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까? 개인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고 직장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 때 아마도 행복을 느끼는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요즘 세대에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어쩌면 축복에 더해 기적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든 방법은 있고 오랜 시간을 거쳐 자신의 길을 찾은 사례가 주변에 있기에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는 이르다. 여기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길을 만난 한인 청년이 있다.
<▲ NAV CANADA에 근무하고 있는 문태진씨. 사진 = 김혜경 기자 >
◼︎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회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Nav Canada라는 회사로 캐나다 항공관리국 소속의 공기업으로 이해하면 쉬울 거 같다. 한국 공항공사와 비슷한 개념의 공기업으로 연방 교통부에서 분리돼 항공 관리 부분만 맡고 있다. 현재는 Vancouver CNS 팀 소속으로 ANS TECH LEVEL1포지션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4년에 입사했으니 이제 3년차다. 공항 관
제탑 등 통신 서비스 하드웨어 관리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직원 고용성과 보수 부분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회사라고 할 수 있다.
◼︎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아주 만족한다. 보수면에서나 분위기 등 모든 부분에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회사였고 또 오랜 시간 준비해서 입사한 회사라 더 애착이 간다. 회사측에서 사소한 부분에도 많은 배려를 해주고 인간적으로 자존감을 갖도록 지원해주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회사에서 직원들 개개인이 업무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처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 처음부터 현재 직장을 희망했었는지 또 입사 계기는
그렇지 않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현지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SFU를 졸업했지만 이후에도 현실적으로 취업의 문은 밝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의 부탁으로 무역 관계 비즈니스 일을 9개월 정도 하게 됐다. 라스베가스, 홍콩 등 출장이 많은 업무였는데 일은 나쁘지 않았지만 평생 하고 싶은 직장은 아니었다. 그것도 2008년 휴대폰 시장의 호황기가 끝나 그만두게 됐고 1년간은 과외 등 다른 일에 매달렸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공항으로 달려갔었는데 그러다 비행기에 매력을 느꼈고 파일럿에 관심을 두게 됐다. 한동안 대한항공 등 대형 항공사에 입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기간을 비롯해 학비와 소요경비 등 파일럿이 되는 여건이 쉽지 않아 포기하게 됐고 그러다 형이 다니는 지금의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재미를 떠나 내가 원하던 일이었고 꼭 입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엔지니어로서의 배경이 부족해 바로 입사할 수도 없었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결국 2010년 BCIT 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내가 공부했던 전공은 문과에 가깝기 때문에 항공전문지식과 배경을 갖추기 위해 기계공학을 다시 공부하게 된 거다.
◼︎ 한 직장을 위해 대학을 너무 오래 다닌 게 아닌가
기간이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민와서 SFU를 다닐 때만해도 취업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자세한 계획도 세우지 못했었다. 그저 막연하게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생각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많은 좌절감을 맛본 후였다. 그래서 BCIT에 들어갔을 때 처음부터 'Nav Canada' 에 취업하기 위해 모든 요건을 최적화 시켰다. 학업도 1학년때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그보단 엔지니어학생 단체인 IEEE에 가입해 회장을 맡아 선후배간 네트워킹을 쌓으며 봉사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어디서든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이미 말할 필요도 없이 강조되고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특히 의미가 큰 거 같다. 형식적으로 맺는 관계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인간관계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결과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다녔던 학교인 BCIT가 내게 주는 의미와 중요성은 비교할 수 없다. 학교 다니는 내내 현재의 직장을 가기 위한 이력서를 맞춤형으로 작성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바심내지 않았고 오히려 항상 행복했다.
◼︎ 캐나다 공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취업 요건은 무엇인가
한국직장에서는 아직도 성적이나 학교를 우선순위로 하고 있을 지 몰라도 캐나다에서는 네트워킹이 절대적이다. 물론 회사에서 원하는 자격 요건이 있다. 기본적으로 업무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주변에서 본인을 인정해주지 않거나 평이 좋지 않다면 회사 생활이 쉽지 않다. BCIT 졸업식 때 전체수석과 리더십 부문 장학금을 받았다. 마침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기업대표가 장학금을 주는 분이었는데 나를 학생으로 생각 안 했는지 속엣말을 하셨다. 자기가 두 분야 장학금을 주긴 하지만 정작 본인의 회사에는 전체수석이 아닌 리더십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데려간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강단에서 나에게 장학금을 주시면서 많이 당황하셨다. 회사에서는 똑똑하기만 한 인재보다는 인간관계와 먼 미래를 함께 달릴 수 있는 리더십 있는 직원이 우선시된다는 의미였는데 공기업에서도 많이 다르지 않은 거 같다. 졸업 전에 그분의 회사를 포함해서 3군데서 잡 오퍼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Nav Canada 취업을 염두에 뒀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고 역시 졸업 전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 형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처음부터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안했나?
