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나약함

동부시간으로 8월14일 오후 4시경 캐나다의 토론토, 오타와를 포함하는 온타리오주와 뉴욕, 디트로이트 등 미북동부와 중서부 권역에서 북미 역사에 기록될 최악의 정전사태가 발생해 약 5천 만명 이상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퇴근 시간 직전의 대도시 시민들은 갑자기 벌어진 대규모 정전사태에 지난 9.11 테러를 떠올리며 거리로 뛰쳐 나왔고, 신호등이 꺼진 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정전으로 인해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과 토론토 피어슨 공항 등 미국과 캐나다의 7개 공항의 모든 기능이 멈춰 수백대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또한 지하철이 정지되고 대중교통이 마비된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에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신문을 깔고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사고직후 캐나다 총리실에서는 정전의 원인은 나이애가라 폭포 인근의 미국측 발전소에 번개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미국측은 낙뢰설을 부인하고 정전은 캐나다측 발전소에서 과부하가 걸려 일어 났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복제인간까지 만들어내는 21세기에 전세계 최고의 생활환경을 자랑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대도시에서 후진국이나 전력이 부족한 북한 등에서나 경험하는 정전으로 이처럼 큰 소동을 겪다니 참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더 황당한 것은 정전의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이고 미국과 캐나다가 대규모 정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 넘기려 하는 모습이다.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인 미국도, 세계 최대의 수자원을 보유한 캐나다도 원인모를 정전에 의해 나약함을 보이고 말았으며, 그 약함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넘기려 하고 있다.

보통 진정한 친구는 위기를 같이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위기가 찾아와야 자신도 몰랐던 나약함이 나오고 그 나약함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라크전 때문에 틀어진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예전 같은 친구 사이로 회복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척을 하려해도 단지 정전 앞에 나약해지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고 대자연과 신의 섭리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서로 잘났다고 아웅다웅 하며 살지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