는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쓴 잔’을 맛 본 사람들은 의심이라는 망상에 종종 사로잡히게 된다. 내가 가시적 소수자라서, 이민자라서 차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닐까? 이민자인 내게도 정부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남수경씨는 이렇게 답한다.
“이민자 출신이라서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는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민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이를테면 2개 국어 이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점, 캐나다뿐 아니라 출신 국가의 문화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저는 한인 2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한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사는 것이 다문화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장점을 키우는 가장 쉬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3차는 면접이다. 이때에도 직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진다.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차, 2차를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자신감 있게 도전해 보자. 자신감은 취업문을 열 수 있는 또 다른 비밀 열쇠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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