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正直과 청렴을 가장 우선시하는 男학교
⊙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아너 시스템(Hornor system)… 거짓말, 커닝, 도둑질하면 곧바로 퇴학

매년 1월은 미국 전역(全域)의 사립학교가 입학원서를 받는 때이다.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지만 명문(名門)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관문이 많다. 사실상 아무나 지원할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학업수행 능력은 물론 경제력, 출신가문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명문 사립기숙학교를 《월간조선》을 통해 하나씩 소개한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재학생으로 하여금 사회의 리더나 국가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 3代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설계


<1200에이커 규모의 넓은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는 명문 사립기숙학교 우드베리 포레스트스쿨. >


<재학중인 한국 학생들이 우드베리스쿨의 창시자인 로버트 워커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가장 먼저 소개할 학교는 버지니아주(州) 매디슨 카운티에 위치한 126년 전통의 기숙학교, 우드베리 포레스트스쿨(Woodberry Forest School·이하 우드베리스쿨)이다. 이 학교는 부시 가문(家門)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드베리스쿨은 미국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관광지로 손꼽히는 셰넌도어 국립공원에 인접해 있다. 학교는 주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캠퍼스 내에는 강(江)이 흐를 정도로 넓다(1200에이커·약 4.9km²). 캠 퍼스에는 교육관 6개동과 기숙사 7개동 외에 농장과 교회, 각종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운동장, 기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교직원의 99%가 캠퍼스 내 전용주택에서 산다. 다시 말해 학생과 교직원이 학교 내에 같이 살며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우드베리스쿨 부지(敷地)의 원 소유주는 미국 4대(代)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의 형, 윌리엄(William Madison) 장군이었다. 남북전쟁 직후 참전 군인이었던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가 자식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짓기 위해 이 땅을 사들이면서 정식 학교로 만들었다. 최초의 학교 건물은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이 설계, 디자인했다.


<우드베리스쿨의 관악부 학생들. 이곳에서는 성악과 악기 등 예술 활동 지원을 위해 일류 교사가 개인 레슨을 하기도 한다.>

우드베리스쿨은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본래 미국 사립(私立) 기숙학교는 종일 기숙(All Boarding) 형태로 교육을 실시해 왔다. 최근 들어 재학생의 50% 정도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등하교(登下校)하는 방식(Boarding-Day School)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드베리스쿨은 종일 기숙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우드베리스쿨의 전교생은 393명이다(2015년 12월 기준). 이 중 39명이 외국인인데 한국인은 12명이다. 종일 기숙 방식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더없이 좋다.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수업과 학교 활동은 주말에도 이어진다. 외국인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영어와 미국 문화를 쉽게 습득할 수 있다.


<우드베리스쿨의 도서관 내부. >

학교가 고집하는 또 하나의 전통은 남학생만을 위한 단성교육(單性敎育) 시스템이다. 이 학교 입학처 직원인 마이크 스즈들라우스키(Mike Szydlowsky)의 설명이다.
 
“남자아이들은 그들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남녀공학의 학교 시스템은 여학생을 위주로 한 커리큘럼이 많아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연극, 운동, 다양한 예술활동을 통해 많은 자신감을 갖습니다. 남학생들은 캠퍼스 내를 가로지르는 강에 나가 낚시를 하거나 숲을 산책하며 친구들과 꿈을 키워 갑니다. 이른 나이에 향수(여자)와 엔진냄새(편집자 注-자동차운전을 의미·미국에서는 만16세가 되면 운전할 수 있다)에 노출되면 아이들은 바른길로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과의 교류가 일절 단절된 것은 아닙니다. 한 달에 두어 번 학교 주최로 인근 여자기숙사 학생들과 저녁식사를 하거나 연극수업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교제를 합니다.”
 
우드베리스쿨은 한국의 고교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한 반의 평균 학생 수는 10명이다. 교사 1명당 5~7명의 학생을 맡고 있다. 지도교사는 일상 학업은 물론, 주말이나 방과 후에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함께 하거나 텔레비전을 같이 시청하는 등 가족처럼 지낸다. 한마디로 부모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식축구·골프·수영·스키 등 계절별로 다양한 운동 배워


<함께 식사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 교사와 학생들. >

2015년 11월에 가졌던 캠퍼스 투어는 12학년(한국의 고교 3학년 과정) 졸업을 앞둔 한국인 학생 박병주 군의 안내로 이루어졌다. 이날은 필자 외에도 정장차림을 한 몇 명의 학부모(남자 중학생과 그의 부모)도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 외에 학생 기숙사에서 하루 동안 다른 학생들과 같이 지내거나, 토요일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현장체험도 가능했다.
  
박병주 학생의 소개로 재학 중인 몇몇 한국 국적의 학생들을 만났다. 취재를 허락한 학교 관계자는 필자의 관심을 마냥 신기해했다. 학생들은 보통 같은 반의 학생들하고 어울리기 때문에 한국인 학생만 따로 모이기 힘들다고 했다. 교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학생의 말이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한다.
  
