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想과 現實

조기유학생을 비롯한 모든 한국 학생들이 이 사회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따뜻한 홈스테이와 이웃의 진정한 보살핌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러나 이것은 이상(理想)이고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조기유학생 중에는 준비 없이 이곳에 와 영어도 안되고 수업도 못 따라가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이들이 많으며, 이들을 돌보는 홈스테이와 학생 사이에는 돈 얼마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워 싸우는 경우도 일어난다.

특히 미성년자 학생을 현지에서 돌보는 가디언 중에는 서류에 사인만 하고 1년치 비용을 받은 후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해왔다. 이 때문에 조기유학생 부모들은 비싼 돈을 허비하면서도 자녀들에 대한 관리를 전혀 받지 못했고, 일부 유학원 등에서는 가디언 조항을 이용해 돈벌이를 해왔다.

따라서 밴쿠버 총영사관이 각 교육청을 상대로 추진한 가디언 지정의무 완화 노력은 영어도 한마디 못하면서 쉬운 돈벌이를 하려는 불량 가디언을 근절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가디언 지정을 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조기유학이 가능하고, 처음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커스토디안 레터(Custodian Letter)도 교육청 담당자가 대신 서명해 발급해 준다는 발표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성년자 유학생에게 필요한 가디언 지정 법조항이 엄연히 살아있고, 지정의무 완화노력에 비해 실제로 한인 조기유학생에게 행정적인 편의를 봐주는 교육청이 몇 곳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한인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교육청에서는 이들에 대한 법적 부담을 회피하려는 듯 커스토디안 레터를 담당 직원이 사인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사실 각 교육청에서 특별한 현지 보호자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 커스토디안 레터를 대신 발급해 주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다. 학생에 대한 책임이 그 학생을 받는 곳에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 학생을 받는 것을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있는 광역 밴쿠버 각 교육청의 목표는 최소한의 노력과 책임으로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학생을 많이 확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곳에서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커스토디안 레터 서명과 학생들의 관리책임을 떠 맡아야 할 가디언 지정 완화를 그리 쉽게 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서 명목상의 가디언을 몰아내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가디언 자격조건을 강화하고 제대로 된 가디언이 지정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즉 각 교육청에서 가디언 지정시 인터뷰를 하거나 학부모 모임에 대한 참석 의무조항 등을 신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 밴쿠버에 자녀를 유학 보낸 한국 학부모 중에는 저질 가디언과 현지 브로커 등에게 당해 "밴쿠버 한인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어린 학생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정직한 한인들이 가디언이 되어 조기유학생을 따뜻하게 돌보는 밴쿠버 교민사회는 이상(異想) 일까?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