형(문두진)은 현재 같은 회사에서 기술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8년부터 재직하고 있고 지금까지 승진도 빠른 편이다. 회사 내에서도 신망이 두텁고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형이 일하는 곳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물어보거나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형도 적극적으로 제안한 적이 없어서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겠다고 최종적으로 마음을 먹기까지 회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남들은 형제끼리 친하지 않은 게 아니냐고 농담하는 데 절대 그렇지 않다(웃음). 둘다 독립적인 성격은 맞는 거 같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본인만큼 아는 사람이 없고 결국 스스로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형과 의논도 많이 하고 회사일에 대해서 조언도 듣는다. 형이 많이 바쁘기는 하지만.
◼︎ 한국에서의 학력도 특이하고 밴쿠버에 와서 학교 다닌 시간도 길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입학을 하지 않고 검정고시로 대신한 후 경복고를 거쳐 대학에 조기 입학했다(연세대). 경제학과와 응용통계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21세때인 2001년에 캐나다에 이민 오게 됐다. 더글라스 컬리지에서 1년반 정도 수학하다 2005년에 SFU로 편입해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수학을 부전공했다. 졸업 후 398군데에 이력서를 보냈는데 1군데에서 인터뷰하
자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에는 어이도 없고 화도 났지만 나중에 보니 한국식으로 이력서를 작성했으니 캐나다 회사에서 관심을 가질 리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아무데나 취직했다면 지금처럼 만족스럽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또 공부를 오래하긴 했지만 싫었던 적은 거의 없던 거 같다.
◼︎ 캐나다 이민이 본인한테 의미하는 것은
얼마전 위니펙에 출장을 가서 잠시 일을 했던 기회가 있었는데 52세의 신입사원을 만났다. 나이제한이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를 갖게 되는 곳이 ‘캐나다’라고 믿는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아닌,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러다 함께 손 잡고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삶이 허락되는 그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캐나다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캐나다 이민은 내 선택이라기 보다는 가족 사유(아버지 신병)로 결정된 길이었고 와서도 오랜 기간 내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분명 있었지만 이제는 빠르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합리적인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 취업 여건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우선 학생들이라면 학교생활에 있어 성적도 중요하지만 친구, 교수님 등 학생으로서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 형성에 항시 신경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봉사단체나 모임 등을 통해 ‘이 사람이 믿을 만 하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진정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개인적 일화로 다음날이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친구가 실연을 당했다며 연락이 왔던 때가 있었다. 잠시 갈등을 했지만 만나서 푸념을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했는데 나중에 많이 고마워했다. 나중에 더 돈독한 사이가 된 것은 물론이다. 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종을 찾았다면 본인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를 알아보고 최대한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순히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어느 부분에서 맞는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내가 입사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그에 대한 최적화된 준비를 놓지 않는 사람이 결국은 기회를 얻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자존심이 어디선 인정받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그리고 정확히 가는 길이 오래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다시 학교를 다녔다. 시간에 조바심 내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분들은 좋은 대학을 남들보다 빨리 졸업하고도 캐나다 대학을 10년 가까이 다시 다닌 시간이 좀 아깝지 않냐는 말도 한다. 솔직히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처음부터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다면, 그래서 그대로 따랐더라면 지금보다 빨리 지금의 직장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온전한 내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결국 나 스스로 찾은 지금의 내 일과 삶이 소중하고 행복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성적 시스템은 캐나다에서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캐나다는 신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와 네트워크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다. 잠시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도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떤 건지 느끼고 그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 쉬운 인생은 없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결정했다면 그것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적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정하고 헤쳐 나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김혜경 기자 khk@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