“문화적인 차이를 제외하고는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수업도 재미있고, 특히 학교에서 운동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육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연극 수업을 받는 학생들. 우드베리스쿨 인근 학교의 여학생들과 함께 수업한다. >

우드베리스쿨에 한국인 학생이 처음 입학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학교 규정상 외국인 학생을 전체 학생 수의 10%만 받고 있는데, 외국인 학생 중에는 한국 학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입학처 관계자는 “최근 중국 학생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20%까지 외국인 학생 비율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는 미국의 27개 주(州) 출신의 학생과 17개국 출신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또 다른 학생은 “떡볶이하고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국 음식을 줄줄 나열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성장기 학생이었다.


<우드베리스쿨 워커 건물. 학교의 허브다. >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학교식당은 전교생 400명과 교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학생들은 평상시에 뷔페식(式) 식사를 하고, 주(週) 3회 학생과 교사가 함께 둘러앉아 식사(Seated meal)를 한다. 이때는 교사의 가족도 함께하는데, 학생들이 돌아가며 웨이터 역할을 한다. 손님과 종업원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전통의 식탁 매너를 익힌다.

교과 수업이 끝나는 오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운동한다. 미식축구·골프·수영·축구·스키·테니스를 포함한 16개의 운동종목을 계절별로 커리큘럼에 맞춰 배운다. 학교 측은 운동 종목별 서클활동도 권장하고 있다. 2015년에는 암벽등반과 산악자전거팀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우드베리스쿨의 풋볼팀이 경기를 앞두고 훈련 중이다.>

교내의 유명 운동서클은 미식축구팀인 ´타이거스´다. 이 팀은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고등학교와 매년 큰 경기를 치르는데, 1901년부터 100년 동안 이어져 온 라이벌 대결이다. ´The Game´으로 불리는 이 경기가 열릴 때면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학부모 등 1만5000명 이상이 모인다고 한다. 미국 최고 스포츠채널 ESPN에도 방영될 정도다. 2005년부터 미식축구팀의 코치를 맡은 클린트 알렉산더( Clint Alexander)는 “아이들은 필드에서 체득한 팀워크를 통해 패배와 승리를 경험한다”며 “비록 경기는 한 시간이지만, 경기를 통해 배운 경험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우드베리스쿨의 산악자전거팀이 캠퍼스 내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

학업은 3학기제로 이뤄진다. 주말에는 외출·외박이 가능하다. 고향에 다녀오거나, 근교에서 친구들과 야유회도 가진다고 한다. 교내에 강이 있어 낚시를 하거나 하이킹을 하는 학생도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는 사회활동 참여가 필수이다. 병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을 지도하는 등 동네 공동체 활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공부만 하기 위해 학교에 오면 안 된다”는 것이 교육방침이기 때문이다. 성악과 악기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류 교사가 개인 레슨을 하기도 한다.
 
 
구성원간 서로 믿고 지키는 自律제도


<점심을 기다리는 학생들. 교내에서의 복장은 자유로운 편이지만, 카키바지와 깃이 있는 셔츠만 착용할 수 있다. >


  “우드베리스쿨은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정직과 도덕적 청렴을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거짓말, 커닝, 도둑질, 이 세 가지는 금기사항입니다. 만약 캠퍼스 내에서 이런 행위를 하면 경고 없이 다음 날 즉각 퇴학처리합니다. 외국인 학생일 경우에도 무조건 귀국시키는 것이 학교 방침입니다. 실제로 작년에 규율을 어긴 5명의 학생을 퇴학시켰습니다.”  우드베리스쿨의 핵심 교육철학은 아너 시스템(hornor system·서로를 믿고 규율을 지키는 자율제도)이다. 학교장 보좌관 역할을 맡고 있는 스콧 샴버거(Scott Schamberger) 입학처장의 말이다.


<야외 수업을 받고 있는 우드베리스쿨의 학생들. >

샴버거 처장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좋은 습관을 기르면 졸업 후 사회에 나갔을 때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학생 선발 절차에 대해 샴버거 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서류를 통과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합니다. 아시아 국가의 경우 학교의 입학관리팀을 현지에 파견해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학생들의 의지와 성격입니다. 더 많이 배우길 원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학생을 우리는 선호합니다.”


<강(江)이 흐르는 우드베리스쿨 캠퍼스 풍경.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


샴버거 처장에 따르면, 서류전형에는 SAT 성적표, 영어교사와 수학교사의 추천서, 재학 학교로부터 직접 받은 최근 2년간의 성적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미술작품, 사진, 자격증 등 참고서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낼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학비는 2015년 기준으로 학생당 연간 5만1700달러(韓貨 약 6000만원)이다. 재학생 중 42%가 학교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평균 지원금은 3만2456달러이다.
  
시간적 제약으로 우드베리스쿨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재학생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생활 자체가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 자녀를 둔 학부모 입장에서도 이 학교가 새삼 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 월간조선 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