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논리, 대륙별 순환개최론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이틀 앞두고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요지는 선정발표 당일 밴쿠버 현지표정을 전화로 알려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궁색한 변명으로 정중히 거절했지만 실은 나름의 고민도 없지 않았다. 그 담당자의 희망대로 평창이 선정되었을 경우이거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도 밴쿠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분위기 스케치는 아주 어정쩡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평창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는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고도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역전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사실 당시의 외신 보도를 보면 거의 대세가 기운 상태였고 심지어 밴쿠버 개최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였다. 미국 뉴욕시가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런던과 파리 등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후보도시 국가의 IOC위원들이 뉴욕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밴쿠버에 표를 몰아 줄 가능성이 컸기 때문.

1차 투표에서 찰즈 부르그를 지지했던 표(16)가 2차 투표에서 그대로 밴쿠버 지지로 변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했고 대륙별 순환개최(continental rotation)와 경제논리에 의해 개최지 결정이 좌우될 것이라는 예측은 적중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에곤 윈클러(Egon Winkler) 찰즈 부르그 유치위원회 사무총장의 발언이다. 개인적으로 밴쿠버를 지지했다는 그는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희망하는 유럽출신 IOC위원들이 미국의 뉴욕시를 경쟁에서 배제하기 위해 2010년 동계올림픽을 악용했다"고 말했다.

비록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스포츠를 위한 표결이라며 정치적 결정을 부인했지만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선정은 여전히 올림픽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올림픽이 상업주의에 오염됐다는 사실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개최지 결정을 위한 115차 IOC총회는 결국 유럽과 북미대륙의 이권 다툼과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의 상업주의가 대세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유럽의 이 같은 전략적 발상도 결국에는 물거품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IOC의 '대륙별 순환개최'라는 원칙이 2012년 뉴욕하계올림픽 개최를 꿈꾸는 '미국의 힘' 앞에서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정이 과연 '스포츠정신에 입각한 심사숙고(speculation)'의 결과이었는지 밝혀질 날도 머지 않은 셈이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