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와 사오정

글의 제목을 보고 부산 앞바다의 명물, 오륙도를 떠 올리거나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를 연상한 독자라면 한국을 떠나 온 세월이 제법 흘렀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오정과 오륙도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이 말이 45세 정년(사오정), 56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놈(오륙도)이라는 우스개 소리로 유행하고 있다. 다소 과장된 듯한 봉급생활자들의 불안한 미래를 말하는 것인데 최근 일고 있는 ‘탈(脫) 한국’ 분위기의 근원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한 상술(商術)은 캐나다 이민 알선 서비스를 홈쇼핑 TV의 상품으로 판매하는 지경으로 까지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한꺼번에 수 천명이 몰리는 등 폭발적 반응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 같은 이민 열풍으로 인해 모순 덩어리로 가득찬 한국내 현안들에 대한 구조적 자기반성도 일고 있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오히려 떠나겠다고 결정한 용기를 부러워하는 쪽이 아직은 더 많을 테니까.

실제 밴쿠버 교민사회의 현실을 들여 다 보면 천당 바로 밑 999당이라는 이상향을 찾아 나선 삶이 '우울한 도박'으로 변한 경우도 많고 인생의 탈출구 혹은 도피처로 삼았던 충동적 결정이 시간만 낭비한 채 헛걸음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굳이 구분한다면 최근 늘어나고 있는 노후생활 대비용 이민의 경우, 예전의 구포(70년대 이민자), 신포(90년대 이민자)의 갈등 못지않게 교민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고 생계형 이민의 경우, 가정자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민의 동기로 자주 언급되는 '보다 나은 삶'과 '자기 성취','한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자녀교육' 이라는 이유가 무색할 정도.

C씨의 경우는 캐나다에 대한 정보라고는 거의 '카더라' 수준이지만 특별히 정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 듯했다. 여의치 않으면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그에게 캐나다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소일거리가 한국에 비해 너무 없다는 점이었고 남는 것은 시간과 돈이었다.

기러기 아빠 생활 5년 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캐나다로 이주한 K씨의 경우는 나이 오십에 딱히 해 볼 만한 것이 없어 막상 2년을 놀았더니 지금은 생계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보고서는 '이렇게 살려고 이민 왔나'는 생각이 앞선다고 했다. 또, 가족과 별거하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간 P씨의 경우 처음 떠나 올 때의 용기가 오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후회했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막노동도 즐거울 수 있어야 '그럭저럭 버틴다'는 항간의 이야기를 외면한다면 말귀 못 알아듣는 또 다른 사오정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민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대박' 소식이 막상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부터 '우울한 도박'을 의미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경계 해야 한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