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꿈을 품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꿈을 이루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선택의 갈림길을 수도 없이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 많은 갈림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꿈을 향해 한 길을 걸어온 로봇 공학자가 있다.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다. 홍 교수는 'GM 젊은 과학자상', '미국 국립과학재단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으며 파퓰러사이언스지 선정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강연차 밴쿠버를 찾은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꿈을 향해 오직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꿈을 이뤘고, 그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꿈이 인간 삶의 질을 향상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행복합니다.”

<▲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가 28일 열린 영 프로페셔널 네트워크에서 강연하고 있다. / 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 일곱 살 소년에게 다가온 영화 한편, 그의 인생을 바꾸다
홍 교수가 로봇 공학자라는 꿈을 결심한 것은 영화 한편 때문이었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그의 눈에 비친 영화 속 광경은 그를 로봇 공학자라는 꿈의 길로 안내했다.
“일곱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잠깐 왔었는데, 그때 스타워즈를 봤거든요. 그 영화에서 나오는 우주선과 로봇에 딱 꽂혀버렸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로봇 공학자가 되리라 결심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꿈을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어요. 그 영화가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죠."
로봇 공학자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집은 그의 실험실이, 집안의 가전제품은 그의 실험대상이 됐다.
“뭔가 만드는 것은 물론 부수는 것도 좋아했어요. 집안의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열어보고 분해해보기 시작했죠. 세탁기, TV, 믹서기… 제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망가지고 부서지고… 말썽꾸러기였어요.(웃음) 그리고 방학보다 개학을 기다리는 특이한 아이였어요. 개학하면 방학 과제를 발표하잖아요? 깡통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 ‘작품’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시간이 저를 설레게 했죠.”
◇ 꿈을 따라 나선 미국행
홍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은 한국에서 보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3학년 과정까지 한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는 고려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2년, 돌연 미국 위스콘신대로 유학을 결정한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만 가면 제가 꿈꿔왔던 로봇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그렇지 않았죠.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거든요. 실망했죠. 그러던 중에 형이 다니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자유로운 연구와 환경에 반해 바로 미국행을 결심했죠.”
미국에 왔다고 해서 꿈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20년 넘게 살아왔던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언어 문제 때문에 고생했어요. 한국 친구들 만나면 한국말만 하게 될 것 같아, 친구를 사귈 때도 이곳 친구들만 사귀었죠. 고3 때처럼 공부만 한 것 같아요.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유스콘신대를 졸업하고 퍼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로봇 연구를 위해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그리고 2003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와 인연을 맺게 됐다.
“교수가 된다는 것. 무척 힘들거든요. 자리가 한정되니까 경쟁도 심하고.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아 박사를 마치자마자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꿈에 그리던 로봇 공학자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혔어요. 연구 제안서를 써야 했던 거죠. 제안서를 통해 연구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었거든요. 풋내기가 뭘 알겠어요? 무작정 새벽까지 연구 제안서에 매달렸죠. 신청하면 거절되고, 신청하면 거절되고… 2년 동안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웃음) 그러다 생각을 유연하게 조금 바꿔보기로 했어요. 로봇이 아닌 기계 쪽으로 조금 눈을 돌렸던 거죠. 그랬더니 조금씩 (연구 보조금) 승인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연구 보조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연구실에 기자재가 쌓이기 시작했고, 학생들 호응도 얻었죠.”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로봇 공학자의 길이 시작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강한 열정과 노력을 연구에 쏟아냈다. 그의 연구실은 새벽 3~4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그 열정과 노력을 가져왔다. 그의 침대 한쪽에 노트와 펜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들기 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기 위해서다. 아침에는 잠자기전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더 체계적으로 옮겨놓는다. 연구 후원자가 나서면 그 중 적절한 아이디어를 선택해 제시한다.
그런 그의 열정과 노력은 달걀을 집을 수 있는 정교한 로봇 손과 고층 건물을 기어오르는 건축물 검사용 뱀 로봇, 세 발로 가는 보행 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을 탄생시키고, 버지니아 공대의 작은 연구실 ‘로멜라(RoMeLa)’를 7년 만에 세계적인 로봇 연구실로 탈바꿈시켰다.
◇ 사람의 삶 속에 녹아 든 꿈
홍 교수는 남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일을 마다치 않고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해 보였다.
“미국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전 세계에 시각 장애인 차량을 공모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저희 팀이 무인 자동차 경진대회에서 3위를 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신청했죠. 사람을 돕겠다는 멋있는 취지도 아니었고, 할 수 있다는 의지뿐이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그 공모에 참여한 팀이 저희가 유일하더라고요.”
연구가 진행되는 4년 동안 모든 사람이 그를 ‘미쳤다’고 했다. 그를 말리는 사람 역시 수도 없이 많았다. 여기에 그는 오히려 ‘안될 것이 뭐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시각 장애인 시설에서 2박 3일 동안 먹고 자며 생활해 보고, 직접 눈을 가리고 다녀보며 불편한 점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들과 생활하면서 느끼게 된 점이 많았어요. 볼 수 없다는 단점 하나만 있을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실제로 시각 장애인 중에 메카닉스도 있고,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조금만 기술을 개발하면 누구나 똑같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시각 장애인용 차량을 지난해 열린 미국 데이토나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선보였다. 무인 자동차가 아닌 시각 장애인이 직접 페달을 밟으며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였다. 시승에 나선 시각장애인은 장애물들을 모두 피하고, 완주에 성공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시승을 마친 시각 장애인 운전자는 눈물을 흘렸다.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를 하면서 사회와 연결된 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날 제가 진행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에 주목하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화재 진압 로봇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미 해군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번 연구에서 처음에는 뱀처럼 소방 호스 자체가 움직여 불을 끄는 것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휴머노이드 로봇(인간 형태의 로봇)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소방 호스를 뱀처럼 만들어 불을 끄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건물도 군함도 모두 아시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설계한 것이잖아요? 화재 현장도 마찬가지죠. 계단이며, 문턱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군함의 경우 많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넘어지지 않으려면 중심도 잡아야 하고요. 그래서 휴머노이드 형태가 최적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휴머노이드로 제안하니 저더러 ‘미쳤냐’고 하더라고요. 생산비도 많이 들고… 그래도 결국 설득했습니다. 대신 화재 진압 외에도 사람의 일을 도울 수 있는 다용도 로봇을 만들기로 했죠.”
◇ 꿈의 연장선 교육자의 길
홍 교수는 로봇 연구뿐 아니라 교육에도 그 열정을 쏟고 있다. 밴쿠버를 방문한 것도 지난 27일 주밴쿠버총영사관(총영사 최연호)의 주최로 열린 밴쿠버 영 프로페셔널 네트워크 행사의 강연 때문이었다. 이 밖에도 전 세계를 오가며 학생과 젊은이들을 만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에 영감과 도전 정신을 키워주는 것 역시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야기하죠.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 나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런 저의 강연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봤던 스타워즈가 제 인생을 바꾼 것처럼…”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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